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리뷰] 김우중 별세, 킴키즈칸? vs 정경유착?
[산업리뷰] 김우중 별세, 킴키즈칸? vs 정경유착?
  • 채혜린 기자
  • 승인 2019.12.10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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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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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채혜린 기자] 향년 83세의 나이로 9일 별세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재계 2위 총수를 지낸 인물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지만 실상 김 전 회장을 두고 한 말이기도 하다.

삼성과 LG 등을 제치고 재계 2위를 기록할 정도로 대우그룹은 IMF 이전에 잘 나가던 그룹이었다. 하지만 IMF가 닥치면서 역대 최대 부도를 맞이했고, 해외도피 생활을 해왔다.

김 전 회장을 ‘킴키즈칸’(김우중+징키스칸)이라고 부를 정도로 해외 경영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인물이다. 하지만 정경유착으로 인해 대우그룹이 성장했다는 비판도 직면했었다.

킴키즈칸 별명 얻은 김우중

김 전 회장은 이병철이나 정주영 등과 달리 샐러리맨에서 시작했다. 만 30세인 1967년 섬유 수출업체인 한성실업에 근무하던 중 트리코트 원단생산업체인 대도섬유의 도재환씨와 손을 잡고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셔 대우실업이 창업된 것이라고 알려졌다.

자본금 500만원에 출범한 대우실업은 첫해 싱가포르에 트리코트 원단과 제품을 수출해 58만달러 수출실적을 올렸고, 이후 시장을 넓혀갔다.

대우실업은 1968년 수출 성과로 대통령 표창을 받으면서 급성장하게 됐다. 1969년 한국 기업 최초로 해외 지사(호주 시드니)를 세웠다.

1973년 영진토건을 인수, 대우개발로 간판을 바꿨고, 대우실업과 협쳐져 ㈜대우가 출범됐다.

이후 1976년 옥포조선소를 대우중공업으로 만들었고, 계속해서 해외 시장으로 뻗어나가면서 창업 15년만에 자산 규모 국내 4대 재벌로 성장했다.

저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와 같이 ‘세계 경영’에 매진하면서 1990년대 동유럽의 몰락을 계기로 폴란드와 헝가리, 루마니아,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자동차공장 등을 인수하거나 설립하며 세계경영을 본격화했다.

이에 대우그룹은 1998년 말 396개 현지법인을 포함해 해외 네트워크가 모두 589곳에 달했고, 해외고용 인력은 15만 2천명에 달했다. 김 전 회장은 연간 해외 체류기간이 280일을 넘기는 등 세계경영이 세계적 화두가 됐다.

하지만 1997년 11월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대우그룹은 빠른 속도로 몰락했다. 김대중 정부 경제관료들과 마찰을 빚으면서 개혁의 대상으로 내몰리는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1998년 그룹 구조조정의 최우선 대상인 대우차-제너럴모터스(GM) 합작 추진이 흔들렸고, 금융당국의 기업어음 발행한도 제한 조치에 이어 회사채 발행제한 조치까지 내려지면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이후 일본계 증권사가 대우그룹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고 보고서를 내면서 급속도로 상황은 악화됐다.

1999년 말까지 41개 계열사를 4개 업종, 10개 회사로 줄인다는 내용의 구조조정 방안을 내놨다. 1999년 8월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그룹은 끝내 해체됐다.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2006년 징역 8년6월과 벌금 1천만원, 추징금 17조 9천253억원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2008년 1월 특별사면됐다.

이후 베트남을 오가면서 베트남에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베트남에서 상당한 귀빈 대접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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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유착의 사례

하지만 또 다른 일각에서는 정경유착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라는 비판도 있다. 대우그룹이 승승장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호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김 전 회장은 박정희 정권 당시 수시로 청와대로 불려갔고, 박 전 대통령은 김 전 회장을 “우중아~”라고 부를 정도로 상당한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부실기업을 인수해서 정권의 비호 하에 기업을 성장시켰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이 아니면 부실기업이 성장을 할 수 있기는 힘들 것이라는 옹호론도 만만치 않다.

87년 민주화 이후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더 이상 정경유착은 힘들어지게 되면서 대우그룹의 몰락은 예정돼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대사에 있어 김 전 회장이 남긴 족적은 아직도 우리 경제에 상당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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