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의 시사 인문학 365일] 7월 13일. 의로운 부를 나누라
[김진혁의 시사 인문학 365일] 7월 13일. 의로운 부를 나누라
  • 김진혁
  • 승인 2019.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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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공헌하는 것,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을 내 필생의 사업으로 여기고 있으며 개인적으로도 교육과 의료 사업 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 -

[파이낸셜리뷰] 홍콩에서 1달러를 쓰면 5퍼센트는 리카싱(리자청)에게 돌아간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큰 부자다. 1950년 홍콩 빈민가에 새운 플라스틱 공장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 54개국, 500 여개 계열사와 22만 명의 직원을 거느린 아시아 최고 부자인 리카싱은 부유한 집안 출신이 아니다. 교사였던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장남인 그가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하루 3~4시간만 자고 일했다. 플라스틱 회사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근면성실로 하루 16시간씩 열심히 일해 18세에 과장이 되었고 22세에 돈을 빌려 자신의 공장 ‘청쿵’을 설립했다.

그는 교만함을 늘 경계하라고 한다. “내가 지나치게 교만한 것이 아닌지 항상 스스로에게 묻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성공비결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격언을 몸소 실천한다. 그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꾸준한 투자를 주창한다.“다른 사람들이 물러 날 때 나는 진입(투자)하고 사람들이 취할(투자) 때 나는 버린다. 경기가 좋은 때도 우리는 지나치게 낙관적이지 않고 경기가 나쁘다고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항상 꾸준히 투자한다.”는 평범하지 않는 송곳 같은 투자명언을 남겼다. 그의 가장 빛나는 업적은 바로 2006년 재산의 3분의 1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자식은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처럼 스스로 검소하면서 후계자 양성에 멋진 방식을 취한다.

오늘의 역사: 아놀트 쇤베르크(Arnold Schenberg, 1874~1951) 타계

무조음악(無調音樂) 십이음기법 도입으로 표현주의 음악의 창시자. 오스트리아 태생 미국 작곡가 쇤베르크가 세상 떠난 날. 기존 음악에서 사용하던 모든 기법을 근본적으로 타파하여 표현주의 음악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1887년 13살 되던 해, 작곡에 전념하려고 다니던 실업계 학교까지 중퇴하고. 1894년 처녀작 ‘3개의 피아노곡’ 발표하였으며 23세에 이르러서야 ‘대위법’ 레슨 받기도 하였다. 십이음기법 음악에 도입, 표현주의 음악세계를 열었음. 나치의 유대인 핍박으로 1933년 미국으로 망명, 귀화. 만년의 작품으로 ‘나폴레옹에로의 오드’, ‘바르샤바의 생존자’ 등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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