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자 ⓶] 섬진강 상류의 정자들, 진안의 쌍계정, 쌍벽루, 만취정

-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산 아래 바위 동굴 속, 쌍계정 - ‘산이 푸르고, 계곡물이 푸르다’, 쌍벽루 - 가는 길이 험난해 멀리서 바라본, 만취정

2025-07-17     조용식 기자

[편집자 주] 우리 조상들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나 시원하게 펼쳐진 강가, 망망대해 바다를 바라보는 곳에 정자(亭子)와 누각(樓閣)을 지었다. 그곳에서 풍류를 즐기고, 사색하며, 토론을 즐기거나 시문을 즐겼다. 이에 본지는 선조들의 온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전국의 정자들을 찾아 한국인의 흥을 발견하기 위해 ‘현대판 김정호’라고 불리는 대한민국 도보 여행가인 신정일 사학자와 함께 ‘한국의 정자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연재한다.

[파이낸셜리뷰=조용식 기자] 10개의 원기둥이 대들보와 우물마루, 기와지붕을 연결하고 있지만, 커다란 동굴이 지붕의 역할을 하듯 동굴 안에 자리한 쌍계정(雙溪亭). 백운동 마을에서 발원한 백운천과 솥내마을에서 흘러온 내가 만난다고 해서 쌍계정으로 불리고 있다.

석문과 동굴 틈새에서 피어난 선비의 풍류, 쌍계정

정자 앞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마치 쌍계사 입구의 쌍계석문처럼 이곳에도 바위가 있다고 하여 고운 최치원이 쓴 ‘쌍계석문’의 4자를 모방하여 새긴 글씨가 정자 안쪽 바위에 새겨져 있다. 또한, 쌍계정을 소개하는 안내판보다 고운 최치원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더 눈에 들어온다.

신정일 사학자는 “고종 3년(1886)에 지역 유림인 오도한 등이 이 정자를 지었죠. 섬진강이 지금은 숲이 우거져서 잘 볼 수 없지만, 섬진강을 바라보면서 이곳에서 노닐었던 옛 선비들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렇게 기교하게 바위 틈새에 정자를 지었다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굉장히 특이한 정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죠”라고 설명한다.

정자 뒤의 암벽에는 석문(石門)이라는 한자가 크게 새겨져 있으며, 바위틈 사이로 흘러 샘물을 형성하고 있다. 쌍계정을 찾은 옛 선비들은 거대한 돌 벽면에 자신들의 이름을 선명하게 새겨 놓기도 했다.

선비들의 이름이 새겨진 벽면 사이로 박쥐를 발견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현장에서 발견한 것만 3마리였다. 아마도 5~6마리 이상의 박쥐가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동굴, 절벽, 암석층에 둥지를 틀고 사는 박쥐에게는 쌍계정의 안쪽 암석과 적당한 습기와 샘물 등이 있기에 서식하기 좋은 장소가 되었을 것이다. 

현판 없는 쌍계정, 10년이 지나도록 방치 상태

쌍계정을 한 바퀴 둘러보니, 정자의 이름이 새겨진 현판이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에 대해 신정일 사학자는 “10여 년 전에 이곳에 놀러 왔던 사람들이 현판을 뜯어내어 불쏘시개로 사용했다”라는 것이다. 

몰지각한 사람들 때문에 소중한 문화재가 소실됐다는 것도 놀랍지만, 쌍계정 현판을 복원하려는 시도가 10여 년이 지나도록 없었다는 점에서도 ‘문화재 관리 소홀’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디지털 진안문화대전의 기록에 따르면, 1985년 쌍계정을 보수했다고 나와 있다. 당시의 기록이나 사진을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소실된 쌍계정의 현판을 다시 온전하게 자리하기를 기대해 본다.

우물마루에 올라서니 두 개의 편액이 보인다. 오도한이 기술한 ‘쌍계정기’와 이원효의 ‘쌍계석문서’ 편액이 걸려 있다.

오도한의 ‘쌍계정기’에는 “석벽의 아래는 오목하게 문을 이루어 많은 사람을 수용할 만하고, 문의 곁의 돌은 평평한 반석(盤石)이어서 하늘이 정자의 터를 만들어 주었다. 반석 아래에는 쌍계(雙溪)가 있는데, 하나는 백운동(白雲洞)에서 발원(發源)하고, 하나는 정천(鼎川)에서 옆으로 흘러 이곳에서 만나 못을 이루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1860년에 이미 쌍계정 터와 고운 최치원을 연결한 이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쌍계석문서’를 작성한 종1품인 숭정대부 이원효이다. 

