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리뷰] 죽기 전에 리더가 읽어야 할 52권 23주차 군주론
[인문학리뷰] 죽기 전에 리더가 읽어야 할 52권 23주차 군주론
  • 김진수
  • 승인 2020.06.26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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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인간과 동물을 구분해서 부리는 처세술

1. 현실주의적 리더가 되기 위한 행동수칙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메디치가에 헌정을 하면서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풍경 화가는 산이나 들을 그리기위해 산에 올라 아래를 바라보고, 평원을 그리기위한 전망을 확보하기위해서는 높은 곳에 올라가게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인민의 성격을 이해하기위해서는 군주가 될 필요가 있고, 군주의 성격을 적절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민의 한사람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때문에 위대하신 전하께서 그 높은곳에서 어쩌다 여기 낮은 곳에 눈을 돌리시면, 제가 엄청나고 잔악한 불운에 의해 얼마나 부당한 학대를 겪고 있는지를 발견하시게 될 것입니다, 저는 전하의 충복으로서.,,,”

비참한 아부에 불과한 찬사로 보이지만 살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느껴진다.

근대 정치학의 초석이 된 군주론은 메디치에 바치는 헌사(獻辭)와 본문 26장으로 되어 있으며 국가·군주·군사 등에 관한 역사적 고찰이다. 중세의 도덕률이나 종교관에서 벗어난 강력한 군주만이 분열된 이탈리아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전통적인 정치론을 답습하면서 구성을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제1부에서는 군주국의 종류, 획득 및 유지의 방법이 고찰되고 있다. 제2부는 군사론에 배당되고 있으며, 자국군의 필요성과 군주의 군사상의 의무가 설명되고 있다. 제3부는 통치의 기술이 설명되고 있다. 제4부는 이탈리아의 위기적 현상의 원인이 추구되고 있고, 더욱이 그것으로부터의 해방이 호소되고 있다.

이상적인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바람직한 군주상을 냉철하고 사실적이어야 한다. 긍정적이고 강력한 리더십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속된 리더상을 서술했다.

여기서 마키아벨리는 인간을 신뢰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지방을 지배할 때 강제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강제를 위한 수단으로 군대를 소유해야 한다. 예전에 로마가 용병군에게 전쟁을 맡김으로써 혼란에 빠진 쓰라린 경험에서다. “좋은 군대가 없는 곳에 좋은 법이 있을 리가 없다.”는 주장이다 군대는 방비에 그치지 않고 국내 통지 수단으로서도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

군주의 자질에 대하여 서술한다. 군주가 구두쇠가 되어야 한다. 군주가 선심을 쓰게 되면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하게 되며 무거운 세금을 부과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나라가 기울게 된다. 선심 정치를 계속하고 있는 정치가들은 명심해야 한다. 그는 군주에게 냉혹하라고 주문한다. 자비심이 거꾸로 무질서를 낳고 살육과 약탈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사람받기 보다는 두려워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시종일관 주장한다. 군주가 덕을 실제로 갖출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겉에 나타난 사물로 판단되기에 자비심 깊고 신의가 두텁고 인정미 넘치며 종교심이 뜨거운 인물로 보이기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즉 군주는 연기력이 요구된다. 그는 냉철한 현실을 바라보고 이탈리아의 현실적 정치혼란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가 지향했던 것은 외면적으로는 폭군이 지배하는 군주제였지만 내면에는 질서가 잡힌 사회계약적인 대국일지 모른다.

“지나친 자비로움으로 혼란을 방치해서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약탈당하게 하는 군주보다, 소수의 몇 명을 시범적으로 가혹하게 처벌해서 질서를 잡는 군주가 더 자비롭다고 하겠습니다. 지나친 자비로움은 공동체 전체에 해를 끼치는데, 군주가 집행한 가혹한 조치들은 특정한 몇몇 개인만을 해치기 때문입니다. ”

_인자함과 잔인함: 사랑받을 것인가, 두려움의 대상이 될 것인가 중에서

2. 마키아벨리(Niccol? Machiavelli. 1469~1527)는 누구인가?

1469년에 태어난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의 작가이자 정치가, 정치이론가로 활동했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으로서, 자기 이름으로 된 이론(마키아벨리즘)을 남길 만큼 탁월한 정치이론가. 하지만 현실에서는 강대국 파워게임의 한복판에서 휘둘리다가 추방된 힘없는 공무원. 자신의 복직을 간절히 원했다.

1492년 피렌체는 통치력 부재 상황에서 침략자인 프랑스 샤를 왕은 굴욕적으로 항복한 메디치 가문을 쫓아내고 ‘피렌체 공화국’이 되었다. 이때 마키아벨리는 공화국의 외교관으로서 국운이 풍전등화인 피렌체를 살려내려고 강대국 사이를 필사적으로 오갔고, 국제 정치의 민낯을 낱낱이 목격하며 ‘강한 군대, 강한 군주’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마키아벨리는 시민군 양성을 추진하는 등 나름의 노력도 기울였지만 메디치 가문이 군주로 돌아오자 공화국의 사람으로 감옥에 갇혔다. 프랑스가 이탈리아를 점령하였을 때 프랑스와 내통했다는 부역혐의를 받고 고문을 받는데. 이때 그가 당했다는 고문이 고야의 그림으로 유명한 "스트라파도" 이다.

