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 여행기 13] 천년고찰 무량사
통일신라 시기에 창건된 사찰. 고즈넉한 천년고찰 만수산 무량사 김시습 말년 보내다 입적
[파이낸셜리뷰] 천년고찰 무량사는 시간도 지혜도 세지 않는 무량의 도를 닦는 곳으로 신라 말에 범일국사(梵日國師, 810~889)가 세워 여러 차례 공사를 거쳤다고 전해진다. 신라 말 고승 무염국사(無染大師, 801~888)가 일시 머물렀고, 고려시대에 크게 다시 지어졌다.
무량사는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살해한 뒤 임금이 된 것을 비판하며 평생을 은둔한 천재시인 매월당 김시습이 말년을 머물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 무량사의 모든 건물이 불에 탔으며 극락전은 그 후 다시 세웠다.
당간지주(충청남도 문화유산) 및 석등(보물 제233호)과 무량사 오층석탑(보물 제185호) 역시 고려초기의 양식을 지녀 고려시대 사찰이라 여겨진다.
극락전은 외관은 2층 구조이나 내부는 위아래가 트여 있는 이른바 통층구조의 특징을 보인다. 무량사 극락전에는 동양최대의 불좌상이라 하는 아미타여래삼존상이 봉안되어 있다.
김시습(金時習)이 이 절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입적하였고, 읍내 선비들이 김시습의 풍모와 절개를 사모하여 학궁(學宮) 곁에 사당을 짓고 청일사(淸逸祠)라 이름하고 그 초상을 옮겨 봉안했다.
조선 중기의 고승 진묵(震默)이 아미타불을 점안하고 나무 열매로 술을 빚어서 마시면서 도도한 시심(詩心)을 펼쳤던 사찰이다. 아름다운 만수산의 산림으로 둘러싸인 사찰로 명상과 산책을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마치면서, 앞으로의 백제
고대 동아시아 역사의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지만 사료 부족으로 깊은 연구가 되지 못한 점을 숨길 수 없다. 불교 문화 전파의 경유지로 역할을 한 백제문화의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어 다행이라고 본다.
흔적만 남은 백제의 옛 절터에서 무엇을 보고 상상할 수 있을까? 뛰어나 통찰력과 날카로운 문제의식에 의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백제 유적지 방문과 관심이 있어야 한다. 백제에서 다른 나라에 문화를 전파한 영향력이 오늘날 K-컬쳐의 기반이 되지 않았을 거라는 상상도 해 본다.
다시 가보고 싶은 내 마음속 고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