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미의 여행 테라피] 아기공룡 둘리는 몇 시에 태어났을까? ― 경북 동해안 지질 공원을 따라 걷는 지구의 하루

- 공룡 둘리는 23시 38분, 인간은 마지막 5초에 태어났다 - 경주에서 울진까지, 46억 년 지구사의 현장을 따라가는 길 - 동해안 바위들이 전하는 생명의 기록과 겸손함의 미학

2025-11-14     이동미 기자

[파이낸셜리뷰=이동미 여행작가] 철썩철썩~ 가을 바다의 파도 소리는 시원함보다는 오히려 차가움에 가까웠다. 세상의 시름과 근심을 모두 씻어내는 듯한 동해의 바다와 파도를 친구 삼아 ‘2025 경상북도 지질 대장정’에 올랐다. 2025년 11월 6일부터 9일까지, 3박 4일간 경주·포항·영덕·울진을 두루 잇는 여정이었다.

둘리와 함께 떠나는 지구 시간 여행
지구의 나이, 46억년을 하루 24시간으로 압축한다면...

다양한 질감으로 형성된 바위와 지형을 찾아가는 이 지질탐방은, 지구과학 시간에 배웠던 수많은 단어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중생대, 백악기… 익숙한 듯하지만, 막상 머릿속에서 정돈되지 않는 시간들.... ‘어떻게 하면 이 방대한 지질의 시간을 쉽게 정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만화 속 주인공, 바로 ‘아기 공룡 둘리’였다. 동해안을 따라 형성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생성 배경을, 아기 공룡 둘리가 태어난 시간과 연결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탄생한 이 글의 주제는 ‘둘리와 함께 떠나는 지구 시간 여행’이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해 보자. 이해를 돕기 위해 지구의 나이인 46억 년을 하루 24시간으로 압축해 보자. 이렇게 계산하면 1시간은 약 1억 9천만 년에 해당한다. 우와~ 상상조차 어려운 시간이다.

지구의 탄생을 0시로 본다면, 지각이 처음 굳은 시점은 새벽 1시쯤이다. 바다에서 최초의 세포가 태어난 것은 오전 7시, 삼엽충이 바닷속을 기어다니던 때는 정오 무렵이다. 그리고 우리의 친구, 공룡이 등장한 시간은 오후 11시경이다. 이렇게나 ‘후반부’에 등장하다니! 공룡은 23시 35분에서 40분 사이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아기 공룡 둘리도 이때쯤 태어났다.

그렇다면 인류가 문명을 세운 시간은 언제일까? 24시가 되기 직전인 마지막 5초에 불과하다. 이렇게 보니 인간이 지구의 주인처럼 구는 것은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다.

이제 ‘지구 하루 24시간 시계’를 손에 들고 동해안으로 지질 대장정을 떠나보자. 이 시계로 시간을 환산해 보면, 남에서 북으로 이동하는 경주–포항–영덕–울진 여정은 지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며 과거로 걸어가는 것과 같다.

경주의 주상절리와 화산재층은 지구 시계로 약 23시 55분 무렵에 형성되었다. 포항과 영덕은 23시 경의 초반과 중반, 즉 공룡이 활약하던 시기와 맞닿아 있다. 반면 울진의 화강편마암은 그보다 훨씬 이전으로, 지구 시계로는 18시 정도에 해당한다. 즉, 동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갈수록 점점 더 오래된 지구의 시간을 밟아가는 셈이다.

경주, 신생대의 끝을 걷는 길

경주는 고대 신라의 도읍일 뿐 아니라, 지질학적으로도 비교적 ‘최근’에 속하는 시간대를 품고 있다. 지질 대장정 순례길의 첫 코스인 골굴암은 신생대 네오기(약 2천만 년 전)의 퇴적층으로 응회암층에는 화산재가 굳으며 만들어진 자연의 주름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속에 사람의 손길이 더해지며 자연 암석과 인공 석굴이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형태의 사찰, 골굴사가 완성되었다. 이곳에서 자연과 몸을 하나로 잇는 선무도가 피어나고, 마음과 호흡이 고요히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자연과 인간이 함께 공존하는 풍경을 보여준다.

부채꼴 주상절리로 유명한 파도소리길의 양남 주상절리는, 뜨거운 용암이 식어가며 육각형 기둥으로 갈라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이는 완벽한 자연의 ‘시간 기록’이며, 지구 시계로는 23시 55분, 인류가 태어나기 불과 5분 전 마지막 화산의 숨결이다.

검은 현무암 절벽은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 있고, 지층이 만들어지던 때에는 이미 공룡은 사라지고 포유류가 세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경주의 땅속은 여전히 뜨겁고 역동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던 시기였다.