이 스트라파도는 사람의 팔을 뒤로 돌려서 묶은 다음 , 손목에 가죽수갑을 채우고 도르래로 손목을 들어 올리는 형벌을 말한다, 그는 특별사면을 받고 나와서 새 군주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필요한 경우에는 비도덕적인 수단도 행사해서 평화를 지키는 강력한 지도자가 되라’는 조언을 담은 ‘군주론’ 썼다.

3. 국가 군주 군사에 관한 역사적 고찰

“군주는 짐승의 방법을 교묘히 사용할 필요가 있으며, 야수 중에서도 여우와 사자의 본을 따야 한다. 그것은 사자는 올가미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가 없고, 여우는 늑대로부터 자기를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가미를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여우일 필요가 있고 늑대를 놀라게 하기 위해서는 사자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라고 하면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의 원전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그것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도덕적 견지에서 그를 악마의 대변자로 비난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마키아벨리즘은 정치의 현실을 눈여겨 본 후 종교나 도덕의 세계로부터 독립한 정치의 세계를 발견한 것이다.

“해야 할 것을 위하여 실제로 행해지고 있는 것을 돌보지 않는 자는 자기의 생존만이 아니라 자기의 파멸을 가져온다.” 군주가 현실에 따라야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당시의 이탈리아 휴머니즘의 이상은 공공적인 선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자유스러운 공민의 공동체였다. 그러나 그것은 마키아벨리에 있어선 공허한 이상에 지나지 않았다. 공동체의 해체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공적인 것에서부터 사적인 것으로 퇴각해 버린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욕망에 뒷받침된 인위(人爲)를 가지고 야망과 탐욕이 뒤끓는 현실을 극복하려고 한다. 인위란 것은 우선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는 힘을 필요로 한다. 동시에 냉정한 합리성이 요구된다. 마키아벨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국가는 그 형성 유지를 위해서 종교에 의한 권위부여도 도덕에 의한 정당화도 필요치 않다. 그것은 힘과 합리성을 겸비한 한 사람의 군주의 인위만을 필요로 한다. 즉 목적-수단의 계열의 냉정한 통찰과 목적을 위해 가장 적합한 수단을 용감하게 취하는 역량에 의해서만 국가는 적절하게 통치될 수 있는 것이다.”

- 저자 마키아벨리|역자 이시연|더클래식 -

4. 리더에게 던지는 교훈

마키아벨리는 전제군주를 찬양하는 위협의 정치를 주장하여 후대에 숱한 오해와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밑바닥 사상에는 모름지기 애국적, 애민적, 공평함을 은유한다.

“지나친 자비로움으로 혼란을 방치해서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약탈당하게 하는 군주보다, 소수의 몇 명을 시범적으로 가혹하게 처벌해서 질서를 잡는 군주가 더 자비롭다고 하겠습니다. 지나친 자비로움은 공동체 전체에 해를 끼치는데, 군주가 집행한 가혹한 조치들은 특정한 몇몇 개인만을 해치기 때문입니다.”

- 인자함과 잔인함: 사랑받을 것인가, 두려움의 대상이 될 것인가] 중에서 -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모순이 많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이면을 이해해야 한다. 인간의 본성을 알리고 지킬 수 없는 것들에 붙잡혀서는 안 된다고 역설적으로 주장한다. 우리인간의 약점을 너무나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두려울 때가 있다. 인간의 약점을 이용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사람을 다룰 때에는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다정하게 대하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아주 철저하게 짓밟아 뭉개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쉽게 보복하려고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야 한다면, 복수를 걱정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아예 확실히 주어야 합니다. ” 복합 군주국 중에서

살다보면 짙은 허무와 좌절감에 사로 잡혔을 때가 있다. 청춘이든 노인이든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 고독과 자존감으로 이겨나갈 뿐이다. 한 번뿐인 인생이기에 그저 현재를 인정하고 성장하고 성찰해야 하는 과정이다. 간절히 원하고 뜨겁게 행동해야 한다. 인생은 동굴속에 비쳐진 그림자에 불과하다. 인생이 어떻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한숨가지고 놓친 기차라고 불평할 수 잇겠는가? 희망의 빛을 바라며 위로하고 인간의 나약함을 스스로 극복할 뿐이다. 자유와 생존을 향한 몸부림이 선택의 여지가 없어도 바람에 흩날리는 깃발과도 같다.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안아주거나 아니면 아예 짓밟아 뭉개야한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을 하려고하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를 꿈꿀 생각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려면 복수를 두려워 할 이유가 없을 정도로 아예 철저하게 밟아버려야 한다.

또 새로운 은혜를 베품으로서 과거의 피해를 잊도록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자기기만에 빠지는 것이다... 타인에대한 가해는 철저하게 한번에 일거에 저질러야한다. 그래야 맛을 덜 느끼기 때문에 반감과 분노를 적게 만들어 낸다, 반면에 베품은 조금씩 나누어 주어야한다, 그래야 맛을 더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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