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香(심향 강상빈 박사)의 생애와 사상 4편
心香(심향 강상빈 박사)의 생애와 사상 4편
  • 강상빈 박사
  • 승인 2019.12.26 09: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 서울사대부중 14대 1

1961년 2월 서울사대부증(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하교) 입학시험은 특차 전형으로 경쟁률이 무려 14 : 1 이나 되었다. 국립학교로서 최우수 명문 중학교로 알려져 있어 전국의 각 초등학교 최우수학생들이 많이 지원 하였다. 남 240명, 여 180명 계 420명 정원인데 근 6천명이나 지원하였다. 아마 우리나라 중학교 입시 경쟁률 중 최고 인 것 일거라 생각된다.

서울사대부중 바로 옆에 있는 종암국민학교에서도 거리상 가깝고 특차라서 성적 상위권 10%인 200여명이 지원 하여 50여명이 합격하였다.

14 대 1의 경쟁을 뚫고 들어온 입학생들은 전국의 수재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래서 공부도 잘하고 머리도 좋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게 되었다.

입시 성적 5등으로 입학한 1학년 1학기 내 짝인 승호는 참으로 활동적이었다. 승호가 있는 곳에는 친구들이 많이 모여 있었으며, 그 자리에 가면 항상 재미있는 말을 하고 있는 그를 볼 수가 있었다.

어느 날은 나에게 탁구라켓을 보이면서 어머니가 일본에서 사다주신 야샤카 라켓이라고 자랑을 한다. 탁구부에 들어가서 탁구를 칠거라고 하며 나에게도 탁구를 같이하자고 말했다.

나는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집 마당에 할아버지께서 베니다 판으로 만들어 주신 탁구대에서 아버님과 형님과 가끔 탁구를 치곤하여 탁구와는 친숙한 터이었다. 친구들 사이에 탁구이야기를 하면 뒤지지 않았다.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로 항상 앞서가는 내 짝궁이 탁구이야기를 하니 이 친구가 얼마나 탁구를 잘 치길 래 탁구자랑을 하나 싶었다.

그 날 수업을 마친 후 그가 치는 탁구 실력을 보고 싶어 교내 탁구장에 갔다. 그런데 선배들이 탁구반 선수가 아닌 학생은 탁구장에 입장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창문 밖에서 탁구 선수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승호의 탁구 실력은 볼 수가 없었다. 줄넘기와 폼 연습만 하고 있었다. 언제가 승호가 탁구를 치나 지켜보는데 탁구부 주장인 선배가 나에게 다가와 왜 이렇게 오랫동안 여기에 있냐며 탁구반에 들어오지 않겠냐며 탁구장으로 들어가자고 한다.

탁구장 안에서 선배 선수들이 땀을 흘리며 다양 한 기술을 연마하는 모습이 나를 매료시켰다. 나도 저들 선배처럼 탁구를 잘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때 한 선배가 탁구반에 들어오겠냐고 한다. 그래서 탁구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 선배는 좋다며 탁구반에 들어오려면 입단 빳다를 맞아야 한다고 한다. 탁구반은 군대처럼 군기가 센데 할 수 있냐고 한다. 난 입단기념으로 빳다를 30대나 맞고 탁구부에 들어가게 되었다. 선배 코치들은 6개월 동안은 탁구공을 제대로 쳐보지 못하게고 주로 폼 연습과 줄넘기 연습에만 집증 시켰다.

재미가 없었다. 탁구를 치고 싶어서 탁구부에 들어온 대다수의 동기생들은 폼 연습만 하라고 하니 실망하고 탁구부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꾸준히 피나는 연습 훈련을 한 결과 난 중2학년 초에부터 학교 대표선수가 되어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게 되었다. 코치 선생님이 너무 좋아 한다.

1963년도 에는 전국체육대회 및 학도선수권대회에서 개인전과 복식과 단체전에서 모두 석권 우승을 하기도 하였다. 전극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그때마다 학교 전교생 조회 시간에 우승 패 전달순서가 있었다. 그래서 전교생과 모든 선생님에게 잘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전국 대회를 마치고 나면 많은 펜이 생겨났다. 그 당시 탁구를 잘 치던 배제중학교, 흥국중학교, 경남중학교, 여수 동중, 광주제일중의 탁구부 선수들과 펜팔이 되기도 하였다.