포항, 바다가 깎고 땅이 솟은 시간

경주를 지나 북쪽으로 향하면 포항의 해안선이 부드럽게 펼쳐진다. 이곳은 신생대 네오기 지층의 흔적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곳으로, 대표적인 지질 명소가 바로 호미곶 해안단구다.

이 해안단구는 수백만 년에 걸쳐 해수면이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고, 지각이 밀려 올라오기를 되풀이한 끝에 빚어진 자연의 작품이다. 현재 우리가 서 있는 땅이 한때는 바다였고, 지금의 바다가 과거에는 육지였다는 사실은 지구의 ‘호흡’이 얼마나 길고 깊은지를 일깨워 준다.

지구 시계로 환산하면 약 23시 54분, 2천만 년 전의 시간이다. 지구는 여전히 천천히, 그러나 쉼 없이 자리를 바꾸며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시간의 무게를 견뎌낸 돌들은 오늘도 사람의 발걸음을 받아내고 있다.

영덕, 공룡이 노닐던 바다

이제 지구 시계는 23시 초반으로 되돌아간다. 경주와 포항이 신생대의 마지막 장면을 보여준다면, 영덕은 그보다 훨씬 이전, 약 23시 06분~23시 30분대, 즉 쥐라기와 백악기,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시간대로 안내한다.

특히 영덕 해맞이공원에는 약 1억 8천만 년 전, 지구 시계로 23시 06분에 해당하는 암석을 품고 있다. 이곳의 화강섬록암은 깊은 지하에서 천천히 식은 마그마가 굳어 만들어진 것으로, 암석의 절리·포유암·돌개구멍은 지각이 팽창하고 식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해안을 따라 걷다 보면, 지구의 오래된 시간이 물결처럼 발밑을 스쳐 지나간다.

조금 더 북쪽으로 향하면 죽도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갈과 모래가 굳어 형성된 퇴적층이 작은 섬의 형태를 이룬 곳으로, 중생대 백악기(지구 시계 23시 28분)의 기록을 품고 있다. 이 일대가 화산재와 바닷물이 뒤섞였던 얕은 바다였음을 말해주는 흔적이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아기공룡 둘리’다. 둘리는 이야기 속에서는 빙하에 갇힌 공룡이지만, 과학적으로 계산해 보면 백악기 후기, 약 7천만 년 전(지구 시계 23시 38분)의 생명이다. 만약 둘리가 실제로 존재했다면, 영덕의 바위 해안을 뛰놀며 화산재 냄새가 섞인 바닷바람을 맞고 있었을 것이다.

울진, 선캄브리아의 바위들

지질 대장정의 마지막 여정은 울진이다. 이곳은 지구 시계로 18시~19시 무렵, 약 10억 년 전 선캄브리아기의 세계로 들어간다. 덕구온천을 품고 있는 지역의 화강편마암은 지구가 아직 원시의 열로 가득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암석으로, 석영·장석·운모가 층층이 결을 이루며 얽혀 있다. 지금도 지열 활동이 계속되어 온천수가 솟아오르니, 그때 형성된 지질이 오늘날까지 우리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셈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건너던 왕피천 일대에서는 화강암과 편마암, 다양한 퇴적층이 한데 얽힌 장대한 지층이 펼쳐진다. 이곳은 선캄브리아기(期) 말에서 고생대 초기에 해당하며, 하천이 수억 년 동안 깎아 만든 계곡에 긴 시간의 흐름이 고요히 새겨져 있다.

마지막 목적지인 울진 성류굴에 들어서면 동굴의 석주와 종유석이 은은하게 빛난다. 이 석회암층은 고생대 후기, 바로 석탄기 무렵에 형성된 것이다. 수억 년 동안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진 물이 조용히 종유석을 키워왔고, 그 느린 성장은 인간의 시간 감각으로는 헤아리기 어려운 경이로움으로 다가온다.

인류의 등장, 겸손함이 필요한 마지막 5초

경주에서 울진으로 이어지는 길은 지도 위에서는 200km 남짓이지만, 지질학적 시간으로 보면 수십억 년을 가로지르는 장대한 여행이다.

“아기공룡 둘리는 몇 시에 태어났을까?”

지구의 시간을 하루 24시간으로 환산해 보면, 둘리는 밤 23시 38분, 인류보다 약 21분 55초(1억 4천만 년) 먼저 태어났다. 그리고 23시 59분 55초, 지구 하루의 마지막 5초 쯤에 동해안을 걷는 인류가 등장했다. 지구는 신생대의 마지막 화산활동을 멈춘 뒤에야 비로소 곁을 허락했으니 우리는 지난한 지구의 시간 중 ‘최근 5초’에야 태어난 미미한 존재다.

동해안 지질 공원은 발치에 굴러 다니는 돌멩이 하나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오랜 시간의 기록이며 존엄한 생의 흔적이다. 이제 이 길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이 길에서 조금 더 겸허함의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