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 여행기 12] 삼천궁녀의 넋을 기리는 고란사[皐蘭寺]와 낙화암
부소산(扶蘇山) 북쪽 백마강변에 있는 절. 백제와 관련된 전설이 전하나 정확한 유적이나 유물은 없다. 고려시대에 창건 절 뒤 바위틈에 고란초(皐蘭草)로 유명
[파이낸셜리뷰]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과 관련된 비극적인 이야기로 역사적 의미가 크다.
백제가 멸망할 때 낙화암(落花岩)에서 사라져간 삼천궁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1028년(고려 현종 19)에 지은 사찰이라고도 한다. 고란사 주변은 백마강과 맞닿아 있으며, 이곳은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사비성(현재의 부여) 근처에 있다.
이곳에 자라는 고란초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자라는 식물로, 고란사는 자연적으로도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백마강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백제의 역사적 비극을 느낄 수 있는 장소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현재는 구드레 나루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으로 쉽게 찾아가는 백제의 역사적 흔적을 보존하는 중요한 명소로 기능하고 있다.
백마강 가사: 작곡 한복남/ 작사 손로원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고란사의 종소리가 들리어 오면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 꿈이 그립구나
아~ 달빛 어린 낙화암의 그늘 속에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철갑옷에 맺은 이별 목메어 울면
계백장군 삼척검은 임 사랑도 끊었구나
아~ 오천결사 피를 흘린 황산벌에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낙화암(落花巖)
부소산 서쪽 낭떠러지 바위를 가리켜 낙화암이라 부른다. 낙화암은 백제 의자왕(재위 641∼660) 때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일시에 수륙양면으로 쳐들어와 왕성(王城)에 육박하자, 궁녀들이 굴욕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이곳에 와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깊은 물에 몸을 던져 죽은 장소로 알려졌다. 훗날 사람들이 궁인을 꽃에 비유하여 이곳을 낙화암으로 불렸다.
‘타사암’(墮死岩 떨어져 죽은 바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부소산 북쪽 백마강을 향해 우뚝 서 있는 큰 바위에는 송시열이 ‘낙화암’이라는 붉은 글씨가 쓰여져 있다.
부정적인 의자왕과 삼천궁녀 이야기가 왜곡될 수도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으로 패전국 백제의 역사를 말살시키고, 신라인의 관점에서 축소된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백제는 동아시아의 문화교류사라는 커다란 틀에서 다시 조명할 필요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