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View] ‘실수 아니면 꼼수?’…금융당국은 임원명단 누락 이유 살펴봐야

2024-04-22     최용운 기자
/삽화=김진호

[파이낸셜리뷰=최용운 기자] 기업이 매년 금융당국에 제출해 공시하는 연간 사업보고서는 해당 기업의 재무상태와 손익현황을 포함해 영업활동 전반에 대해 대중에게 공개하는 공인된 보고서입니다.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거나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 그리고 다수의 대중(500인 이상)이 주식을 보유한 기업은 자본시장법상 의무적으로 사업보고서를 매년 제출할 의무가 있습니다.

해당 기업에 투자했거나 투자할 주체들이 그 기업의 정확한 현황을 보고 의사결정 하기 위한 기초자료가 사업보고서입니다.

사업보고서에는 기업의 많은 정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금융감독원은 기업들이 참고할 ‘기업공시서식 작성기준’이라는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자본시장법과 상법 등 관련법에 따라 사업보고서 양식도 바뀌므로 매년 조금씩 변경된 기준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금감원이 제공하는 이 작성기준은 기업들이 작성할 가이드 성격도 있지만, 관련법에 따라 제공하고 있으므로 기업들이 이 가이드에 충실하게 따라야 할 의무도 있습니다.

본 기자가 여러 기업들의 사업보고서를 분석하던 중 서희건설의 사업보고서에서 이 가이드를 22년간 무시해 온 흔적을 발견하고 취재했습니다. 주요 건설사 중 임원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것(관련기사 : [재무리뷰] 서희건설, 비정상적 임원규모 논란…직원 10명당 1명 ‘임원천국’)을 발견하고, 자세히 살펴보니 지난해말 기준 미등기임원 73명이 명단은 누락되어 있었습니다.(관련기사 : [재무리뷰] 서희건설, 공시위반 의혹…사업보고서에 임원명단 22년째 누락) 이 회사는 지난 2002년부터 미등기임원을 누락해 온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궁금했습니다. 이러한 누락이 가능한지 말이지요. 금융감독원 관계자에게 문의하니 답은 “미등기임원 명단도 기록해야 한다”였습니다. 22년이라는 기간은 지나치게 길다는 문제점을 지적하니 해당 관계자는 “심사를 거치고 법적인 판단을 받아봐야 제재대상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면서 “중대성에 대한 판단은 투자자들의 투자의사결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가 기준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요약하면, 사업보고서상 누락은 ‘잘못이지만’ 그 중대함 정도는 투자자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느냐를 ‘심사와 법적인 판단’을 통해 결정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임원명단의 장기간 누락이 과연 중대하지 않은 사안일까요? 상장기업의 임원은 해당회사의 주식 1주라도 거래하면 주식소유 현황을 공시해야 합니다. 만약, 지난 22년간 거쳤을 수많은 임원중에 서희건설의 주식을 거래한 사람이 있었는데 공시하지 않았다면 위법행위가 됩니다. 그런데, 임원명단을 알 수 없으면 이러한 위법행위를 발견할 방법은 없습니다. 몰래 그들만의 잔치(?)를 벌였을지 알 방법이 없다는 말씀이지요.

과거 유명 그룹사를 포함한 오너기업에서는 임원명의로 차명거래하다가 적발되어 제재받고 형사처벌을 받은 사례가 여럿 있었습니다. 2·3세 경영승계를 위한 차명주식 거래나 경영권방어를 위한 방편 또는 비자금 창구 등 주로 오너들의 비위행위와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와 같은 사례는 근래에도 언론보도를 통해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금융당국의 매와 같은 눈에 걸려들었기 때문이지요. 아마도 걸리지 않는 사례도 많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기업들의 임원의 주식거래를 확인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취재결과 서희건설 외에도 동원개발, SGC이앤씨, 동양건설산업, 성도이엔지 등의 중견건설사들도 미등기임원 명단이 사업보고서에 누락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법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한 ‘실수’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실수가 아닌 어떤 목적이 있는 ‘꼼수’도 분명 있을 수 있습니다.

임원명단 공개 누락이 정정공시만 하면 되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목적이 있는 의도적인 누락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기자가 이번에 취재한 기업은 시공능력 평가 100대 건설사였습니다. 이 중 절반정도인 53개 기업이 사업보고서를 제출하고 있었고, 이중 10%인 5개 기업에서 임원명단 누락이 있었습니다. 다른 업계도 어떨지 궁금하군요.

사업보고서는 투자자들이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기본 자료입니다. 법적인 기준에 따라 작성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정보의 불균형을 바로잡아 올바른 투자의사 결정을 돕기 위함이 아닐까요? ‘실수’면 바로 잡도록 안내하고 ‘꼼수’면 그 이유를 찾아내서 위법행위를 했다면 그에 응당하는 처벌을 받게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