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 "우리 강산 평안하구나"… 강화 마니산 참성단에서 만난 민족의 기운

- 빙벽의 장관과 갯벌의 비경 사이, 강화 마니산 봄맞이 산행 - 겁의 세월을 딛고 선 소사나무… 마니산이 전하는 오천 년 역사 - 계단 끝에 펼쳐지는 서해 파노라마, 강화 마니산 단군로를 걷다

2026-02-20     조용식 기자

[파이낸셜리뷰=조용식 기자] 설 연휴가 끝난 지난 19일, 강화도의 심장이자 우리 민족의 영험한 기운이 응집된 성지, 마니산(摩尼山)으로 향하는 길은 묘한 설렘으로 가득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강화의 들녘은 아직 겨울의 무채색을 띠고 있었지만, 그 적막함 속에는 곧 다가올 봄을 잉태한 대지의 묵직한 에너지가 흐르고 있었다. 강화 초지대교를 건너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 동안, 멀리서 굽어보고 있는 마니산의 실루엣은 마치 거대한 거인이 서해를 지키며 앉아 있는 듯한 위용을 뽐낸다.

함허동천의 목련과 빙벽, 겨울의 끝에서 '봄'을 꿈꾸다

강화 마니산 산행의 시작점인 함허동천(涵虛洞天) 야영장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 있는 곳’이란 뜻을 품고 있다. 매표소로 향하는 길목, 앙상한 나뭇가지 끝에 맺힌 목련 꽃망울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찬바람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보송보송한 솜털을 두른 그 가녀린 꽃망울은 영하의 추위 속에서도 기어이 생명을 틔워내려는 강인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3월이면 활짝 피어 등산객의 봄맞이 산행을 환하게 맞이할 것이다.

이곳 마니산의 입장료는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이며 20인 이상 단체는 1,500원이다. 회색빛 이정표를 따라 2야영장 방향으로 향하면 계곡로가, 3·4야영장 방향으로 향하면 능선로가 이어진다. 

기자는 잊혀가는 겨울의 마지막 정취를 붙잡기 위해 계곡로를 택했다. 계곡로 입구에는 여름이면 거대한 폭포수처럼 흐르던 계곡물이 바위 면을 타고 흐르다가 그대로 멈춰버린 빙벽은 마치 얼어붙은 시간의 강처럼 산 중턱에 장대하게 걸려 있다. 

햇살이 투명한 얼음 조각들에 부딪혀 보석처럼 부서지는 광경은 오직 이 계절에만 누릴 수 있는 고귀한 보상이다. 두꺼운 얼음장 밑으로는 보이지 않는 물길이 봄을 준비하며 끊임없이 흐르고 있음을, 가끔 들려오는 미세한 울림을 통해 짐작할 뿐이다.

갈색 들녘이 품은 봄의 약속과 대지의 실핏줄

가파른 경사와 불규칙한 암석을 지나 암릉 구간에 들어서면 시야는 비현실적으로 확장된다. 발 아래로 강화도의 비옥했던 논들이 갈색 바둑판처럼 정갈하게 펼쳐져 있고, 그 너머로 세계 5대 갯벌인 강화 갯벌의 광활한 곡선이 서해의 은빛 물결과 어우러져 장엄한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지금은 황량한 갈색으로 잠들어 있지만, 그 속에는 머지않아 초록빛 생명력을 뿜어낼 비옥한 대지의 약속이 일렁이고 있다.

시선을 조금 더 멀리 던지면 서해의 장엄한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특히 밀물이 빠져나간 해변은 마치 대지의 실핏줄이 드러난 듯 섬세한 물길의 흔적을 그려내고, 하늘 위로는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들이 하얀 궤적을 그리며 지나간다. 

다만 봄철 해빙기 산행 시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영상의 날씨에 등산로가 녹아내려 미끄러운 구간이 많으므로, 진흙 길보다는 낙엽이 쌓인 곳이나 햇볕에 마른 지면을 골라 딛는 지혜가 필요하다.

마니산 360도 파노라마 조망과 단군 왕검의 숨결

정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인 암릉 구간에는 반드시 마주해야 할 보물인 ‘참성단 중수비(塹城壇 重修碑)’가 있다. 천연 암벽을 깎아 새긴 이 비석은 숙종 43년(1717) 강화유수 최석항이 참성단을 개축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비문에는 ‘연대가 오래되어 무너진 곳을 여러 어른과 함께 개탄하여 다시 쌓으니, 열흘이 채 되지 않아 공역을 마쳤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비바람에 마모된 비문 사이로 흐르는 선조들의 정성은 마니산이 국가의 안녕을 빌던 성소였음을 묵직하게 웅변한다.

정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인 ‘마니 계단’을 오르니, 해발 472.1m라고 적힌 마니산 정상목이 보인다. 헬기장과 마니산 정상목 뒤로 하늘과 땅이 만난다는 참성단(사적 제136호)의 석벽이 시야에 들어온다. 

