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에야 보이는 것들] 7. 별이 위로가 될 때
[파이낸셜리뷰] 한때 나는 회사라는 굴레 안에서 쉼 없이 돌고 도는 톱니바퀴처럼 살았다. ‘오늘도 버텼다’는 생존의 기록만 남긴 채 퇴근하던 수많은 밤들. 그 길목 어디쯤, 문득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하늘은 놀랍게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별들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건 어떤 따뜻한 위로처럼 느껴졌고, 그날 이후 나는 ‘밤하늘 보기’를 은밀한 습관처럼 간직했다.
홍보실에 있을 때의 일이다. 회의실에서는 늘 숫자와 성과, 마감과 예산이 튀어 다녔고, 그 와중에 내가 놓친 건 바로 ‘나’였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역할에 충실하느라 내 마음은 갈수록 메말라갔다. 점심시간에도, 퇴근길에도, 심지어는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온통 ‘일’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마음의 공간은 점점 사라지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유조차 사치로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야근을 마치고 늦은 밤, 버스 정류장에 홀로 서 있었던 나는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이 엷게 깔린 그 사이로 별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 별 하나가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사람들은 나를 열정적인 일꾼이라고 칭찬했지만, 정작 나는 지쳐 있었고, 무기력했고, 무엇보다 외로웠다. 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 감정을 다 안다는 듯 그저 거기서 빛나고 있었다.
밤하늘은 늘 그렇다. 다그치지 않고, 재촉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바쁜 삶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밤하늘은 불편한 침묵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침묵은 삶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엔 수많은 별이 있고, 그 별만큼이나 수많은 가능성과 길이 숨어 있다. 내가 바라본 밤하늘도 그랬다. 회사라는 궤도에 갇혀 있던 내 삶이, 조금씩 새로운 궤도를 꿈꾸게 된 것도 그 밤하늘 덕분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산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일조차 잊고 산다. 스마트폰 화면은 그렇게 자주 들여다보면서, 진짜 하늘은 너무 오랫동안 외면한 것이 아닐까. 나 역시 그랬다. 그렇게 나는 밤하늘을 잊고 살았다. 아니, 애써 외면하고 살았다고 하는 게 맞겠다.
회사를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한강공원에서 혼자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그날도 밤하늘에는 별이 총총했다. 별들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내 마음은 전혀 달랐다. 그전에는 도피처럼 하늘을 봤지만, 이제는 진심으로 그 밤하늘을 즐기고 있었다. 달빛에 물든 강물, 강물 위로 흔들리는 가로등 불빛, 그리고 그 위로 펼쳐진 깊은 우주의 색깔.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오래도록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건 내 인생에서 가장 느긋하고 충만한 시간 중 하나였다.
지금은 매일 밤 걷는다. 한강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를 걷고, 적당한 자리에 멈춰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별이 보일 때도 있고, 흐린 날은 구름만 가득할 때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중요한 건 별의 개수가 아니라, 그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내 마음의 여유다. 누군가는 이런 걸 ‘한가한 소리’라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안다. 그 여유가 나를 얼마나 건강하게 만들었는지를.
50대 후반이 되니 삶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이제는 크고 거창한 것보다는 작고 소박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 어쩌면 밤하늘도 그런 것 중 하나일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지쳐도, 가끔은 밤하늘을 보자. 그리고 나에게 이렇게 말해보자.
“그래, 너는 참 잘 살아왔어. 지금도 괜찮아. 앞으로도 괜찮을 거야.”
밤하늘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내가 잊고 지냈을 뿐이다. 이제는 그 별빛 아래서 내 삶을 천천히 되돌아보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루를 정리한다. 아무도 나를 재촉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진짜 나와 마주하는 그 고요한 순간을 소중히 간직하며.
김 식 수필가 약력
現 칼럼니스트 활동
2011년 산문집 <난향 바라기> 출간
2007~2018년 건설 홍보실 근무
2004년 <시사문단> 수필 등단
1996~2007년 신문사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