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미의 여행 테라피] 안동 소호헌, 맹인 어머니의 약밥, 안동의 고택에서 만난 사랑의 손 맛

- 퇴계가 맺어준 '눈먼 신부'와 선비의 인연 - 조선 전기 고택에 깃든 모성애, 약밥에 담긴 사연 - 손끝으로 전하는 사랑의 맛, 약밥에서 안동 생강까지 - '이야기 박물관' 안동 고택, 살아있는 문화 유산

2025-10-27     이동미 기자

[파이낸셜리뷰=이동미 여행작가] 안동(安東)하면 청명한 가을하늘과 물도리동의 하회마을이 생각나고 온갖 먹거리도 떠오른다. 따끈짭짤한 안동찜닭과 포실한 안동 간고등어, 헛제삿밥, 월영교 달빵 등이 있다. 그리고 여기 ‘맹인 어머니 약밥’도 있다. 맹인 어머니가 어떻게 약밥을 만드셨을까? 왜 만드셨을까? 맛은 어떨까? 궁금해하며 안동으로 달려가 본다. 

낙동강 지류를 따라, 소호리로

안동시에서 남쪽 일직면으로 내려가면 낙동강 지류인 미천강이 흐르고 길옆 소호리에 소호헌이 자리한다. 안동 소호헌(安東 蘇湖軒), 이곳이 바로 ‘맹인 어머니 약밥’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솟을대문을 열자, 세월이 숨 쉬는 고택이 모습을 드러낸다. 안으로 들어서면 두 채의 건물이 보인다. 오른쪽이 보물로 지정된 소호헌으로 ‘조선 전기 때 문신이었던 서해(徐嶰 1537~1559)가 서재로 쓰던 별당’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소호헌은 옆면 2칸 앞면 4칸의 건물이다. 앞면 4칸 중 3칸은 대청이고 1칸은 누마루이며 온돌방을 붙였다. 누마루의 들장지를 올리면 시원한 바람이 막힘없이 소호헌을 훑으며 돌아다닌다. 책을 읽거나 사색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공간이 있을까 싶다.

잔디밭을 건너 내당으로 가본다. 세월의 시간이 결결이 박힌 마루에 오르니 왼쪽 방 문위에 커다란 현판이 걸려 있다. ‘약봉태실(藥奉胎室)이다. 약봉(藥峯) 서성(徐渻, 1558~1631)이 이곳에서 태어났으니 ‘약밥’의 이야기가 시작된 곳이라 할 수 있다.

퇴계 문하의 제자, 맹인 어머니의 사랑

이제 우연히 만난 약봉의 23대 후손 서미원 씨로부터 소호헌과 약밥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어보자. 때는 16세기, 약봉의 아버지는 함재(涵齋) 서해(徐嶰, 1537~1559)로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문하에 있었다. 약봉의 어머니는 청풍군수 이고(李股)의 딸 고성 이씨(固城李氏)로, 이고는 안동의 명소 임청각(臨淸閣, 보물 제182호)을 지은 이명(李洺)의 다섯째 아들이다. 

이고는 소호헌에서 아들 없이 무남독녀 외동딸을 키우고 있었는데 퇴계에게 혼담을 부탁했다. 퇴계는 제자 중 서애 류성룡(柳成龍)과 함재 서해를 두고 고심하다가 결국 함재를 추천해 혼사가 이루어졌다. 당시 이고의 딸은 시각장애인이었고 함재는 이를 알고도 혼인했다고 한다. 

세 살에 홍역으로 시각을 잃은 신부는 혼인 첫날 밤, “제가 눈이 보이지 않아 당신 삶에 누가 될 것입니다. 새벽이 오기 전에 떠나 주세요”라고 했다. 하지만 함재는 ‘내가 떠나면 혼사가 깨진 당신이 무척 힘들 것’이라며 ‘하늘이 준 인연이니 잘살아 보자’고 다독였다. 그뿐만 아니라 아내가 외동딸이기에 이고(李股)의 제사를 맡는 외손 봉사(外孫奉祀)도 약속했으며 지금도 이는 이어지고 있다.

약봉의 탄생과 약밥의 시작

이후 함재 부부는 소호헌에서 꿈 같은 신혼을 보내며 든든한 아들도 낳았으니, 그 아들이 바로 약봉이다. 꽃길만 있을 줄 알았던 이들에게도 시련의 시간이 닥쳤다. 23살의 나이에 한 살배기 아들을 두고 함재는 세상을 떠난 것이다. 

아내는 남편의 삼년상을 치른 후 약봉의 앞날과 교육을 위해 한양으로 거처를 옮겼다. 하지만 순탄치만은 않았다. ‘아비 없는 자식, 맹인 어머니 자식’이라며 약봉은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했다. 이에 이 씨는 소호헌에서 함재와 함께 먹던, 그리고 어린 약봉에게 먹이던 좋은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선천적이 아닌 홍역으로 인한 시력 상실이었기에 아주 조금은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녀는 손끝의 기억으로 찹쌀을 씻고, 밤과 대추를 썰고, 꿀을 달여 찰밥을 지었다. 밤, 대추, 잣 등을 더해 말 그대로 ‘약이 되는 밥’이다. 맹인 어머니는 손끝으로 찰기와 온도를 느꼈고, 냄새로 밤과 대추의 풍미를 확인하며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었을 것이다. 해서 약봉의 어머니가 만든 모든 음식에 ‘약(藥)’자가 붙었다. 