할아버지 할머님도 열광적인 펜이셨다. 2학년 때 배화여고 강당에서 서을시 대표선수 선발전에 처음 출전하였다. 처녀 출전이라 코치와 선배들은 나에게 기대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외부 시합에 전혀 경험이 없는 나는 첫 대전에서 전국 챔피언인 3학년 선수와 붙게 되었다.

실력차이도 있고 경험도 없는 나는 한 포인트도 따지 못하고 첫 세트게임에서 21:1로 패했다. 2세트게임에서도 한 포인트로 얻지 못하고 15:0으로 지고 있는 일방적인 게임을 보고 우리 코치 진영은 당연하다는 식으로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이 때 갑자기 큰 응원단이 오셨다. 할아버지께서 손주인 나를 응원하시기 위해 탁구시합장에 나타나신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승부는 이미 끝난 것 같으니, 마음 비우고 평소 연습한대로 게임을 마무리 하여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웬 인가? 마음을 비우고 연습한대로 플레이를 하니 모두가 성공하는 것이 아니가? 나를 우습게 생각한 상대방선수는 갑자기 냐의 공격볼이 성공하자 서서히 당황하며 허물어지기 시작 했다.

15:0 스코어가 20:22로 역전이 되어 1:1이 되었고, 최종 세트도 좋은 성적을 내어 결국 내가 승자가 된 것이다. 모두들 놀랐다. 특히 탁구협회 진행진이 모두 놀랐다. 어떻게 무명선수인 2학년 선수가 최우수선수를 이길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 대회 이후는 나는 일략 유명한 스타 탁구선수기 되어 계속 좋은 성적을 거두어 우승컵과 우승메달을 획득 하곤 하였다. 그러나 우승성적을 보실 때 마다 좋아하시던 어머니는 늘 운동보다는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우리 형제는 운동에 솜씨가 있었다.

내가 탁구 우승을 하면. 형은 레스링 부분에서 우승을 하곤 하였다. 그래서 우리집안은 챔피언 스포츠 가정이라고 불러졌었고 부러워하는 이웃도 많았다. 우리 형은 힘이 너무 쌨다. 레스링 선수인 형은 늘 나를 힘으로 괴롭히곤 했다. 지기 싫어하는 기질이 있는 나는 늘 어떻게 하면 형을 이길 수 있을까? 를 궁리하던 중, 고등학교를 진학 한 후에는 탁구를 관두고 체력을 강화시키는 역도부에 들어갔다.

강인한 보디빌더가 되어 형에게 지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역기를 들었다. 그런데 너무 무리를 한 탓으로 1개월 정도 지나 늑막염과 신장염이 동시에 찾아온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줄곧 개근을 하던 내가 급기야 학교를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이를 본 형이 “왜 아프게 되었냐?”고 묻는다, 나는 “형에게 지기 싫어 역기 운동을 하다가 힘에 부쳐 아프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형은 이후 나를 귀찮게 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데로 다 들어주었다. 이처럼 동생의 아픔을 통해 형이 동생을 사랑하는 철들게 된 기적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도 형의 양보와 배려에 늘 고마운 생각이 들며 감사한다.

중학교 시절 탁구 전국선수권 재패는 그 후 나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어떤 구기 종묵 운동을 해도 남보다 열심히 하여 좋은 실력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림들이 있는가하면, 존경하고 칭찬하는 사람도 많다.

재수시절 대전 충남고등학교 탁구 감독 생활을 하기도 하고, 대학시절 부고 탁구부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대학교 앞에 있는 탁구장의 코치 역활도 하고, 서울대학교 탁구부를 지도하기 하였다.

1976년 처음 테니스를 접하고 친구들에게 지기실어 새벽마다 테니스 연습하여 1년 만에 친구들 중 가장 잘 치는 테니스 인이 되기도 하였으며,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은 거의 테니스장에 살다 시피 하여, 가족과는 함께하는 시간이 별로 없어, 아내를 ‘주말과부’로 만들기도 하였다.

1986년 수유리 단독 주택에 살다가 양천구 목동아파트로 이사 간 이유도 아파트단지 내에 테니스장이 있어서 이였다. 젊은 시절 테니스에 빠져 있었으며 전국 생활테니스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하였다. 골프도 1989년에 시작했는데, 6개 월 만에 싱글을 쳐 친구들로부터 ‘제는 탁구를 잘 쳐 골프도 정말 잘 친다’라는 말을 들었다.

