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자 ⓵] 진안 수선루, 천연 암굴 속에 자리한 보물

- 암벽과 하나가 된 독특한 2층 누각... 조선 선비들의 풍류 공간 - 지방문화재에서 국가 지정 ‘보물’로 선정된 사연 - 드라마 속 배경으로 재탄생한 수선루의 매력

2025-07-11     조용식 기자

[편집자 주] 우리 조상들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나 시원하게 펼쳐진 강가, 망망대해 바다를 바라보는 곳에 정자(亭子)와 누각(樓閣)을 지었다. 그곳에서 풍류를 즐기고, 사색하며, 토론을 즐기거나 시문을 즐겼다. 이에 본지는 선조들의 온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전국의 정자들을 찾아 한국인의 흥을 발견하기 위해 ‘현대판 김정호’라고 불리는 대한민국 도보 여행가인 신정일 사학자와 함께 ‘한국의 정자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연재한다.

[파이낸셜리뷰=조용식 기자] 강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는 바람을 만들고, 울창한 나무들은 그늘이 되어 여행자의 발걸음을 따라와 한여름의 무더위를 식혀주는 섬진강. 신정일 사학자와 함께 섬진강 길을 따라 도착한 곳은 진안군 마령면의 수선루(睡仙樓)이다.

“2001년 섬진강을 처음 걸을 때만 해도 그곳으로 난 길이 없어 무심코 지나쳤는데, 어느 날 문득 그곳으로 가서 보니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정자 중에 가장 특이한 정자였어요. 암굴에다 그 지형에 맞게 2층으로 정자를 지은 ‘수선루’를 보고 감탄을 했죠.”

마루에 걸터앉아 듣는, 수선루 역사 이야기

수선루는 ‘신선이 앉아서 졸고 있는 누각’이라는 뜻을 가졌다. 태극 문양이 그려진 1층을 지나 2층 마루에 걸터앉으니, 신정일 선생이 수선루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 든다. 

“조선 후기 사대부들은 자연과의 교감을 중시하며, 주정 문화를 꽃피웠는데, 특히 연안송씨(延安宋氏) 가문은 송진유, 명유, 철유, 서유 사형제가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들이 여기에서 바둑도 두고, 시도 읊으며, 신선같이 살기를 기원하는 효를 기리는 정자로 처음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길에 이끼를 타고 내린 샘물을 만나게 된다. 바로 아래에도 이끼를 타고 또 하나의 샘물이 형성되어 있어 쌍 샘물이 있는 셈이다. 샘물 위의 암벽에는 ‘연안송씨 수선루’라는 글씨가 암각화 되어 있다.

마루에서 고개를 들어 대들보 위쪽을 바라보니 편액 뒤로 그림이 그려져 있다. 흰 수염을 가진 선비들이 바둑을 두는 장면이다. 이들이 바로 수선루를 처음 건립한 사형제의 모습이다. 

‘수선루’ 현판은 목사 최계옹이 지은 것이다. 사형제가 80세가 되어서도 이곳에서 풍류를 즐기는 모습이 마치 중국에서 전란을 피하여 상산에서 은거한 4신선(하황공, 동원공, 용리선생, 기리수)과 같다고 하여 ‘수선루’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마루에 있는 편액으로는 송원의 행초서, 일중 김충현의 예서, 송원의 수선루 행서 등의 편액과 송내희 등이 쓴 누정기 등이 있다. 또한, 진안 수선루 관련 기문은 수선루중수기와 퇴휴재송보산신도비 등이 있다. 

마루 옆으로 온돌방이 있으며, 온돌방 아궁이는 건물 뒤편에 있다. 겨울에도 불을 지펴 사용했다는 것이다. 마루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방에는 벽을 돌아가며 벽면에 산수화, 화조화, 화병화, 백학, 호랑이 물고기, 매화 등의 민화가 그려져 있다.

풍류를 즐기기 좋은 수선루, 오래도록 보존해야...

