[칼럼]공익재단과 빗나간 회장님들의 약속
[칼럼]공익재단과 빗나간 회장님들의 약속
  • 파이낸셜리뷰
  • 승인 2019.04.03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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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김철규] 재벌닷컴에 따르면, 2018회계연도에 가장 많은 배당금을 받는 총수는 이건희 회장으로 4748억원을 지급 받고,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전년도와 같은 887억원을 배당 받는다.

우리의 재벌 총수 회장님들은 배당금으로 거액을 챙겨 가지만 기부에는 인색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선한 기부보다는 재산 대물림이라는 ‘검은 기부’를 선호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오래 전에 사회공헌기금 출연을 약속했지만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식에게 기업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한 ‘꼼수 기부’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회장님의 약속은 공익재단을 통해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돌려주겠다는 것인데, 본래 취지와 달리 실제로는 오너 일가를 위해 악용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거액의 기부약속이 공익재단 출연으로 이어지고, 공익재단의 재산은 이후 자식에게 승계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후 이뤄지는 여론무마용 기부가 국민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2008년 비자금 사태에 대해 스스로의 잘못을 사죄하고 ‘1조원대’의 사재출연 약속을 했지만 실행 여부는 미지수다.

이미 출연했던 사회공헌기금을 중복해서 신규 출연에 포함시키는 등의 꼼수를 부리기도 했다.

공익재단이 상속세 탈루의 한 수단이 되고 있다. 오너 일가가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재단 이사회만 장악하면 되기 때문이다. 마치 이명박 대통령이 재임 당시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해놓고 청계재단을 만들어 뒷전에서 좌지우지한 것과 비슷하다.

정말 기부를 하려 한다면 굳이 없는 재단을 만들어서 할 필요 없이 다른 곳에 기부를 하든지 신탁을 하는 게 차라리 사회환원 차원에서 올바르다.

이재용 부회장이 처음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직을 맡을 때, 그리고 지난해 5월 이사장직을 연임했을 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대기업 부회장이 그것도 재벌3세가 왜 공익재단 이사장직에 연연해하는 것일까. 의료·노인복지, 효(孝)문화 확산 등 사회공헌활동 사업을 진행하는 공익재단을 연임해 맡으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핵심은 경영권 승계와 관련이 있었다. 우리 재벌들의 공익재단은 외관상 공익사업을 하고 있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재벌총수가 특정인에게 자신의 재력뿐만 아니라 경영권까지 넘겨줄 수 있는 키(Key)역할을 하고 있었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에 따르면 공익재단에 현금이나 부동산을 출연했을 때 상속세와 증여세를 면제받는다. 실제 대기업 소속 공익재단 165개 중 112개가 출연 주식에 대해 상속·증여세를 면제받았다고 한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은 2016년 2월 삼성물산 주식 200만주를 사들였다. 그 결과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그룹 지분율은 16.5%에서 17.2%로 상승했다. 공익재단은 증여세가 면제되는 점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공익재단을 동원해 삼성그룹을 지배하는 이재용 부회장도 있지만, 통큰 기부약속을 했던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도 이와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2006년 정몽구 회장은 후계구도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려다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된다.

정 회장은1심에서 실형을 받았지만, 2심에서 사회봉사명령이 포함된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난다. 이때 정 회장은 기업이익의 사회환원 차원에서1조원의 사재를 출연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정 회장은 2011년까지 현대글로비스 6500억원, 2013년 이노션 지분 20% 등 총8500억원을 정몽구재단 설립을 위한 출연금으로 기부했다.

당시 출연금이 개인재산이고 최대 규모란 점에서 ‘통큰 기부’란 얘기가 많았다. 하지만 공익재단 기부방식을 취함으로써 편법 상속 또는 증여 가능성이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현대차그룹의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정몽구재단의 역할은 중요하다. 사실상 재단의 주인인 정몽구 회장이 재단의 지배권을 아들 정의선 수석부회장에게 넘기는 경우 현 세법 하에서는 상속세 또는 증여세를 피할 수 있다.

공익재단 설립을 통한 정 회장의 통큰 기부가‘선한 기부’가 될지 ‘검은 기부’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우리와 다르게 외국의 기업가들은 평소에 사회공헌에 적극적이며, 거액을 기부하면서도 ‘꼼수’를 부리거나 생색을 내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같이 기부를 ‘부자의 덕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올바른 기부문화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몇 년 전 딸이 태어났을 때 재산의99%를 생전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가 보유한 주식의 가치는 약 52조원 규모다. “재산 대신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는 저커버그의 뜻은 세계인에게 깊은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다.

천문학적인 기부를 하고 나눔을 실천하려는 기업가는 저커버그 외에도 많다. 세계 최고 부자인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2010년에 시작한 ‘재산 절반 기부 서약’이 눈길을 끈다.

현재 마이클 블룸버그, 데이비드 록펠러, 팀 쿡 등 140명이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부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실천하고 있다.

물의를 빚으면 고개 숙이고 ‘여론무마용 사재 출연’을 약속했던 회장님들. 재산과 기업 경영권을 피붙이에게 승계하려고 탈법과 불법, ‘꼼수 기부’라는 외줄타기를 하는 우리의 재벌들은 어떤 세상을 갈구하는지 궁금해진다.

*위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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