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② K-크루즈, 지역경제 닻 올리다] 국내 크루즈의 냉정한 현주소와 ‘실적의 덫’

- 주요 4개 항만 입항 집중… 지방 기항지는 ‘실적의 덫’ - 순수 체류 5~6시간 불과… 빈약한 인프라·콘텐츠 한계 - 지자체 크루즈 컨트롤타워 구축 및 전담 인력 확보 시급

2026-04-13     조용식 기자

[편집자 주] 한국 크루즈 산업은 지역 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지역 경제를 견인할 핵심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본지는 국회 토론회와 실태조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크루즈 산업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신규 기항지 마산항의 과제부터 글로벌 트렌드, 정부 정책 방향과 전문가 제언까지 총 5회에 걸쳐 심층 기획 보도한다.

① 국회에 울린 ‘크루즈 경제학’의 서막
② 국내 크루즈의 냉정한 현주소와 ‘실적의 덫’
⓷ ‘젊어지는 크루즈’, 세계 시장의 트렌드 변화와 기회
⓸ 2025 실태조사로 본 ‘지갑을 여는’ 크루즈 정책
⓹ 전문가의 제언 – “반드시 와야 할 이유를 창출하라”

[파이낸셜리뷰=조용식 기자] 한국 크루즈 시장의 외형적 팽창 이면에 자리한 지역 경제 기여도 저하 문제를 근본적으로 타개하기 위해, 전국 주요 항만의 인프라와 관광 프로그램 전반을 점검하는 대대적인 실태 조사가 진행되었다. 한국관광공사의 의뢰로 착수된 ‘2025 크루즈 기항지 수용태세 모니터링 및 컨설팅’ 사업은 2025년 2월 10일부터 12월 12일까지 약 10개월에 걸쳐 치밀하게 실시되었다.

황진회

해당 조사에는 총괄 책임자인 황진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구위원을 비롯해 심상진 경기대학교 교수, 윤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 등 총 9명의 크루즈 및 해양 관광 전문가가 투입되어 기항지 현장의 민낯을 서사적이고 입체적으로 진단했다.

아시아 관광객 83.5% 압도… 극심한 기항지 양극화

보고서에 수록된 2025년도 국내 항만별 크루즈선 및 관광객 입항 실적을 살펴보면 국내 크루즈 산업의 극심한 양극화 현상이 데이터로 여실히 증명된다.

선박 입항은 제주항과 서귀포 강정항, 부산항, 인천항 등 4개 주요 항만에 절대적으로 집중되어 있다. 반면 여수, 속초, 포항, 서산 등 나머지 지방 기항지는 연간 10회 미만의 저조한 입항 횟수를 기록하며 항만 시설의 유지와 운영 자체가 위협받는 이른바 ‘실적의 덫’에 갇혀 있다.

크루즈를 통해 한국에 입항한 관광객의 출신 지역을 분석한 결과, 아시아 권역이 전체의 83.5%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비중을 보였다. 2024년 기준 국가별 순위는 중국, 일본, 미국, 대만, 호주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내 기항지 관광 프로그램과 수용 태세가 동북아시아 관광객의 소비 성향과 이동 패턴에 철저히 맞춰져야 함을 시사한다.

실제 체류시간 5~6시간 불과… 크루즈 6대 현안 도출

지역 경제 기여도를 결정짓는 가장 핵심적인 변수는 체류 시간과 입항 시간이다. 크루즈 선박이 항구에 정박하는 시간은 통상 8시간에서 11시간 내외지만, 하선 심사와 세관 수속, 그리고 출항 전 승선 마감 시간을 제외하면 관광객이 기항지에 체류하며 실제 소비할 수 있는 순수 시간은 5~6시간에 불과하다.

입항 시간이 이른 오전이거나 출항 시간이 이른 오후로 설정될 경우, 기항지 내에서의 정식 식사나 야간 관광, 주류 소비 등 고부가가치 경제 활동은 구조적으로 완전히 차단된다.

