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 금강 벚꽃길 따라 채석장 비경까지, 익산이 건네는 봄의 서사
- 분홍빛 벚꽃 터널과 순백의 목련이 마중하는 설레는 발걸음 - 한 달 4만 명 찾는 압도적 풍광, 어스언더파크의 현대적 휴식 - 석공들의 고단함을 달래주던 육회비빔밥 한 그릇의 깊은 위로
[파이낸셜리뷰=조용식 기자] 전북 익산의 봄은 금강의 유연한 물줄기를 따라 시작된다. 2026년 3월 31일, 완연한 봄기운을 머금은 익산 웅포 곰개나루터에는 강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벚꽃의 미동이 여행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이곳은 단순한 조망 점을 넘어 금강의 역사와 자연이 공존하는 지점이다. 나루터 한편에는 황토 돛단배 형상의 유람선이 정박해 있으며, 그 뒤로 펼쳐진 너른 금강의 수면은 윤슬을 일으키며 봄볕을 반사한다.
4월 10일 개막하는 제9회 웅포 벚꽃축제
웅포 곰개나루를 기점으로 조성된 자전거 도로는 산책로와 나란히 이어지며 벚꽃 터널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린 벚꽃은 연분홍빛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으며, 개화한 꽃송이마다 꿀벌들이 날아들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 포착된다.
매크로 렌즈가 아니더라도 꽃잎 속에 머리를 파묻고 꿀을 채취하는 벌들의 움직임을 육안으로 쉽게 관찰할 수 있을 만큼 자연의 생동감이 넘쳐난다.
익산시와 웅포면 축제추진위원회에 따르면, 지역의 대표 봄 축제인 ‘제9회 웅포 벚꽃축제’는 오는 4월 10일 웅포 곰개나루 일원에서 공식 개최된다. 금강 변을 따라 조성된 약 2km 구간의 벚꽃 터널은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이 가지를 맞대어 하늘을 가릴 만큼 울창한 꽃지붕을 형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축제는 자전거 체험 프로그램이 한층 강화되어 여행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한국의 아름다운 자전거길 100선에 선정된 금강 자전거길을 따라 벚꽃비를 맞으며 달리는 라이딩은 오직 웅포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미다.
축제 기간에는 야간 경관 조명이 설치되어 밤벚꽃의 운치를 더하며,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문화 공연과 특산물 장터가 마련되어 4월의 봄을 더욱 풍성하게 채울 예정이다.
아가페 정원, 목련의 순백과 메타세쿼이아의 고요
웅포의 개방감을 뒤로하고 차로 이동하여 도착한 곳은 익산시 황등면에 위치한 ‘아가페 정원’이다. 이곳은 과거 노인복지시설인 아가페 정양원 어르신들을 위해 조성된 사유지였으나, 2021년 ‘전라북도 제4호 민간정원’으로 지정되며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정원 입구에 들어서면 수령이 오래된 백목련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짙은 초록빛 향나무를 배경으로 피어난 순백의 목련 꽃잎은 마치 정원의 문지기처럼 기품 있게 서 있다.
정원 내부로 발을 들이면 대기 중의 습도와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가 어우러져 공기의 질감이 확연히 달라짐을 느낀 수 있다. 고요한 자연의 품으로 들어온 듯한 이곳은 인위적인 장식을 배제하고 수목 본연의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아가페 정원을 상징하는 가장 강력한 서사는 정원 깊숙한 곳에서 마주하는 메타세쿼이아 산책로다. 수십 미터 높이로 곧게 뻗은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촘촘하게 줄지어 선 이 길은, 정원을 찾은 이들에게 마치 거대한 수직의 요새 속으로 들어온 듯한 압도적인 경외감을 선사한다. 2026년 3월의 끝자락, 아직 연둣빛 잎이 무성해지기 전인 이 시기에는 나무들의 섬세하고도 단단한 골격이 그대로 드러나 중후한 미학을 뿜어낸다.
특히 드론 시점으로 내려다본 메타세쿼이아 길은 기하학적인 화단과 어우러져 완벽한 대칭의 미를 보여주며, 정교하게 설계된 보타닉 가든의 정수를 확인시켜 준다.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길쭉한 그림자는 지면에 드리워져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투영하고, 그 사이를 걷는 여행객들의 발소리는 메타세쿼이아의 침묵 속으로 낮게 잦아든다. 이곳은 아가페 정원에서 가장 사랑받는 포토존이자, 일상의 소음을 잠재우고 오직 자연의 숨소리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영혼의 안식처다.
보타닉 가든이 빚어낸 사계절의 교향곡
아가페 정원은 단순한 숲을 넘어 전문적인 보타닉 가든(식물원)으로서의 정교한 구성미를 갖추고 있다. 과거 아가페 정양원 어르신들을 위한 사유 정원이었던 내력 덕분에, 이곳은 화려한 인위적 장식보다는 수목의 생태적 특성을 살린 식재 디자인이 돋보인다. 정원 내부의 화단은 계절마다 다른 주인공을 내세우며 교향곡처럼 흐른다.