드디어 도착한 해발 472.1m 정상. 이곳에 서면 반드시 몸을 360도 천천히 돌리며 강화를 온몸으로 감싸 안아보기를 추천한다. 사방으로 막힘없이 터진 시야는 일상의 해묵은 답답함을 단숨에 씻어내기에 충분하다. 가슴 속 응어리졌던 것들이 서해의 바닷바람에 흩어져 사라지는 그 해방감이야말로 마니산 정상에 선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다.

정상 부근의 쉼터에 앉아 서해의 섬들을 조망하며 마시는 한 모금의 물은 그 어떤 명약보다 달콤하다. 멀리 석모도와 교동도가 수평선 위에서 신기루처럼 넘실거리고, 발아래 흐르는 강화의 평화로운 풍경은 일상의 번뇌를 씻어주기에 충분하다. 정상 전망 안내판에 적힌 지명들을 하나씩 대조해 보며, 이 땅의 지리가 품은 거대한 서사를 다시금 가슴에 새긴다. 멀리 석모도와 교동도, 강화대교, 문수산, 전등사, 초지대교가 신기루처럼 넘실거리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참성단으로 이동하면 오천 년 역사의 숨결이 느껴진다. 단군 왕검이 제를 올렸던 이 제단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우주관을 형상화하고 있다. 제단 옆에서 150년 넘는 세월을 견뎌온 소사나무(천연기념물)는 용이 승천하듯 뒤틀린 가지 끝에서 민족의 강인한 기개를 뿜어낸다. 

매년 10월 3일 제천행사가 있으며, 전국체전성화가 칠선녀에 의해 이곳에서 봉화를 채화하는 의식이 열린다. 참성단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개방되나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

하산길의 여운, 단군로와 치유의 숲

하산은 완만하게 조성된 단군로를 택했다. 3.2km의 단군로 코스는 계단로(2.4km)보다 거리는 멀지만, 무릎의 부담을 덜어주리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그러나 마니산은 끝까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나무 계단은 등산객의 인내심을 시험하며 하산길의 짭조름한 양념이 되어준다. "아이고, 무릎이야"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오지만, 계단을 한 칸 한 칸 내려갈 때마다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 서해의 풍경과 강화의 비경은 그 고단함을 기꺼이 씻어준다. 

중간중간 나타나는 평탄한 흙길은 다리에 꿀맛 같은 휴식을 선사한다. 하산길도 암석과 바위틈 사이로 억척스럽게 뿌리를 내린 소나무들이 보인다. 해풍에 휘어지고, 깎이면서도 끝내 제 자리를 지키며 등산객의 포토존이 되어준다.

또다시 나무 계단을 만난다. 그래도 이번에는 그리 길지 않은 느낌이다. 계단을 다 내려와 보니 ‘웅녀 계단’이라고 적혀 있다. 웅녀는 단군신화에 나오는 단군의 어머니이다. 칠선녀 계단, 마니 계단, 372계단, 웅녀 계단, 그리고 계곡로의 1004 계단까지 계단마다 이름을 지어준 것이 마니산의 특징이다. 

웅녀 계단에서 조금 내려온 곳에 벤치가 있다. 이곳에 앉아 참성단을 노래한 조선 후기 문신 죽석 서영보의 시문을 읽어본다.

‘만길 현모한 제단은 푸른 하늘에 닿았고

소슬바람 은근한 기운이 내 마음을 밝게 해 주네

망연히 앉아 나의 견문이 좁았음을 생각 하느니

눈 아래 우리강산이 평안 하구나.’

마니산 정상에서 만났던 강화의 360도 풍경을 잠시 회상하며,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바로 아래 마을이 보이니 막바지 산행 코스임을 알 수 있다. 돌계단을 마지막으로 계곡로와 단군로의 갈림길을 만난다.

마니산 치유의 숲 안내판에 따르면, 마니산 입구에 조성된 길이 1km 정도 되는 숲으로 아이를 동반한 가족, 연인, 어른신들이 쉽게 둘러 볼 수 있으며, 곧게 뻗은 소나무와 삼나무 사이를 걷고 명상을 하다보면 스트레스는 날아가고 힐링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주요 포인트로는 단군 놀이터, 천부인 광장, 신단수 쉼터, 참성단 조형물, 성화 체험 시설, 소나무숲길 등이 있다. 특히 강화 참성단 복제 조형물은 마니산 정상에 있는 참성단을 실제 크기, 위치, 모양과 방향을 그대로 복제하여 굳이 마니산 정상에 있는 참성단까지 가지 않아도 참성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마니산 치유의 숲에서 피톤치드 가득한 소나무 숲길을 걸어 산행의 마지막 피로까지 말끔히 씻고 가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