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역사] 1997년 IMF 구제금융 신청, 그 대가는 혹독했다.

2024-06-13     김진혁

장기 성장시대의 종결을 고하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대가

3투신 전성시대 마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 60년대 이후 지속하였던 한국경제 장기 성장시대의 종결을 고한 사건. 구제금융 직후 기업 도산이 속출하고 KOSPI는 280p까지 떨어졌고, 1997년 11월에는 외환보유고가 40억 달러에도 못 미쳤다.

당시의 시련은 한국기업을 강하게 단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글로벌 경쟁사 대비 한국 대표기업들이 누리고 있는 경쟁력 우위는 IMF 직후 단행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약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외환위기 여파로 실업자가 사상 최대인 180만 명을 넘어섰다는 소식이 전해진 1999년 3월. 혜성처럼 등장한 펀드 하나가 자본시장에 돌풍을 일으킨다.

‘주식투자로 나라를 다시 일으키자’며 실의에 빠진 국민의 마음을 파고든 금융상품의 이름은 ‘바이코리아(Buy Korea)’. 현대증권에서 판매한 이 펀드는 출시 5개월 만에 11조 원 넘는 개인 자금을 빨아들였다. 한국 펀드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CF 한 편에 당시 이익치 현대증권(현 KB증권) 회장이 나와서 당시 외환위기로 인해 코스피지수가 270까지 떨어졌을 때 "지금 주식을 사면 여러분 모두 부자가 됩니다. 2005년엔 코스피지수가 6000까지 갑니다."라고 말하면서 이 펀드를 팔았다.

특히 제2의 ‘금모으기운동’의 성격으로 애국심에 호소하는 캠페인성 CF의 파급 효과가 엄청나서 바이코리아 펀드의 인기는 엄청나게 치솟는다.

바이코리아가 피운 불꽃은 주식시장 전체를 달구는 간접투자 열풍으로 확산했다. 그러나 눈덩이처럼 불어나던 수탁액은 그해 8월 갑작스러운 파도에 모래처럼 쓸려나갔다. 인류 역사상 최대였던 총부채 89조 원 대우그룹 파산. 그리고 뒤따라온 100조 원의 펀드 환매 사태였다.

그리고 1999년 코스피지수는 저점으로부터 4배 가까이 올랐고 코스닥 지수는 6배 이상 올랐다.

그러다가 2000년 IT 버블때문에 코스피지수가 2000년 1월 1059포인트를 찍더니 하락하고 코스닥 지수는 2000년 3월 2834.40을 찍은 후 520선으로 폭락했다. 당연히 이 펀드도 99년 100% 수익에서 -77%라는 엄청난 손실이 났고 단기간에 큰 수익을 낼 요량으로 펀드에 무리해서 전 재산을 쏟아 넣은 사람들은 줄줄이 파산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펀드에서 돈을 빼면서 펀드 설정액은 급격히 줄게 된다. 바이코리아 펀드는 운용사인 현대투신이 정부 지원과 푸르덴셜의 인수와 함께 이름을 나폴레옹 펀드로 바꾸고 살아남았다. 정확히는 혼합형에는 ‘르네상스’를, 주식형에는‘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펀드 맨 앞에는 바이코리아의 영문 이니셜인‘BK’를 달았다.

이후 2001년 미국 9.11 테러 여파가 끝난 후부터 약 10여 년간 한국 증시는 대호황을 맞았고, 2009년 12월 기준으로 바이코리아 펀드가 1999년 펀드 설정 기준일로부터 329%나 상승했다. 참고기사 10년 9개월동안 330% 상승이면 매년 거의 15%씩 상승했다는 것이다.

단기에 큰 수익을 보려 하거나 단기간 급등락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장기투자를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유리하며, 거치식보다는 적립식이 낫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1년 7월 11일, 나폴레옹 펀드는 푸르덴셜 자산운용이 한화자산운용과 합병 이후 '코리아레전드펀드'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

잠재부실 해소를 꾀했던 이른바‘3투신’의 꿈도 펀드시장의 갑작스러운 몰락과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한국 30년 펀드사의 첫 장을 장식한 한국·대한·국민투자신탁이 차례로 쓰러졌다. 바이코리아의 강렬한 불꽃이 남긴 그림자는 한국 간접투자 시장을 5년에 걸친 암흑기로 밀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