봄의 서곡을 알리는 수선화와 튤립은 지표면을 형형색색으로 수놓고, 그 위로 목련과 벚꽃이 공중의 공간을 채운다. 잘 가꾸어진 향나무와 주목나무들은 정원의 뼈대를 이루며 보타닉 가든 특유의 질서 정연한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길목마다 배치된 벤치와 쉼터는 방문객들이 서두르지 않고 식물의 세밀한 변화를 관찰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이제 막 싹을 틔우는 야생화와 이슬을 머금은 이끼까지, 아가페 정원의 보타닉 가든은 인간의 손길과 자연의 자생력이 만나 빚어낸 가장 따뜻한 초록의 기록이다.
월 이용객 4만 명, 어스언더파크의 압도적 비경
벚꽃과 정원을 지나 도착한 ‘어스언더파크 익산’은 이제 익산 관광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황등면의 고요한 일상을 깨우고 익산의 새로운 관광 지도를 그리고 있는 ‘어스언더파크 익산’의 위상은 숫자가 증명한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밀려드는 이용객은 한 달 평균 4만 명에 육박한다. 이는 단순한 카페의 기능을 넘어, 거대한 산업 현장을 관광 자원화한 ‘산업 관광’의 성공 모델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창 너머로 펼쳐진 채석장의 수직 절벽은 인공적인 건축물이 줄 수 없는 압도적인 해방감을 선사하며,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자연과 인간의 노동이 빚어낸 거대한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
특히 최근 보강된 원목 테이블의 아늑함과 황등석을 형상화한 사각형 로고의 세련미는 현대적 감각을 더해, 남녀노소를 불문한 전 세대의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다. 카페 내부가 만석이 되어도 외부 테라스와 산책로를 따라 이어지는 행렬은 이곳이 명실상부한 익산의 랜드마크임을 실감케 한다.
황등석의 질감을 담아낸 공간과 제2전망대의 비경
어스언더파크 익산의 매력은 내부 인테리어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황등석산에서 갓 뽑아 올린 듯한 황등석을 활용해 제작된 사각형 디자인의 로고와 카페 이름은 공간 전체에 묵직한 운치를 더한다.
과거의 다소 차가웠던 분위기는 이제 고풍스러운 원목 테이블과 조화를 이루며 방문객들에게 안락한 휴식을 제공한다. 통유리창은 단순한 창문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채석장의 역동성을 담아내는 거대한 캔버스가 된다.
더 깊은 서사를 원하는 이들은 카페로부터 약 500m 떨어진 제2전망대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로 향한다. 조성 중인 전망대들을 거치며 걷다 보면 카페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각도에서 채석장의 거친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다.
거대한 원형 채석장 현장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는 것은 이곳을 찾은 여행객들 사이에서 하나의 의식처럼 자리 잡았다. 거친 돌길과 정돈된 산책로가 교차하는 그 지점에서 방문객들은 황등이 품은 과거의 산업적 가치와 현재의 문화적 감성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노포들이 지켜온 황등비빔밥 3대 명소
어스언더파크의 세련미를 만끽했다면, 인접한 황등시장에서 이 지역의 진짜 맛과 마주할 차례다. 익산 여행자라면 반드시 들어봤을 ‘황등비빔밥’은 시장비빔밥, 한일식당, 진미식당 등 저마다의 내력을 가진 노포들이 명맥을 잇고 있다. 황등비빔밥은 밥을 미리 비벼서 내어주는 ‘비빔밥’ 형태인데, 여기에는 채석장과 관련된 애틋한 이유가 숨어 있다.
과거 황등석산의 석공들은 노동 강도가 매우 높았고 점심시간조차 아껴야 할 정도로 바빴다. 돌가루가 날리는 거친 현장에서 돌아온 이들에게 직접 밥을 비빌 시간조차 사치였기에, 시장 상인들은 이들의 고단함을 덜어주기 위해 미리 육수와 양념에 밥을 비벼 선지와 고명 등을 얹어 내놓기 시작했다. 즉, 황등비빔밥은 일터로 빨리 복귀해야 했던 석공들을 향한 배려와 효율성이 빚어낸 ‘석산의 소울푸드’인 셈이다.
황등의 비빔밥 거리에는 사골 육수에 밥을 여러 번 적셔 내는 ‘토렴’ 방식을 고수하는 세 곳의 명소가 있다. 시장비빔밥은 1945년부터 이어온 전형적인 ‘석공의 식당’으로, 큼지막한 선지가 들어간 맑은 국물과 진하고 강렬한 양념 맛이 특징이다. 한일식당은 가장 깔끔하고 대중적인 맛을 자랑하며, 정갈하게 올라간 노란 계란 지단과 깨 고명이 식욕을 돋운다. 육회 본연의 고소함이 돋보여 전 세대에게 인기가 높다.
진미식당은 ‘백년가게’이자 익산시 선정 ‘대물림 맛집’으로, 비빔밥 중앙에 올라간 묵 한 점이 시각적 즐거움을 더한다. 50번 이상의 토렴 과정을 거쳐 밥알 사이사이 감칠맛이 가장 진하게 배어 있기로 유명하다.
익산 웅포에서 시작해 아가페 정원을 거쳐 황등의 비경과 맛까지 이어지는 여행 코스는 동적인 활동과 정적인 휴식을 동시에 제공한다. 2026년의 봄, 익산은 그렇게 꽃과 나무, 그리고 거대한 석산을 통해 여행객에게 가장 정직한 계절의 서사를 완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