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역사] 1989년 코스피지수 1000 돌파, 주식 불패 신화

2024-06-05     김진혁

삼성전자만 가지고 있었다면

프레미엄 시대를 조심하기

정석 투자란? 좋은 주식으로 인내하는 것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 증권사에 근무하면서도 삼성전자를 샀다가 팔면서도 투자를 못했을까 하는 회환이 종종 든다. 삼성전자는 1975년 상장한 뒤 3000배 넘게 올랐다. 잘 아는 사람이 돈이 생기면 삼성전자를 꾸준히 샀는데, 삼성전자 주식을 파는 방법을 몰라 지금까지 가지고 있다는 농담 같은 진담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는 그 당시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은행주만 포트폴리오로 가지고 있었다. 조흥 은행주는 2002년 갑자기 신한금융지주로의 매각으로 이름조차 사라졌다. 투자의 실패와 상실감이 몇 배 커졌다.

1980년 100으로 시작한 코스피지수가 1000선을 처음으로 돌파한 건 1989년이었다. 당시 한국을 대표하는 시가총액 1위 종목은 현재 포스코이고, 이어 한일은행 제일은행 서울신탁은행 한국상업은행 조흥은행이 시가총액 2~6위를 차지했다.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 중 은행이 절반이나 됐었다.

1992년 자본시장 개방

주식시장 문호를 처음 외국인에게 개방한 1992년 1월 3일 외국인이 약 69억 원어치 주식을 직접 매수하며 한국 자본시장의 전자시세판을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였다.

전체 766개 상장 종목 가운데 512개가 가격제한폭으로 치솟았다. 종합주가지수는 624.23으로 13.31포인트(2.2%) 뛰어올랐다. 증시 개방 원년인 1992년 외국인은 약 1조 5000억 원 어치 주식을 순매수했다.

외국인들은 내재가치에 초점을 맞춘 종목 선정 성향으로 기존 재료와 풍문에 의지해온 종전 투자형태에도 큰 변화를 일으켰다. 우물 안에 갇혀있던 국내투자자들은 이를 저PER 혁명으로 부르며 외국인의 투자형태에 따라가게 되었다.

기업들도 외국인의 주주환원 및 경영 투명성 강화 요구로 선진 경영문화를 받아들여야 했다. 외국인 직접투자에 앞서 간접투자 상품의 포문은 한국투자신탁이 1981년 1월 외수증권이라 불리는 1,500만 달러 규모의 KIT(Korea Investment Trust)를 출시했다.

1984년 5월 한국 펀드 산업의 효시가 되는‘코리아 펀드’설립을 진행했다. 코리아펀드는 주식을 발행해 투자자를 모집하고 운용 수익을 배당금 형태로 돌려주는 뮤추얼펀드였다. 6,000만 달러의 투자자금을 모아 그해 8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주당 12달러로 공모한 코리아펀드는 청약 첫날부터 전량 매진에 성공하며 ‘코리아 프리미엄’시대의 개막을 예고했다. 불과 1년 만에 공모가 10배 가까운 122달러로 치솟았다. 코리아펀드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재무부는 해외 증권발행사로 삼성전자를 1985년 유로달러본드 시장에서 2000만 달러의 전환사채(CB) 발행에 성공했다. 만기는 15년 금리는 연 5%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