전북 진안군 마령면 월운마을 앞으로 흐르는 섬진강을 따라 약 1km 떨어진 천변의 암굴에 자리한 수선루는 주변의 울창한 나무들이 호위하듯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덕분에 외부에서는 쉽게 발견되지 않아 조용히 사색하며, 풍류를 즐기기에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바깥에서 바라본 수선루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로 암굴에 들어간 형태의 누각으로, 지붕은 전면은 전통 기와를 사용하였고, 후면은 돌 너와로 마감해서 지역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붕 위로 타포니 현상이 두드러진 바위가 ‘수선루’를 품고 있는 모습이다. 

수선루 양옆으로는 시멘트와 돌로 쌓아 올린 담벼락이 있는데, 너무 인공적인 모습이라 의아했다. 수선루 안전지킴이로 있는 연안송씨 10대손 송영진 씨(73세)는 “60년대 말부터 70년대에 무전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불법으로 숙식하며, 방의 문을 부수고, 시설을 엉망으로 만들어 출입을 못하게 주변을 모두 담벼락으로 막았었죠”라고 말했다. 

통로를 막다 보니, 습기는 가득하고, 환풍이 될 리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누각은 점점 훼손 되어가는 형국이라 송영진 씨는 “공기가 순환할 수 있게 일부 담벼락을 허물고, 높이를 낮추는 작업을 건의한 결과, 그나마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다”라고 한다. 

잠시 어린 시절을 회상하던 송 씨는 “아버님과 함께 이곳에 왔을 때의 풍경은 논과 밭, 정자나무, 그리고 푸르른 섬진강이었다”라며 “아버님이 수선루에 올라가서 시도 읊으시고, 바둑도 두고, 안내에 가서 고기도 잡고, 낚시도 하는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라고 말했다.

연안송씨의 사형제를 비롯해 그들의 선조들은 이곳 ‘수선루’에서 봄이면 만물이 소생하는 모습을, 여름이면 녹음이 우거진 바깥 풍경과 섬진강을 보며 더위를 식히고, 가을이면 알록달록 단풍을, 그리고 겨울이면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뒤덮인 백색의 풍경을 만끽했을 것이다. 

지방문화재에서 ‘보물’로 지정되기까지

신정일 선생이 ‘수선루’를 보고 감탄을 한 시기는 2019년. 그가 국가유산청(구 문화재청) 제29대 문화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을 때이다. 당시의 수선루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유산 19호로 지정되어 있었을 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당시 마령에서 농어촌공사 강연이 있었어요. 그래서 수선루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기 때문에 이것은 국가 보물로 신청만 하면 된다고 했더니, 진안군의회 조준열 의원이 ‘정말 가능하겠느냐?’하면서 바로 신청했지요.”

그해 7월, 건축문화재분과위원회 위원들은 비공개로 예비 후보로 올라온 수선루를 현지 답사한다. 이곳을 답사한 건축문화재분과위원회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진안 수선루는 경관적, 건축적 가치를 지니며, 중층 누각 건축으로서 특수성과 희소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국가 문화재로서의 지정 가치가 인정된다”,“문중의 구심 역할을 했던 진안 지역을 대표하는 자연과 합일된 누정으로 자연적인 지형이 이루는 산과 물, 그리고 경관을 즐길 수 있는 누정”이라며 지정 가치를 인정했다. 

또한, “조선 사회의 시대상을 잘 표현하고 있고, 획일적인 누정 건축의 틀에서 벗어나 자연과 누정을 어떻게 조화시키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며, 비스듬한 언덕 지형에서도 누마루에 앉으면 정면에 흐르는 섬진강을 바라볼 수 있고, 마루와 온돌이 있어 정자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거주 공간의 기능도 충분히 고려한 공간계획”이라고 적시했다.

수선루는 건축문화재분과위원회의 지정조사보고서에서 지정 가치를 인정받아 11월 국가 보물 지정 예고를 거쳐, 12월 30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신정일 선생은 “국가 보물로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에 신청하라고 권했는데, 정말로 ‘보물’로 지정되어 참 기쁩니다”라며 연안송씨 문중에서 진안군의 자랑인 보물 ‘수선루’를 오래도록 지키고, 보존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선한 영향력을 끼쳤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부탁한다.

한편, 수선루는 JTBC 드라마 ‘옥씨부인전’, MBC 드라마 ‘연인’, tvN 드라마 ‘이번 생도 잘 부탁해’ 등의 촬영지로 주목을 받았다. 