연구진이 현장 및 업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진행한 심층 인터뷰 결과, 국내 크루즈 산업을 가로막는 6대 공통 현안이 도출되었다. ▲터미널 및 항만 인프라 부족 ▲기항지와 도심을 잇는 연계 교통망 부재 ▲크루즈 전문 가이드 및 다국어 안내 인력 부족 ▲지역 특화 관광 콘텐츠 부재 ▲세관·출입국·검역(CIQ) 인력 부족 및 시스템의 한계 ▲지자체 내 부서를 통합할 크루즈 컨트롤타워 부재가 전국 기항지를 관통하는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입항하는 제주, 부산, 인천의 경우 세부 현안은 각기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부산항은 글로벌 선사가 강력히 요구하는 24시간 터미널 개방이 보안 인력 예산 문제로 가로막혀 야간 경제 창출에 실패하고 있다. 인천항은 국제공항과 인접한 지리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터미널과 도심을 연결하는 대중교통 노선이 단절되어 개별 자유 관광객의 고립을 초래하고 있다. 제주 지역의 항만들은 터미널 운영사의 적자 누적 문제와 함께, 협소한 공간 탓에 승객들이 이중 보안 검색을 거치며 수속 지연을 겪는 비효율이 가장 큰 딜레마로 확인되었다.

닫힌 터미널과 엉성한 인프라… 턱없이 부족한 수용태세

전문가 9인이 직접 투입되어 기항지 투어 프로그램과 항만 운영 실태를 현장에서 모니터링한 결과는 더욱 심각하다. 터미널 내부 시설의 경우 선박이 없는 날엔 시설을 전면 폐쇄하는 운영 방식 탓에 환전소, 와이파이, 편의점, 식당 등 기본 상업 시설이 입점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교통 부문에서는 택시 외의 대중교통 수단이 전무한 상태에서 단거리 승차 거부와 요금 시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무료 셔틀버스는 탑승 장소 안내와 운행 시간표가 제대로 고지되지 않아 혼잡을 가중시킨다. 관광 안내 측면에서는 다국어 표지판의 문법 오류가 방치되어 있고, 영어, 중국어, 일본어를 제외한 특수 언어권 가이드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소비와 직결되는 쇼핑 및 식당 인프라의 한계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지역 전통시장 방문이 투어 코스에 포함되어 있으나, 다국어 QR 메뉴판 미비, 신용카드 결제 거부, 채식 및 할랄 식단에 대한 대응 부족, 상인과의 언어 장벽 등으로 인해 실제 지갑을 여는 행위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보행 동선이 중간에 단절되거나 터미널 내 응급 의료 지원 체계가 허술한 점 등 교통약자 및 안전 부문의 결함도 시급한 개선 과제로 적발되었다.

인천 거점화·부산 24시간 모항 등 기항지 맞춤형 전략

이러한 전방위적인 모니터링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진은 보고서 후반부에 8개 기항지가 각자의 지정학적 특성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심층적인 컨설팅 제안 및 맞춤형 발전 방안을 제시했다.

수도권 관문인 인천항은 인천국제공항과의 물리적 인접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터미널과 공항을 직통으로 잇는 셔틀 및 대중교통망을 확충하여 아시아 플라이 앤 크루즈 거점으로 도약해야 한다. 이와 함께 터미널 내 상업 시설 유치를 통해 개별 관광객이 체류할 수 있는 독립적인 복합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국내 최대 거점인 부산항은 24시간 모항 운영 체제를 전면 도입하여 선사들의 야간 기항 수요를 흡수하고, 소규모 하이엔드 럭셔리 크루즈 관광객을 타깃으로 한 맞춤형 고부가가치 체험 상품을 집중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제주 지역은 강정항과 제주항의 역할을 철저히 분담하는 방향으로 컨설팅이 이루어졌다. 서귀포 강정항은 초대형 선박 수용에 초점을 맞춰 수속 절차를 고도화하고 인프라 정비에 나서야 하며, 제주항은 중소형 선박 위주의 럭셔리 체험 프로그램과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콘텐츠를 개발하여 운영 효율을 극대화해야 한다.