군대시절에도 탁구를 지도하기도 하였고, 1988년 12월 1일에는 우리나라 최초 생활탁구클럽인 ‘올림피아 탁구회관‘을 개관하였다. 목동아파트지역 주부와 어린 학생들을 교습하였으며 회원제로 운영하였는데, 이 시스템을 본 탁구인들이 생활탁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드디어 우리나라에 생활탁구가 탄생하게 되어 지금은 모든 동사무소 문화센타에 탁구교실을 운영하고 있게되어 생활탁구가 활성화 되었다.

TIP < 생활 탁구가 좋은 점>

탁구는 여타 운동에 비해 연령과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든지 즐길 수 있는 안전한 운동이다.

상대방만 있으면 날씨 계절에 관계없이 언제든지 즐길 수 있는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없는 저비용 고효율 건강 취미 스포츠라 할 수 있다.

처음 잘 지도 받으면 하면 할수록 실력이 올라가고 점점 더 재미가 있는 매력의 스포츠이다.

운동과 취미 생활이 되는 탁구가 좋은 점을 다음과 같다

⓵ 탁구는 경제적인 부담이 적다.

동 사무소가 있는 곳마다 탁구장이 있어 교통비가 적게 들고, 운동화, 운동복, 라켓만 있으면 되는데 용품비용이 다른 운동에 비교하여 저렴하다.

⓶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다.

어린아이도 어깨가 탁구대 높이와 같으면 탁구를 칠 수 있는 초등생부터 90대 노인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운동이다. 실력차이가 나도 몇 개 접어주는 핸디 규정이 있어서 누구나 함께 실력에 관계없이 어울릴 수 있다. 특히 햋볓에 얼굴이 타지 않아. 피부관리에 신경 쓰는 여성들에게는 정말 좋다.

⓷ 기후, 계절에 관계없이 전천후 언제든지 할 수 있다. 날씨와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

실내 운동으로 비,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언제든지 할 수 있다. 장마철, 폭염, 추운겨울 영하날씨, 새벽, 늦은 밤, 시간에 관계없이 상대방과 본인의 의지만 있으면 매일 할 수 있다.

⓸ 체력, 건강 유지 및 몸매관리에도 좋다.

유산소 운동으로 고혈압, 당뇨, 만성피로, 무기력 등에서 해방시켜주고, 잠시만의 운동으로도 땀을 배출 할 수 있어 디톡스(Detoxification) 효과로 노폐물도 제거되어 날씬한 몸매를 유지 할 수 있다.

⓹ 탁구는 성인병 예방 개선뿐만 아니라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탁구는 전신 운동량이 많아서 뇌에 피의 양을 많게 하여 뇌를 활성화시켜 두뇌를 좋게 하고, 치매도 예방하고 뇌 회복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⓺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어 정신 건강에 도움을 준다.

경기 중 속도, 회전, 강약, 네트, 엣지 등 예상외의 다양한 상황들이 자주 발생하므로 재미있고 즐거운 웃음이 웃을 수 있으며, 파이팅을 외칠 때마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 또한 승부근성을 만족시켜 주어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된다.

⓻ 갱년기 중년과 주부들의 우울증을 예방 치료된다.

⓼ 연인 또는 부부가 함께 재미를 즐길 수 있는 운동이다. 부부금슬이 좋아진다

⓽ 눈을 좋게 하며, 골다공증을 예방하며, 정력증진에 효과가 좋다.

발로 뛰는 운동이므로 골밀도를 증가시켜 골다공증을 예방할 수 있다.

⓾ 유연성, 순발력 판단력을 키워져 자동차 등 순간적인 안전사고 예방에 도움을 준다.

⑪ 구기 종목 중 제일 가벼운 공으로 몸에 무리가 없어 노약자도 할 수 있다. 테니스, 라켓볼 등처럼 팔꿈치 등에 무리가 오지 않아 노후에 최고의 인기종목이다.

⑫ 컴퓨터, 티비 등. 각종 전자파 중독을 예방 치료할 수 있다.

⑬ 다양한 부류와 교제 할 수 있다. 좋은 친구도 만들 수 있으며 좋은 사람들을 건전하고 건강하게 만날 수 있다

⑭ 변화가 많으며 자유로운 운동이다.

