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자 3] 순창 귀래정, 조선 선비의 지조가 서린 역사의 보물
- 계유정난의 아픔을 안고 찾은 신말주의 은거지, 귀래정 - ‘날아가는 학’과 같은 귀래정, 순창의 명품 조망대 - 산경표의 고장 순창, 귀래정에서 시작된 지라학의 맥
[파이낸셜리뷰=조용식 기자] 전라북도 순창군 남산마을에 자리한 귀래정(歸來亭)은 조선시대 선비 신말주(申末舟)의 절의와 학문적 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역사적 공간이다.
세조 2년(1456) 신숙주의 동생인 신말주가 세운 이 정자는 계유정난의 정치적 격변기를 상징하며, 오늘날까지 조선시대 선비 문화의 향기를 전하고 있다.
신말주, 벼슬을 버리고 낙향... 귀래정을 짓다
신정일 사학자는 “신말주는 형 신숙주가 계유정난에 가담해 단종을 폐위하고 세조의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 벼슬에 환멸을 느껴 이곳 순창으로 낙향을 했지요”라며 “당시 순창현에서도 좀 떨어진 산비탈에다가 집을 지어 놓고 자기의 지조를 지켰다”라고 말했다.
신말주는 사간원 우헌납의 벼슬을 버리고, 처가인 순창 설씨 집안의 고향인 순창 남산마을에 정착해 귀래정을 세웠다.
서거정은 신말주와 정자의 승경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순창에 있는 정자의 이름과 기문을 짓도록 요청받아, ‘귀래’라 이름 짓기를 청했다고 한다. ‘귀거래(歸去來)’는 진나라의 은사 도잠의 말씀인데, 옛사람들은 해석하기를 ‘그 관을 돌려주고 직을 떠나서 자기 집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라 하였다.
신말주는 서거정의 말에 공감하고, 정자의 이름을 귀래정이라 불렀으며, 신말주의 호도 귀래정이다.
당대 문인들도 칭송한 순창의 매력
신정인 사학자는 “예전에 옛사람들이 정자를 지으면, 자기가 아는 사람 또는 신뢰받는 사람한테 정자에 대한 기문이나 시를 청해 편액으로 걸어두는 것이 기본이었다”라며 “귀래정을 보면, 당대 문인인 강희맹의 5언 6수 시편과 서거정의 귀래정기 등을 비롯해 19개의 현판과 편액이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귀래정을 들어서는 입구에도 강희맹의 한시 ‘귀래정’과 김인후의 한시 ‘영귀래정’의 원문과 한글번역본, 서거정의 ‘귀래정기’ 한문 원문과 번역본을 새긴 비석이 세워져 있다.
서거정의 ‘귀래정기’를 보면, “순창의 남쪽에 있는 산들은 중첩하고 산세는 매우 기위(寄偉)하여 꿈틀꿈틀하고 낮게 돌아서 혹은 용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범이 뛰는 것 같기도 하며, 혹은 굽히고 혹은 일어나며 혹은 내려앉아 동봉(東峯)이 되었는데 봉우리의 꼭대기는 땅이 아주 평탄한지라”라며 “후(신말주)가 여기에 서너 칸을 지으니, 정자의 좌우에 만죽(萬竹) 단란(檀欒)이 울창하여 사시절 어느 때나,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달이 뜨나 눈이 오나, 모두 아름다워서 그 아름다운 경치가 하나 둘로 말할 수 없다. 그 가운데 화초를 심으니, 홍백색(紅白色) 주자색(朱紫色)이 서로 이어 피고 져 더위나 추위에 끊임이 없도다”라고 칭송했다.
건축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전남의 담양이나 경남 함양 지역에 있는 것처럼 주변을 볼 수 있게 확 트인 공간에 방을 들여서 겨울에도 지낼 수 있게 되어 있다. 또한 산봉우리에 위치해 있어 마치 ‘날아가는 학’가 같은 형국이다.
신정일 사학자는 “순창에서는 귀래정을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라며 “순창의 축제가 있을 때는 ‘귀래정을 아십니까?’라며 이벤트를 통해 귀래정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차를 한 잔씩 주는 이벤트를 하는 것은 어떨까?”라고 제안하기도.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못한다.”
“당시 순창은 조그마한 현이었거든요. 신말주는 현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산비탈에다 집을 지었는데, 이는 ‘선비의 지조를 지켰다’라는 의미로 해석되며, 후에 ‘산경표’로 유명한 여암 신경준 선생이 신말주의 후손으로 태어났지요.”
신경준은 역사 지리지인 ‘산경표’를 편찬하면서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못한다’라고 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산과 강의 분포 원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지리학적 명제로 남아 있다.
‘귀래정기’에 따르면, “정자에 올라 멀리 바라보면, 남원의 보련산과 곡성의 동지악의 푸른 것이 연이어 높이 솟아 서로 마주 읍하는 것 같고 (중략) 광덕산의 산과 물은 용이 서린 듯 뱀이 또아리를 튼 듯이 봉우리 아래로 감고 돌아 적수와 합하니, 그 물이 맑고 깨끗하여 희롱할 만하고 거울삼아 비칠 수도 있다”라고 적고 있다. 여기서 광덕산은 강천산의 옛 지명이다.
섬진강이 흐르는 순창의 산세는 높고도 아름답다. 신경준 선생이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못한다’라고 했던 말도 어려서부터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신정일 사학자는 “산악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신경준 선생이 편찬한 ‘산경표’이다. 곧 순창은 산경표의 고장인 것”이라며 “전주에서 순창으로 들어오는 들머리와 담양에서 순창으로 들어오는 들머리에 ‘순창은 산경표의 고장입니다’라는 안내와 함께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못한다’라는 글귀를 걸어두었으면 좋겠다”라고 조언한다.
이와 함께 신경준 선생의 고택과 귀래정, 순창의 산(강천산, 채계산, 용궐산)과 섬진강(요강 바위) 등을 테마로 산악인을 초청하는 행사나 축제가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여행 정보
위치: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남산마을
관람: 연중 개방 (무료)
가볼만한곳 : 순창발효테마파크, 강천산, 채계산, 용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