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공인중개사

2026-04-06     어기선 기자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공인중개사는 오늘날 부동산 시장을 지탱하는 핵심 직업 중 하나다. 우리나라 부동산 거래 역사는 상당히 길지만 현대적 의미의 공인중개사 체계는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조선시대에도 토지 또는 가옥의 매매를 중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거간’ 또는 ‘중매인’으로 불리었다. 거래 당사자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다만 이들의 활동은 개인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것일 뿐 국가가 제도적으로 보장하지 않았다.

계약은 체계적인 법률에 의하기 보다는 구두 약속이나 간단한 문서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국가가 제도적으로 보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분쟁에서 발생하는 피해에 대해 정부가 보호하지 못했다.

해방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은 부동산 제도

이는 일제강점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해방 이후에도 특별하게 달라지지 않았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가 이뤄지면서 부동산 거래는 급증했지만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지 못했다.

특히 도시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주택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이른바 ‘복덕방’이라고 부르는 중개업소는 우후죽순 생겨났다. 다만 이들 상당수는 자격증 없이 영업을 했다.

이런 이유로 허위 매물, 가격 담합, 이중 계약, 권리관계 미확인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했고, 이는 곧 사회적 갈등과 경제적 피해로 이어졌다.

그러자 정부는 본격적으로 중개업 제도에 대해 정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1983년 ‘부동산중개업법이 제정되면서 우리나라 부동산 중개 시장은 중대한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공인 자격 시험

단순한 규제 차원을 넘어 국가 공인 자격시험을 통해 중개인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부동산 중개는 더 이상 누구나 임의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일정한 전문성과 자격을 갖춰야만 할 수 있는 직업이 됐다.

이 제도의 시행은 부동산 거래의 신뢰성을 높이게 됐다. 중개업자는 등록을 해야만 영업이 가능했고, 일정 수준 이상의 법률·세무·부동산 지식을 갖추도록 요구받았다. 이는 거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을 줄이고 소비자를 보호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공인중개사는 이제는 일정한 수준 이상의 전문성을 갖춘 전문가가 됐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공인중개사 제도는 급속도로 확산됐고, 중개업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덩달아 공인중개사의 역할이 커졌다.

무엇보다 아파트 중심의 주거 문화가 정착되고, 수도권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거래량이 증가했고, 이에 많은 사람들이 공인중개사 시험에 도전을 했다.

그러나 자격증 취득자가 급증하면서 중개업소 간 경쟁이 심화되고, 일부에서는 자격증을 빌려주는 명의대여나 불법 중개 행위가 발생했다. 또한 전문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시험을 통과했더라도 실제 현장에서 요구되는 실무 능력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2000년대 이후

이에 2000년대 들어서면서 투명성과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게 됐다. 대표적으로 실거래가 신고제가 시생됐으며, 그로 인해 시장의 불투명성을 줄이게 됐다.

2010년대 들어서면서 기존 부동산중개업법을 ‘공인중개사법’으로 바꾸면서 자격제도 중심의 법적 구조가 명확해졌다. 그러면서 소비자 보호 장치가 강화됐고, 전자계약 시스템 도입 등 거래 방식이 현대화됐다.

다만 2010년대 들어오면서 자격증 보유자는 크게 늘어났지만 부동산 시장은 급격히 위축되면서 공인중개사 자체의 생존이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