안내판에는 숙종 12년(1686), 문중에서는 숙종 1년(1675) 주장

진안의 보물 ‘수선루’의 건립 시기를 두고 연안송씨 문중과 진안군 국가유산 팀이 고증 문헌의 신뢰성에 대한 공증을 두고 2년째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연안송씨 10대손인 송영진 씨는 “문중은 ‘연안송씨대동보’에 수록된 ‘수선루유사’와 ‘수선루중수서’를 근거로, 건립 시기를 1675년(숙종 1년)으로 주장한다”라며 “이 문헌들은 수선루의 역사를 기록한 사료로, 당시 건립 과정과 중수 사실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문헌에는 숙종 2년 을묘(肅宗 二年 乙卯)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숙종 2년 을묘’는 숙종이 갑인년(1674) 즉위 후, 1675년을 즉위 원년으로 계산해야 하나, 당시 기록에선 즉위 다음 해를 ‘2년’으로 표기하는 관행이 있었다는 것이 송영진 씨의 설명이다.

송 씨는 “숙종 2년 을묘(1675)는 실제로 숙종 1년을 가리키는 것으로 문중은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근거로 인해 현재 안내판에 표기된 숙종 12년(1686)을 숙종 1년(1675)으로 수정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또한, “‘수선루중수서’에 따르면, 1차 중수 시기도 철유의 5세손인 송석로가 주도해 신미년(1871)에 한 기록을 근거로 보면, 안내판에 적힌 1884년을 1871년으로 수정해야 하고, 송병선(송시열의 9대손)은 수선루를 수리하러 방문한 것이 아니고, 편액을 걸어주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1871년은 조선 고종 시대로,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정책과 맞물려 지역 사대부들이 문화유산 보존에 적극적이던 시기였으며, 이와 달리 1884년은 갑신정변 직후로, 정치적 혼란 속에서 중수 기록이 누락되거나 오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문중의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전북도민일보(2023년 1월 24일자)의 ‘보물 <진안 수선루> 창건 연대와 중수 연대 새롭게 밝힌 보고서 나와 눈길’이라는 제목의 기사 본문에서도 소개되고 있다.

이에 대해 진안군 문화체육과 김양수 국가유산 팀장은 “작년에 팀장으로 와서 작년 말과 올해 초 내용을 청취했다”라며 “그러나 문중의 자료에 나오는 연도만을 가지고 수정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문화재 안내문 수정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닌, 역사적 사실 검증과 학술적 논의를 거쳐야 한다. 따라서 문중의 주장을 검토하기 위해 전문가의 자문과 문헌 감정을 진행해야 하며, 이에 따른 예산과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국가유산 안내문에 대한 변경을 위한 예산 확보는 매년 4월까지 국가유산청에 예산을 올려서 처리해야 하는데, 이런 신청을 해 본 사례가 없다 보니까 미처 못 챙겼던 것 같다”라며 “문중에서 제시한 수리 보고서는 아직 논쟁거리가 있어서 좀 더 자료에 대한 보강(전문가 자문 및 학술대회)한 후에 수정해야 할 것 같아서 기다려 달라고 이야기는 했다”라고 말했다.

신정일 사학자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문중이 보관한 ‘연안송씨대동보’를 진안군에 공식 제출하고, 진안군은 이를 바탕으로 전문가 자문과 학술 심의를 추진해야 한다”라며 “문화재 기록은 단순한 안내판의 숫자 변경이 아닌, 역사적 진실을 보존하는 일이다. 양측이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으면, 후손들은 오류가 난 채로 역사를 접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여행정보 

진안 수선루 

문화재 : 보물(2019년 12월 30일 지정)

위치 : 전북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산57

운영시간 : 상시 개방

입장료 : 무료

주변 명소 : 구산서원, 섬진강 둘레길

‘한국의 정자를 찾아 떠나는 여행’ 코너에서는 진안의 섬진강변을 따라 펼쳐지는 영모정, 쌍계정, 쌍벽루, 만취정 등을 비롯한 한국의 누각과 정자를 찾는 여행을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