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반구천 암각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고래 사냥’ 선사 예술성 세계적으로 인정
- 지난 13일, 제47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유산'으로 최종 등재 - 고래·사슴·사냥 장면 등 생동감 있는 그림 등이 선명 - 남북 문화유산 동시 등재…금강산도 자연·문화경관 인정
[파이낸셜리뷰=조용식 기자] 고래 사냥 장면을 생생히 모샤한 울산 반구천 암각화가 지난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47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유산으로 최종 등재됐다. 이로써 한국은 17번째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되었으며, 북한의 금강산과 함께 남북 문화유산이 동시에 등재된 첫 사례를 기록했다.
선사시대 예술성과 독보적 가치 인정
반구천 암각화는 울주군 반구천 일대 3km 구간에 분포한 국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로 구성된 단일 유산이다.
1971년 울산 태화강 상류의 지류 하천인 반구천 계곡에서 발견된 ‘반구천 암각화’는 한반도 최대 규모의 선사 시대 암각화 유적, 고래·사슴·사냥 장면 등 생동감 있는 그림 등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반구천 암각화 세계유산추진단이 2023년 펴낸 도면 자료집에 따르면, 총 312점의 그림이 확인됐다.
세계유산 후보를 사전 심사하는 자문기구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지난 5월 ‘반구천의 암각화’에 대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한 최종 결과 보고서에서 "탁월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그려진 사실적 그림과 독특한 구도는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예술성을 보여주고, 희소한 주제인 다양한 고래와 고래잡이의 주요 단계를 담은 그림은 선사인들의 창의성이 반영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선사시대부터 약 6,000년에 걸쳐 지속된 암각화 전통을 증명하는 독보적인 증거이면서 한반도 동남부 연안 지역 사람들의 문화 발전을 집약해 보여준다“라고 평가하며, 세계유산 등재 기준인 '인간 창의성의 빚어진 걸작'과 '현존하거나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유일한 또는 적어도 독보적인 증거”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할 것을 세계유산위원회에 권고했다.
그 결과, 이번에 개최된 제47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최종 등재된 것이다.
반구천 암각화, 연평균 42일간 물에 잠겨... 보존 방안 마련 시급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반구천 암각화의 체계적인 보존 방안 마련 또한,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그 이유는 1965년 사연댐 건설로 암각화 주변이 매년 침수와 노출이 반복되면서 훼손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세계유산 등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최근 10년 동안 암각화가 연평균 42일간 물에 잠겨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울산시는 암각화 훼손을 막기 위해 댐 수위 조절, 임시 제방 설치, 임시 물막이 설치 등 여러 안이 나왔으나 쉽사리 해결점을 찾지 못했으며, 현재는 사연댐 여수로에 수문을 설치해 수위를 낮추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이에 세계유산위원회는 신규 유산 등재를 결정하면서 ‘사연댐 공사의 진척 사항과 개발계획을 세계유산센터에 보고하라“고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울산시는 등재를 기념해 19일부터 시티투어 코스를 개편, 반구대·천전리 암각화와 암각화 박물관을 포함한 ‘세계유산 관광’ 테마를 운영할 예정이다. 개편 내용은 기존 토요일 ‘아름다운 달빛 관광’에 주간 ‘시간 관광’을 신설하고, 일요일 ‘패밀리 관광’를 ‘세계유산 관광’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두 코스 모두 반구천 암각화와 암각화 박물관을 포함해 문화유산 체험과 이해를 강조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울산시 관계자는 “이번 시티투어 개편은 반구천 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를 맞아 울산 시민들과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울산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라며 “시민과 국내외 관광객이 울산의 유산을 흥미롭게 접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특화 관광 콘텐츠를 지속 개발하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은 1995년 석굴암·불국사 등 첫 등재 이후 17개 유산을 보유하게 됐으며, 북한은 고구려 고분군(2004년), 개성역사유적지구(2013년)에 이어 금강산을 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금강산은 "한반도 산악 불교문화와 독특한 지형이 결합한 문화경관"으로 평가받으며, 북한의 3번째 세계유산이 됐다. 남북 유산의 동시 등재는 문화교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