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Hi스토리] HMM, 벼랑 끝에서 한국 해운 역사 바꾸기까지
2008년 리먼 사태로 전 세계 해운업 장기 불황 이후 경쟁사 '한진해운' 파산으로 반사이익
[파이낸셜리뷰=김경은 기자] 해운업은 세계 경제의 온도계와 같다. 국제 무역의 핵심인 해운업은 글로벌 경기에 따라 운임과 수익이 크게 변동하기 때문에 리스크가 높은 산업 중 하나로 꼽힌다.
국내 유일의 컨테이너 선사이자, 전 세계 해운사 8위인 HMM은 창사 50년간 숱한 국내외 경제 위기를 겪으며 격랑(激浪)을 마주해 왔다.
정주영 회장의 아세아 상선
HMM의 모태는 1976년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이 설립한 아세아 상선이다.
1970년대는 제1차 오일쇼크의 여파로 국제 유가가 폭등하며 유조선의 운송량이 감소했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 상황으로 발주처가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배를 인수하지 않자, 정주영 회장은 남겨진 3척의 초대형유조선(VLCC)으로 아세아 상선을 창업했다.
그렇게 출발한 아세아 상선은 1983년 현대상선으로 상호를 변경한 후, 컨테이너 사업에 본격 진출하기 시작했다. 1995년 코스피 상장을 기점으로, 1998년 ‘금강산 관광선’ 대북사업을 운영하며 ‘해로 관광’의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현대상선은 1999년 매출 목표를 40억 2천만달러로 정했는데, 해당 목표 수치는 그 당시 국내 해운업계 사상 최초 매출액으로 알려질 정도였다.
리먼 브라더스가 불러온 세계 경기 침체, 그리고 경쟁사의 몰락
2008년 발생한 리먼 브라더스 사태는 전 세계 해운시장을 크게 뒤흔들었다. 리먼 사태는 월가의 투자은행인 리먼 브라더스가 미국 부동산 가격 하락과 지나친 차입금으로 파산하며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사건이다.
리먼 사태 이후 유가 상승과 경기 둔화가 겹치면서 선사들은 ‘규모의 경제(선박 크기가 커질수록 단위 운송량 당 비용이 절감돼 평균비용이 낮아지는 현상)’에 이를 수 있는 대형선 발주 전략에 나섰다. 목적은 오로지 톤당 운임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대형선 발주 공급 과잉이 심화하며 운임은 급락했고, 비용을 아낀 것보다 오히려 적자 폭이 커지면서 장기 불황의 길을 걷게 됐다.
그러다 2016년, 쌓인 적자가 한계에 달하면서 정부는 자구노력 부족으로 당시 국내 1위이자 세계 7위 선사였던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를 결정했다. '국내 2위' 현대상선 경쟁사의 파산은 글로벌 물류 대란을 일으키는 등 한국 해운업의 신뢰도가 크게 추락하는 계기가 됐다.
파산 직전 극적으로 살아남은 현대상선은 이후 산업은행 등의 채권단 관리 체제로 들어가며 현대그룹에서 완전히 분리됐다. 정부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으며 긴박했던 유동성 위기를 줄여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홀로선 HMM, 코로나 팬데믹으로 최대 실적 기록
2020년 현대그룹에서 벗어난 현대상선은 상호를 HMM으로 변경하며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또 2018년 정부가 추진한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이 본격적으로 실행되면서 HMM은 2만 4000TEU급 컨테이너선 12척이라는 초대형 선박을 유럽 노선에 순차적으로 투입하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 팬데믹은 HMM에 또 다른 기회로 작용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 항만이 봉쇄돼 발생한 물류 마비로, 운임지수가 크게 상승한 것이다.
한국관세물류협회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직전에 800p~900p 선을 오르내렸던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2020년 11월 2000p선 ▲2021년 4월 3000p선 ▲2021년 12월에는 5000p 선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운임지수가 5배 이상 폭등한 상황에서 초대형 선박을 미리 받아 두었던 HMM은 2020년 영업이익 9808억원으로 2010년(6017억원) 이후 10년 만에 연간 흑자를 기록했다.
2021년 매출 역시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HMM의 실적 공시에 따르면, 2021년 매출은 총 13조 7941억원으로 전년 6조 4133억원 대비 115%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7조 3775억원으로 전년 9808억원 대비 6조 3967억원 개선됐다. 당기순이익은 전년 1240억원 대비 5조 3262억원으로 5조 2022억원 증가했다.
커진 몸값 감당할 새로운 주인 정해질까
현재 HMM은 산업은행, 한국해양공사와 같은 정부 산하기관들이 약 70% 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구조다. 이에 정부는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민영 경영 체계로의 전환을 위한 매각을 추진해 왔다.
2024년에는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하림그룹과 매각 협상이 진행됐지만 HMM 매각 이후의 경영 주도권을 두고 정부 측과 이견을 좁히지 못해 최종 결렬됐다.
올해 들어서는 포스코, 동원 그룹 등을 후보군으로 두고 재매각 추진에 나서고 있지만, HMM의 높은 몸값은 매각 협상에 있어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이달 23일 기준 HMM의 시가총액은 19조 1500억원에 달한다. 산업은행(35.42%)과 한국해양진흥공사(35.08%)의 HMM 지분 전량을 사들인다고 가정하면 최소 13조원의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HMM은 2030년까지 중장기 전략 투자를 통해 매출을 15조 원으로 늘리고 연평균 9%의 매출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최근 글로벌 해운 동맹 ‘디 얼라이언스(THE Alliance)’에 가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