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리뷰] 국회 임시의정원 개원 100주년 기념식 개최
[폴리리뷰] 국회 임시의정원 개원 100주년 기념식 개최
  • 이정우 기자
  • 승인 2019.04.10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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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의장, 권력 분산 원포인트 개헌 제안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바꾼 역사적 의의 담아
사진제공=국회
사진제공=국회

[파이낸셜리뷰=이정우 기자] 대한민국 국회(국회의장 문희상)가 10일 국회의사당 중앙홀에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개원 100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날 문희상 국회의장, 김명수 대법원장,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이낙연 국무총리, 권순일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 5부 요인과 정당 대표 및 원내대표, 국회의원, 전직 국회의장 등 입법·사법·행정부 주요 인사, 주한외교사절, 헌정회·제헌국회유족회 등 유관단체 관계자, 홍진 선생의 손주며느리 홍창휴 여사 등 임시의정원 관련 독립유공자 후손 등 약 500명이 참석했다.

해당 기념식은 김진희 KBS 아나운서의 사회로 ‘임시의정원 기념작품 제막식’을 시작으로 막이 올랐다.

제막식에서는 우리나라의 최초 헌법인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대형 화선지에 표현한 서예작품, 현존하는 임시의정원 관련 가장 오래된 사진인 임시의정원 제6회 회의 기념사진 등 2점의 임시의정원 기념작품이 공개됐다.

국민의례와 함께 임시의정원 기념극, 대한민국 임시헌장 낭독 순서가 이어졌다. 기념극에서는 1919년 4월 10일 밤 10시에 진행된 임시의정원 제1회 회의 모습을 재연했다.

이후 임시의정원 초대의장을 지낸 이동녕 선생의 손녀 이경희 여사, 김동삼 선생의 손녀 김복생 여사, 이회영 선생의 손자 이종찬 전 의원과 이종걸 의원 등 임시의정원 유족들이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낭독했다.

‘임시의정원 관인 전달 및 감사패 증정식'에서는 홍창휴 여사가 관인을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전달하고, 문 의장은 홍 여사에게 감사패를 증정했다.

관인은 1919년 4월 10일 임시의정원이 성립된 이래 광복 후 1945년 8월 22일까지 각종 공문서에 사용됐던 국새(國璽)격의 도장이다. 그동안 관인은 임시의정원 마지막 의장을 지낸 홍진 선생의 유족이 보관해 오고 있다가 임시의정원 개원 10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국회에 기증됐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어린이민요 합창단 ‘산유화’가 한오백년과 아리랑을, 5명의 실력 있는 성악가들로 구성된 팝페라 그룹 ‘컨템포디보‘가 영웅(뮤지컬 ‘안중근’ 주제곡)과 강 건너 봄이 오듯 등 경축공연을 벌였다.

문 의장은 기념사를 통해 “국회에서 총리를 복수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내용으로 2020년 총선에서 국민투표에 부쳐 다음 정권에서 시작하는 개헌에 대한 일괄타결 방안을 논의하자”면서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문 의장은 “제왕적 대통령제로 불리는 현행 권력구조와 표심을 왜곡하는 선거제도를 고치지 않는다면 선거가 거듭될수록 대결정치의 강도는 더욱 거세지고 그 폐해는 증폭될 것”이라면서 권력 분산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회가 이뤄내야 할 개혁입법의 첫 번째도 개헌이라고 생각한다”며 “촛불 민심의 명령을 제도화로 마무리해야 한다. 제20대 국회의 책무”라고 설명했다.

사진제공=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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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임시의정원 개원,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100년 전 이날 임시의정원이 개원됐다. 1910년 일본제국주의가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하면서 우리의 주권은 상실했다.

이후 일본 제국주의의 주권 침탈 행위에 대항하는 독립운동 물결이 일어나면서 3.1만세운동을 기점으로 임시정부 수립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1919년 4월 10일 임시정부를 설립하기 위한 국민 대표자를 각 도별로 무기명 투표로 선출, 중국령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이 수립하게 됐다.

이날 러시아령 연해주, 중국령, 미국령, 그리고 국내에 산재된 임시정부 대표들 중 선출된 29명의 의원으로 개원했다.

초대 의장에는 이동녕을, 부의장에는 손정도를 선출했고,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의결했다. 그 다음날인 11일 대한민국 최초 헌법인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공포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 됐다.

임시의정원은 입법부 기능을 수행했으며 임시정부가 제출하는 예산에 대한 심의 및 의결을 담당했고, 선전, 강화, 조약 체결 등의 역할을 했다. 아울러 광복 투쟁에 대한 인적 양성을 도모했다.

임시의정원은 해방 이후인 1946년 2월 6일 미군정 자문기관인 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 개설과 동시에 해체됐다.

임시의정원은 대한제국이라는 군주정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공화제로의 전환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주권재민, 3권 분립의 민주정 원칙에 입각한 민주공화제를 채택했다. 식민지 국가 중 독립을 한 국가 상당수가 군주제를 택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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