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에야 보이는 것들] 6. 마음이 보내는 경고, 몸이 먼저 안다
[파이낸셜리뷰] 대기업에서의 홍보맨 생활 10년 차. 언뜻 보면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안정된 회사, 괜찮은 연봉, 적당히 잘리는 일 없을 정도의 성과. 그러나 정작 내 속은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매일 아침 기계처럼 일어나 지하철에 몸을 싣고, 회사에서의 하루를 버티는 것이 전부였다. 마음이 점점 굳어졌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거리감이 생겼다.
회의실에 앉아 멍하니 상사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내 존재가 허공을 떠도는 듯했다. 일에 몰입하지 못했고, 무기력한 감정이 하루 종일 가슴에 내려앉았다. 그 무게는 어느새 몸으로도 나타났다. 두통, 속쓰림, 어깨 결림, 잦은 감기…. 병원을 찾았지만 뚜렷한 병명은 나오지 않았다. 의사는 “스트레스성 증상일 수 있다”고 했다.
처음엔 ‘내가 약해졌나’ 싶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내 마음이 먼저 아팠다는 사실을. 눈앞 당장의 어려움과 괴로움을 잊으려 폭음을 하며 억지로 웃으며 살아왔지만, 내면은 이미 탈진해 있었다. 자존감은 바닥이었고, 누군가 내 어깨를 툭 건드리면 그대로 주저앉아버릴 것 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어느 날 새벽, 속을 철사로 내리 긁듯이 쓰렸다. 온몸에 식은땀이 났고,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신경성 위염이었다. 응급실에서 링거를 맞으며 누워있는데, 눈물이 흘렀다. ‘이러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그동안 나를 학대하듯 혹사시킨 삶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몸은 결국 마음의 거울이었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할 줄 몰랐던 나는, 몸을 아프게 만들어서야 겨우 멈춰 섰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경고였고, 동시에 ‘이제 좀 쉬어도 된다’는 위로였다.
그날 이후 나는 연차휴가를 하나도 남김없이 휴식을 위해 사용했고, 마음속으로 언젠가는 회사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엔 주변의 시선이 두려웠다. ‘남들 다 참고 사는데 너만 유난 떠느냐’는 말이 들릴까 봐.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다. 나는 남의 시선보다 내 삶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는 이 단순한 진리를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 안타까웠다.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분 걷는 것도 힘들었다. 심장은 여전히 두려움에 민감했고, 불면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땀이 나고 햇빛을 얼굴에 받으며 걸으니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몸을 움직이면 생각도 따라 움직였고, 얽히고설킨 감정들이 정리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통보받았다. 처음엔 당혹스러웠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이 편안했다. ‘이제는 쉴 수 있겠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억지로 버티고 있던 삶에서 벗어나 비로소 나를 위한 시간과 공간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들을 꺼내 보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꿈꿔왔던 책 읽기와 글쓰기, 자연 속을 걷는 시간들. 하나하나 시작해보니 매일이 새롭고, 생기가 돌았다. 돈은 줄었지만, 웃음은 늘었다. 지갑은 가벼워졌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풍요로워졌다.
지금 나는, 이전보다 훨씬 행복하다. 몸도 많이 회복되었고, 무엇보다 마음이 가볍다. 더 이상 억지로 자신을 속이며 살아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권고사직은 나에게 위기가 아니라 선물이었다. 잃은 줄 알았던 그 순간, 나는 비로소 내 삶을 되찾았다.
김 식 수필가 약력
現 칼럼니스트 활동
2011년 산문집 <난향 바라기> 출간
2007~2018년 건설 홍보실 근무
2004년 <시사문단> 수필 등단
1996~2007년 신문사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