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Hi스토리] HJ중공업, 대한민국 1호 조선소의 90년사
구 한진중공업, '조선·건설' 투트랙 종합 기업 2조원 쏟아부은 필리핀 수빅조선소, 예견된 실패?
[파이낸셜리뷰=김경은 기자] 새해부터 이어진 조선 업계의 수주 랠리로, K-조선업에 일명 ‘슈퍼사이클’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선박의 긴 수명에 따른 교체 수요와 글로벌 경기 흐름이 맞물리는 조선업은 호황의 주기가 보통 20년 정도로 긴 편이다.
이렇듯 2000년대 초반 ‘1차 슈퍼사이클’ 이후 호황의 순간이 다시 돌아온 지금, 1937년 설립된 HJ중공업은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새로운 호황기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국내 최초 조선소 ‘영도조선소’ 설립과 한진그룹
HJ중공업의 전신은 일제강점기였던 1937년, 부산 지역에 일본 자본으로 설립된 ‘조선중공업’이다. 당시 거점이었던 영도조선소는 현재까지도 국내 1호 조선소이자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조선소로도 남아 있다.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이곳에서 일본 해군의 선박을 수주 및 건조하는 등 해방 직전까지 규모를 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초기 조선중공업은 일본 미쓰비씨 중공업과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합작 투자로 설립됐는데, 1950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한조선공사로 사명이 변경되며 국영기업 체제로 운영됐다.
그리고 1989년, 조선산업 합리화 계획에 따라 조남호 회장이 이끄는 한진그룹이 대한조선공사를 인수하며 ‘한진중공업’으로 새출발을 알렸다.
인수 10년 뒤에는 한진중공업이 한진건설과 한진종합건설 등을 합병하며 조선뿐만 아니라 건설 부문 강화에 나섰고, 그렇게 ‘배도 만들고 건물도 짓는’ 지금의 종합중공업 기업 체제가 완성됐다.
조선업 불황과 ‘숙련도 부족’ 수빅조선소의 눈물
영도조선소의 부지는 약 8만 평(26만㎡)로,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건조하기에는 공간이 좁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2005년 한진그룹 자체에서 계열 분리된 조남호 회장의 한진중공업은 2007년 인건비가 한국의 10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한 필리핀 수빅 지역에 조선소를 짓고, 약 23억 달러(한화 약 2조 6000억)라는 대규모 투자에 나서게 된다.
수빅조선소((HHIC-Phil Inc.)의 부지 면적은 영도조선소의 약 10배가 넘는 264만㎡로, 초대형 컨테이너선 같은 상선과 대형선을 건조하기에 제격이었다.
한창 전성기였던 2014년에는 수빅조선소가 수주 잔량 기준으로 175만 7천 톤의 일감을 보유하며 세계 10위 조선소에 등극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조선업의 장기 불황이 시작되자, 배 가격이 폭락하고 수주량은 급감하며 대규모 적자 현상이 지속됐다. 특히 수빅조선소는 거대한 부지와 시설을 유지하기 위한 관리비 등의 비용이 불어나 경영난의 직격탄을 맞았다.
일각에서는 수빅조선소의 실질적인 실패 원인이 '숙련도·기술력이 부족한 필리핀 현지 노동자’에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조선업은 건설업보다 훨씬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데, 선박 기술이 전무한 필리핀 노동자들은 공정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웠을뿐더러 이로 인해 품질 부분도 저하될 수밖에 없음을 간과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인건비 절감으로 큰 수익을 얻고자 설립된 수빅조선소는 2016년 영업손실 1820억원을 시작으로 2017년 2335억원, 2018년 3·4분기까지 601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본격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9년 적자에 허덕이던 수빅조선소가 필리핀 현지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자, 한진중공업은 한 달 뒤 “수빅조선소의 자산평가 손실 및 충당부채 설정으로 자본 총계가 마이너스 7422억을 기록해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고 공시했다.
공시에 따르면, 한진중공업이 수빅조선소의 현지 대출에 대해 제공한 보증 채무만 약 4억 1000만 달러(약 4600억 원)에 달했다.
이후 보증 채무를 해소하는 대신 필리핀 현지 은행들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출자전환함에 따라, 최대 주주였던 조남호 회장의 지분은 전액 소각됐으며 경영권은 채권단으로 넘어가게 됐다.
조선 분야 부활했지만, 건설에선 부실 공사·안전 관리 등 내부 리스크 존재
2021년 한진중공업은 동부건설 컨소시엄에 인수된 이후, 사명을 HJ중공업으로 바꾸며 새롭게 출발했다.
특히 올 초에는 HJ중공업이 지닌 MRO 역량을 바탕으로 미국 해군과 MSRA(함정정비협약)를 체결하면서, 향후 5년간 연 20조 원 규모에 달하는 미 해군 함정 MRO 시장에 본격 진출하게 됐다.
실제 HJ중공업의 조선 부문 매출이 ▲2022년 3201억 원 ▲2023년 7248억 원 ▲2024년 8245억 원으로 꾸준히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MSRA 체결은 조선 부문 실적의 가파른 성장세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브랜드 ‘해모로’를 앞세운 주택정비사업과 공공 인프라 사업 등을 펼치는 건설 부문도 지난해 2조 5000억원 신규 수주 성공으로 연간 목표 초과 달성을 이뤘다.
하지만 건설사에서 치명적인 부실 공사·안전사고 문제가 거듭되고 있다는 점은 HJ중공업의 큰 해결 과제로 남아있다.
지난해 국토교통부가 공개한 ‘2025년 하반기 하자 판정 결과 상위 건설사 명단’에 따르면, 최근 6개월간 공동주택에서 하자판정을 가장 많이 받은 건설사는 HJ중공업으로 나타났다.
HJ중공업은 과거 2011년(한진중공업 시절)에도 시공을 맡았던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누수 현상이 발생하는 등 부실 공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바 있다.
또 지난해 11월에는 한국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에서 구조물 붕괴로 9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시공사였던 HJ중공업의 안전관리 부실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