탁구는 근력, 순발력, 반응시간, 감각의 유연성, 지구력 집중력이 향상되며 인체 각 기관이 함께 작용하는 전신운동이다. 특히 0.23초라는 짧은 시간에 자신의 의사를 결정하여 볼을 쳐야함으로, 순간적인 민첩성과 두뇌회전이 필요하게 됨으로 유연성 감각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탁구가 다른 스포츠에 비해 격한 운동은 아니지만 온몸을 사용하는 전신운동, 유산소운동이기 때문에 탁구를 하기 전 반드시 스트레칭을 통해 온몸의 근육을 풀어 주는 것이 좋다.

그러나 모든 스포츠가 다 그렇듯이. 좋은 점만은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점이 있으면 반드시 반대로 안 좋은 점도 있다. 탁구의 안 좋은 점을 살펴보자.

① 허무 하다

볼을 아끼지 않거나 실수를 하게 되면 한방에 결정되는 경우 허무한 생각이 든다.

②.돈이 많이 들 수도 있고 건강을 해칠 수도 다.

내기를 한다든지 운동 후 술자리를 자주하게 되면 비용이 많이 든다. 너무 술에 인백이면 오히려 건강을 해 칠 수 도 있다. 과유불급이다. 절제가 필요하다.

③.열 받는다.

게임에 계속 지면 열 받는다. 게임 승부에 관계없이 상대방에게 치기 좋은 부단히 주는 훈련을 쌓으면 결코 열 받지 않는다. 열 받지 않으려면 규칙적으로 줄넘기와 폼 연습(Shadow practice)을 해야 한다.

④ 약속시간을 못 지킨다.

게임에 열중하다보면 다른 약속 시간을 잘 지킬 수 없다. 정해진 시간에 게임을 마치고 약속시간을 지키는 것이 탁구 실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⑤ 가족한테 소홀하게 되어 마누라한테 자주 혼난다.

너무 탁구에 빠지면, 시간도 많이 소비하고 게임 이후 술자리도 많이 하게 되어 늦게 귀가하게 되며, 쉬는 날에도 가족들과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된다. 운동은 시간을 정해 놓고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학교 시절 나에게 “쌈 병아리”이란 별명이 부쳐졌다. 그 당시 부친께서 서울사대부중 영어 및 윤리 선생님이셨는데 매우 엄하신 편이었다. 예습과 복습을 매우 강조하시고 이를 제대로 하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매우 엄하게 하셨다. 엄하신 모습이 쌈닭하고 비슷하다고 생각한 제자들이 부친의 별명을 “쌈닭”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 아들이 입학하니 당연히 ‘쌈 병아리’가 된 것이다. 지금도 누군가 ‘쌈 병아리‘라고 부르면 친밀감을 느끼며 옛날 생각이 나 행복감을 맛본다. 별명은 어떤 이름이라도 긍정적으로 감사하게 받아드리면 좋은 파장을 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부중 동기생 420명 중 나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한반을 같이 하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학교 선생님의 자제이면서 탁구 챔피언으로 잘 알려진 나는 많은 친구들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친분은 나중 사대부중 14회 졸업생들이 1988년 8월 26일 부 구산 선생님 정년퇴임 축하연을 베풀어 주기도 하였다. 41년 9개월간 교육계에 봉직하신 아버지께서는 14:1 로 입학하여 졸업한 우리 14회 동창들에서 무한한 감사를 표하셨다.

중학교 시절 탁구 선수 생활을 하면서 피구 농구도 좋아하였다. 농구는 농구반 선수보다도 실력이 좋았다. 구기 종목 중 제일 작고 가벼운 공은 탁구이며, 제일 크고 무거운 공은 농구 인데, 나는 공의 크기와 무게에 관계없이 모든 구기 종목을 좋아해서 대학시절에는 만능 운동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중학교시절 나는 수업이 끝나면 운동만 하였고, 방학 때도 합숙훈련을 하여 학교 수업 외에는 별도로 공부하는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학교 성적도 중간 정도 밖에 되지 않아 3학년 2학기가 되니 어머니가 고교진학에 대해 걱정을 하셨다. 다른 아이들은 고교진학을 위해 모두 과외 수업을 받는데 자기 아들은 운동만 하고 있으니 말이다. 운동은 무식한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어머니 주장에 못 이겨 몇 개월 열심히 공부를 하여 서울사대부고에 진학하게 되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