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속 경제리뷰] 신고산타령, 구고산 큰애기는 왜 반봇짐만 쌌을까?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신고산이 우루루 함흥차 떠나는 소리에, 구고산 큰애기 반봇짐만 싸누나”
신고산타령은 함경도 민요다. 경쾌한 장단과 구성진 후렴구로 지금도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민요라고 하기에는 ‘함흥차’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함흥차라는 것이 ‘기차’를 의미한다.
따라서 신고산타령은 단순한 민요가 아니라 구한말 농민들의 애환이 담긴 노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갈 수밖에 없는 노동자의 삶이 담겨 있다.
신고산이 어디이기에
신고산타령은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철도 등장 이후에 만들어졌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신고산’ 자체가 철도역 이름이기 때문이다.
함경남도에는 ‘고산’이라는 마을이 있다. 하지만 철도가 생기고 새로운 역이 들어서면서 역 주변 마을을 ‘신고산’이라고 불렀고, 기존 마을을 ‘구고산’이라고 불렀다.
즉, 철도가 놓이고 난 이후에 만들어진 민요다. 신고산역은 경원선의 하나다. 경원선은 서울과 원산을 연결하는 철도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은 한반도를 군사 병참기지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군인과 무기를 신속히 이동시키기 위해 철도가 필요했다. 그러면서 경원선이 부설됐다.
일본은 철도를 이용해 조선 각지의 쌀과 콩, 목재와 광물 등을 항구로 운송했고, 반대로 일본에서 생산된 공산품과 서양 문물을 내륙으로 보냈다. 철도는 식민지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인프라가 되었고, 한반도의 생활 방식까지 바꾸기 시작했다.
원산은 어떤 도시
경원선의 종착지는 원산이다. 원산은 1880년 개항한 이후 부산, 인천과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국제 무역항으로 성장했다. 일본 상인과 외국 상선이 드나들었고, 각종 공산품과 새로운 문화가 가장 먼저 들어오는 창구 역할을 했다. 반대로 조선의 농산물과 수산물은 이 항구를 통해 일본으로 대량 반출됐다.
항구가 성정하면서 자연스럽게 공장과 창고, 운송업과 상업이 발달했으며, 일자리는 항상 모자랐다. 그래서 일자를 찾아 농촌을 떠나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함경도 농촌 사람들은 원산이나 함흥 등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로 했다. ‘함흥차 떠나는 소리’라는 것은 결국 농촌에서 사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는 소리를 말한다. 신고산 역에서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소리다.
큰애기 반봇짐은
‘구고산 큰애기 반봇짐만 싸누나’
봇짐은 작은 여행짐이나 간단한 이삿짐 정도로 풀이한다. 통상적으로 봇짐은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싸는 ‘짐’을 말한다. 따라서 반봇짐이라는 것은 목적지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짐을 의미한다. 즉, 봇짐은 ‘출장’이나 ‘여행’의 개념이고, 반봇짐은 ‘이주’의 개념이다.
따라서 큰애기(아내)가 남편을 위해 반봇짐을 싼다는 것은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것을 생각하고 짐을 싼 것이다.
철도는 일본의 군사적 목적과 식민지 경제 운영을 위해 부설했다. 하지만 그 철도가 조선인의 생활 방식 자체를 바꿨다. 도시에 사람이 몰리고, 농촌은 노동력을 잃게 되고, 가족은 떨어져 생활하고, 아내는 눈물로 도시로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게 된다.
신고산타령은 바로 이러한 시대 변화를 가장 서정적인 방식으로 기록한 민요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