견과류가 들어가 꼭꼭 씹어 먹게 되며 귀한 재료인 꿀이 들어가는 찰밥은 ‘약밥’이 되었고, 유밀과는 ‘약과’가 되었으며, 술은 ‘약주’가 되었다. 약봉의 어머니가 만들어 ‘약’ 자가 붙었다는 설의 유래가 되었다. 

약봉이 다니던 서당에도 약밥과 약과를 보내니 아비 없는 자식이라 놀림당하고 맹인 어머니라 조롱하던 학동들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에겐 맛난 먹거리가 최고의 해결책인가 보다. 

한양 도성에 소문이 퍼져 맹인 어머니의 약밥을 찾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졌고, 약봉은 덕분에 학문을 익히고 반듯하게 자라 평안감사·호조판서·병조판서 등을 역임하며 나라의 중요한 인재가 되었다. 임금님도 ‘천하의 진미’라 칭찬했다고 한다. 

전통의 맛, 안동 생강으로 되살리다

이제 소호헌 누마루에 올라본다. 상 위에 약밥과 약과, 약주와 안동식혜가 놓이고 누마루 기둥 너머로 맹인 어머니의 이야기가 샌드아트로 펼쳐진다. 그 앞에서 갓을 쓰고 한복을 입은 출연자들이 음악과 낭송을 섞은 드라마로 소호헌의 이야기를 선사한다. 공연자와 관객이 지척에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공유하며 이야기 속 음식을 먹는 즐거움은 그야말로 오감 만족(五感滿足) 콘텐츠다. 

탁자 위에 올라온 약밥을 오물거리며 그 맛을 느껴본다. 맹인 어머니 약밥에는 뭔가 독특한 향이 있다. 무엇일까? 상에 오른 약밥은 안동 생강연구소 강미혜 대표의 작품이다. 맹인 어머니 약밥의 레시피가 남아 있지 않아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만든 것으로 약밥에 ‘생강 진액’이 들어갔다. 안동은 사질토양이라 뿌리식물인 생강이 알이 굵게 자라며 향이 좋다. 그러고 보니 안동식혜에 생강이 들어가는 이유와 안동 맘모스제과에 진저 파운드케이크가 맛난 이유가 설명된다.

생강진액은 설탕을 넣어 만드는 생강청과 달리 제조 시간이 몇 배나 들지만 매운맛이 순화되어 부드러운 맛이 올라가며 효능은 더욱 좋아지기에 강 대표는 맹인 어머니 약밥에 ‘안동 생강’을 적극 활용했다. 먼저 기본 밥을 할 때 생강가루를 넣는다. 그리고 밥에 간장과 견과류, 생강진액을 섞어 양념 후 한 번 더 쪄낸다. 

약과에도 생강 진액이 들어간다. 생강가루를 넣은 반죽을 약과 모양으로 만들어 튀긴 후 조청에 즙청하는데 이 조청에도 생강 진액을 넣는다. 이렇게 생강을 적절히 활용하면 다른 재료들과 어우러지며 생강의 매운맛은 순화되고 약성(藥性)은 극대화된다. 이때 넣는 생강 진액은 2021년 ‘경북 여성 창업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강 대표가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안동의 고택, 이야기 박물관

이번 행사는 국가유산청의 공모사업인 ‘고택·종갓집 활용 사업’의 일환이다. 국가유산청, 경북도, 안동시가 공동 주최하고 세계유산콘텐츠센터가 주관하는 프로그램으로 이름은 ‘소호헌에서 만나는 종가 음식, 맹인 어머니의 약밥’이다. 

세계유산콘텐츠센터는 대구서씨 문중으로부터 보물인 고택 소호헌을 위탁 운영하고 있으며, ‘맹인 어머니의 약밥’ 같은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소호헌 고택을 감상하고 이야기를 들으며 소호헌 곳곳에 놓인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한다. 

마당에서 시각장애인 체험을 비롯해 다식 만들기, 활쏘기, 돌포 쏘기, 이머시브 공연 등 소호헌 관련 체험을 하고 ‘약봉태실’에서 하룻밤을 잘 수도 있다. 이를 통해 맹인 어머니의 약밥을 음미하고 장애의 한계를 넘어선 사랑,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정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안동에는 고택이 600여 채나 되며, 이 중 사람이 살지 않는 고택은 95%에 달한다’고 세계유산콘텐츠센트의 권두현 이사는 전한다. 오늘 둘러본 소호헌 하나에만도 이렇게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으니, 안동의 고택은 무궁무진한 문화콘텐츠 자원의 보고이자 거대한 이야기 박물관이다. 

이처럼 여러 사람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재능과 아이디어를 합해 안동지방에 ‘한 고택, 한 콘텐츠’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택의 재미난 콘텐츠를 하나씩 발굴해 내기를 응원하며 내년에는 더욱 신선하고 흥미로운 소식을 기대해 본다. 

여행 팁

위치 : 경북 안동시 일직면 소호헌 길 6
운영 : 세계유산콘텐츠센터(소호헌 숙박 & 종가음식 체험 프로그램)
체험 : 약밥 만들기·시각장애 체험·고택 투어·이머시브 공연
문의 : 안동시청 문화유산과 / 세계유산콘텐츠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