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한 모금의 연기 속에 담긴 인도네시아의 역사”…‘시가렛 걸’ 한국 독자 만난다

13일 한-아세안센터서 글로벌 화제작 ‘시가렛 걸’ 출판 기념 간담회 진행

2026-03-13     김희연 기자
/사진=한세예스24문화재단

[파이낸셜리뷰=김희연 기자] 한국에게는 다소 생소한 인도네시아가 문학으로 가까워질 기회가 왔다. 

인도네시아의 전통 담배 산업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시가렛 걸’이 한국 독자들과 만난다. 시가렛 걸은 한 여성의 삶과 사랑, 그리고 인도네시아 현대사의 격동을 함께 담아낸 작품으로, 동남아시아 문학을 국내에 소개하는 의미 있는 시도라는 평가다. 

한세예스24문화재단은 13일 서울 한-아세안센터에서 동남아시아문학총서 일곱 번째 작품 ‘시가렛 걸(Cigarette Girl), 원제 Gadis Kretek’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백수미 한세예스24문화재단 이사장, 체쳅 헤라완(Cecep Herawan)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 이은옥 한-아세안센터 국장, 그리고 소설의 저자인 라티 쿠말라(Ratih Kumala) 작가가 참석해 작품의 의미와 동남아시아 문학 교류의 가능성을 공유했다.

인도네시아 담배 산업 속 여성의 삶을 그린 대서사

/사진=김희연

‘시가렛 걸’은 인도네시아 전통 정향 담배인 ‘크레텍(Kretek)’ 산업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장편소설이다. 한 여성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독자는 인도네시아의 근현대사 한가운데를 걷고 있게 된다.

이 작품은 위독한 담배 재벌이 마지막 순간에 ‘정야’라는 이름을 부르면서 시작된다. 그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과거와 숨겨진 비밀을 찾아 자바섬 곳곳을 여행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천재적인 미각을 가진 여성 정야와 두 담배 가문에 얽힌 이야기가 드러난다.

소설은 단순한 가족 이야기나 로맨스를 넘어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와 인도네시아 독립 이후 혼란기, 그리고 1965년 반공 학살 사건 등 격동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개인의 삶과 산업의 흥망, 국가의 역사까지 교차하는 구조가 특징이다.

특히 남성 중심의 담배 산업 속에서 자신의 재능으로 최고의 담배를 만들어 낸 여성 정야의 삶은 작품의 핵심 축을 이룬다. 재단 측은 “가부장적 산업 환경 속에서도 주체적인 삶을 개척한 여성의 이야기가 국경을 넘어 공감을 이끌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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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티 쿠말라 작가는 “제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크레텍 산업에 종사했고, 가족들이 모일 때마다 할아버지 집이 담배 공장처럼 운영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란 기억이 이 소설의 영감이 됐다”며 집필 계기를 밝혔다. 

작가는 특히 주인공 정야에 대해 “모든 시대에 필요한 여성상”이라고 설명하며, “정야는 시대보다 앞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물인 만큼, 과거처럼 여성의 기회가 제한된 사회에서는 특히 그런 용기 있는 인물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역사와 산업, 그리고 여성의 이야기

‘시가렛 걸’은 194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이어지는 장대한 시간대를 배경으로 한다. 작가는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서사를 구성하기 위해 많은 자료 조사와 고민을 거쳤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 독자에게는 역사적 기억을 환기하는 이야기인 동시에, 해외 독자에게는 새로운 문화와 시대를 발견하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평가다. 작가는 “인도네시아 독자들은 역사적 사건만 들어도 감정적으로 반응하지만 해외 독자들은 이야기 자체를 더 새롭게 읽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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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출간은 동남아시아 문학을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동남아시아문학총서’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한세예스24문화재단은 2022년부터 베트남·인도네시아·태국 등 동남아시아 현대문학 작품을 번역 출간하며 문화 교류를 확대해 왔다. 내년에는 말레이시아 문학을 소개할 예정이다.

체쳅 헤라완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는 축사를 통해 “문학은 한 나라의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라며 “이 책을 통해 한국 독자들이 인도네시아의 역사와 문화, 정체성을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오랫동안 경제와 외교 분야에서 협력해 왔지만, 이야기를 통해서야 서로의 가치와 삶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며 이번 출간이 양국 문화 교류의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수미 이사장은 “동남아시아 문학에는 한국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역사와 문화적 경험이 담겨 있다”며 “이 총서가 동남아시아의 다양한 서사를 세계와 연결하는 다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진=김희연

한편 ‘시가렛 걸’은 이미 전 세계 6개 언어로 번역되며 국제적으로 주목받은 작품이다. 또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돼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인도네시아 이야기를 소개했다. 영상과 달리 소설에서는 인물들의 내면과 역사적 맥락이 더욱 깊이 있게 묘사된다는 점에서 원작의 매력도 크다는 평가다.

한세예스24문화재단은 이번 출간을 기념해 라티 쿠말라 작가와 국내 독자들이 만나는 자리도 마련했다. 13일 서울영화센터 상영관 3관에서 시네&북토크 ‘BEYOND THE SMOKE(연기 너머’가 열리며, 오는 14일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정보원 극장 3에서 북콘서트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