이원효는 ‘쌍계석문서’에서 “내 고향 동림(백운면 평장리 솥내 부근)으로 돌아와 보니 냇물이 쌍계를 이루었는데 그 옆 석벽이 쌍계문처럼 생겼다. 희라! 고운은 이미 신선이 되어 그 자취를 찾을 수 없는데 고운의 흔적은 찾을 수 있으니 살아 있을 때 남긴 쌍계석문이다. 그래서 사람을 방장산에 보내 고운의 필적을 모사(摹寫)하여 이곳에 각자하였으니 방장산이 아닌 쌍계석문인 셈이다. 고운은 없지만 이 글씨는 고운 것이다. 또 듣기를 고운은 신선이 되었다는데 마이산에 숨어 출몰하는지 어찌 알랴. 혹은 오가며 이 석문에서 놀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석벽 사이에 우리들 70여 명을 (연명하여) 기록해 둔다”라고 서술했다.

우국지사 매천 황현도 1908년에 ‘진안의 쌍계정에서’이라는 시(매천집 제5권)를 통해 가을을 맞이하는 쌍계정을 노래했다. 

“붉은 적벽 반반한데 벽옥 같은 물 흘러와/ 두 냇물이 흘러와서 자그마한 모래섬 이루었네/ 많은 봉우리에도 길은 있으련만 알 길이 없고/ 한 버들과 단풍나무엔 가을 기운이 뻗쳤네/ 지팡이 짚는 소리에 박쥐들 놀라 흩어지고/ 난간에 기대니 그림자와 개와 새우 떠다니네/ 어찌 절경이 평범한 곳에 있을 줄 생각이나 했으랴만/ 오악을 구경하다 보니 부질없이 머리만 희었네.”

여름날 찾은 쌍계정에서 섬진강의 풍경을 감상하기에는 시야를 가리는 것들이 많다. 예전처럼 가지치기하는 일도 적다 보니, 더욱 그럴 것이다. 잎이 떨어지고, 가지 사이로 멋스러움이 묻어나는 섬진강의 풍경이 보이는 가을날, 다시 방문하기로 약속하고, 쌍벽루로 향한다.

타포니 지형 바위 벽에 우뚝 솟은, 쌍벽루

진안군 향토문화유산(유형) 제9호인 샹벽루(雙碧樓)는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누정으로 큰 바위를 뒤에 두고,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지붕 건물을 하고 있다.

신정일 사학자는 “마이산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경승지 중의 한 곳이죠. 마이산에는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이 있는데, 폭격을 맞은 듯한 작은 굴들이 보입니다. 이를 타포니 지형이라고 하죠”라며 “마이산에서 흘러온 맥이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강정리에 이르고, 타포니 지형 바위벽이 있는데, 그 앞에 축대를 쌓아서 지은 정자가 바로 쌍벽루입니다”라고 설명한다.

'산이 푸르고, 계곡물이 푸르다'하여 이름을 쌍벽이라고 지었다는 쌍벽루는 1942년 참봉 전영선이 건립하였다고 한다. 예전 사진에는 시멘트 담장이 쳐져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나, 목부재 교체와 단청을 새로 하면서 철거하였다고 한다. 

취재 당시 입구는 줄로 막아두었기에 정자로 올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자 앞으로 도로가 나고, 주택들이 들어서서 시원한 풍경을 감상하기는 힘들다. 다만, 정자가 등지고 있는 타포니 지형 바위 벽면을 바라보는 것도 또 하나의 감상 거리이기도 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았던, 만취정

덕태산 백운동에서 발원하는 백운천이 흐르고, 평지리와 이웃 백운면 평장리의 경계를 이루는 시루봉 아래 세워진 만취정. 진양 하씨 다섯 형제가 마을로 이사 온 뒤에 지었다고 전해진다.

만취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한 건물로 8개의 원기둥 위로 용두 모양의 익공이 올려져 있다. 찾아가는 길이 험난하고, 길도 잘 다듬어지지 않아 멀리서 드론 촬영으로 만족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는 곳이다. 

디지털 진안문화대전에 따르면, 만취정 바위에는 다섯 형제의 이름과 계동 천현 현계의 계원 30여 명의 명단이 나란히 새겨져 있다고 한다. 드론으로 촬영한 사진과 영상에서도 벽면에 흰색으로 5명의 이름이 새겨진 모습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