지방 기항지들의 생존을 위한 전략도 구체적으로 도출되었다. 속초항은 지역 경제의 핵심인 전통시장의 다국어 안내 및 결제 인프라를 전면적으로 현대화하고, 지자체와 민간이 협력하여 수도권에 의존하던 가이드 인력을 안정적으로 수급하는 자체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포항항은 영일만항의 지리적 이점을 살려 환동해 권역을 순환하는 정기 크루즈 노선을 개설하고, 단순 경유지가 아닌 크루즈 특화 전문항으로 육성하기 위한 전략적 인프라 투자를 단행해야 한다. 여수항은 뛰어난 해양 경관과 야경을 활용하여 관광객이 숙박과 야간 소비를 이어갈 수 있는 체류형 준모항 전략을 추진하고, 섬 관광을 연계한 차별화된 루트를 개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서산 대산항은 해미국제성지와 같은 종교·역사 자원을 로컬 테마와 결합하여 독보적인 기항지 브랜드를 구축하고, 지역 문화를 깊이 있게 전달할 수 있는 다국어 관광 통역 전문가를 배양하여 외국인 관광객 유치의 핵심 채널로 활용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청사진이 제시되었다.

지역별 컨트롤타워 구축과 체계적인 지자체 육성안 절실

결론적으로 기항지 수용태세 개선과 크루즈 산업 육성의 성패는 물리적 인프라 확충을 넘어 행정 조직의 혁신과 전담 인력 확보에 달려 있다. 심상진 경기대학교 교수를 비롯한 연구진은 수용태세 개선의 핵심 선결 과제로 '지역별 컨트롤타워 구축'과 '지자체 단위의 체계적인 육성 계획 수립'을 강도 높게 주문했다.

심상진

크루즈 산업은 관광, 항만 운영, 선박 관리, 교통, 마케팅, 국제 협력 등 행정 기관과 민간 분야의 수많은 업종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융복합 산업이다. 현재 광역 및 기초 지자체, 항만공사, 관광공사 등이 역할을 파편적으로 분담하여 업무를 진행하고 있어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다. 효율적인 업무 진행과 중장기 계획의 체계적 추진을 위해서는 관계 기관 간의 강력한 협력 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며, 실제 크루즈 전문 지식을 갖추고 지역 크루즈 산업을 이끌어갈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컨트롤타워가 절실하다.

특히 지자체 내부의 협력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크루즈 업무를 관광과나 해운항만과 등 특정 조직에 전담시키고 타 부서에 협조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으나, 부서 간 장벽으로 인해 그 성과는 매우 미미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관련 부서 간의 협업 강화가 필수적이며, 무엇보다 기관장의 크루즈 산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강력한 정책 조정 의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제도적 측면에서는 지자체 단위의 구체적인 육성 계획 수립이 요구된다. 현행 '크루즈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3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크루즈산업 육성을 위한 종합적인 시책을 수립하고, 기반 조성에 필요한 행정적·재정적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함을 책무로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이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 지자체는 소수에 불과하다.

향후 각 지자체는 관광, 교통, 항만, 터미널 등을 총망라한 종합 계획을 수립하고, 연도별 로드맵과 민간 협조 체계 구축 방안을 구체화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법적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제3조 위반에 대한 강력한 조치 조항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제기되고 있다.

최종적으로 지역 크루즈 육성을 위해서는 인력(조직) 확충과 예산 확보가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 크루즈 유치와 계획 추진을 전담할 수 있는 전문 인력과 책임자를 반드시 확보해야 하며, 일회성 행사가 아닌 사업별, 연차별로 안정적인 예산을 편성하여 크루즈 산업이 지역 경제의 항구적인 동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전방위적인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