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속 경제리뷰] 박경리 소설 토지, 50년 그 경제적 변화

2026-08-11     어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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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박경리 소설 토지는 1969년 집필을 시작해 1994년 완간되기까지 약 25년이 걸린 대작이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경남 하동 평사리다. 최참판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무대는 간도와 서울, 일본 등으로 확대된다.

작품 속 시간도 길다. 1897년부터 1945년 광복까지 약 반세기에 걸친 한국인의 삶이 수많은 등장인물을 통해 펼쳐진다.

그래서 ‘토지’는 흔히 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관통하는 민족의 대서사시로 평가된다. ‘토지’는 한 집안의 몰락과 재건을 넘어 땅이 최고의 재산이었던 농업사회가 돈과 시장, 상업과 자본이 움직이는 근대경제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주는 거대한 경제소설이기도 하다.

조선에서 땅 가졌다는 것은

토지는 19세기 말엽인 1897년부터 시작이다. 당시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은 ‘토지’였다. 넓은 농지를 가진 지주는 직접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소작인에게 땅을 빌려주소 소작료를 받았다.

따라서 토지를 많이 소유한다는 것은 오늘날 단둔히 부동산을 많이 보유한다는 의미보다 훨씬 컷다.

토지는 생산시설이면서 임대자산이었고 동시에 안정적인 소득을 만들어내는 자본이었다. 토지를 기반으로 지역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었다.

최참판댁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농업자산, 임대사업, 지역 내 경제적 영향력이 결합된 거대한 경제주체이다. 그렇기에 최참판댁의 몰락은 부잣집 한 집안이 재산을 잃는 개인적인 비극에 머물지 않는다.

경제적으로는 생산수단과 소득기반, 사회적 영향력을 한꺼번에 잃어버리는 사건이다.

물론 토지에는 지주만 존재하지 않는다. 평사리에서 생산을 하는 사람들은 농민들이다. 땅을 소유한 사람과 생산(농사)을 하는 사람이 달랐다.

토지가 없는 농민은 지주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생산물 일정 부분을 소작료로 낸다. 풍년이면 생활을 이어가지만 흉년이나 질병 등이 발생하면 경제적 기반은 순식간에 흔들린다.

땅이 없기 때문에 소작을 하고, 소작료를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적어 저축하기 어렵고, 위기가 발생하면 다시 빚을 져야 하는 구조가 반복되는 것이다.

땅이 전부인 시대 사라지고

1897년은 조선의 경제구조가 급변하는 시기다. 대한제국이 등장하고 일본 식민 지배가 시작됐다. 철도가 건설되고 시장의 범위가 넓어졌으며 화폐 사용과 상업 활동이 확대됐다. 근대적 금융과 기업, 새로운 형태의 자본도 경제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땅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가 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면 점차 돈과 상업, 시장을 활용하는 능력도 중요해졌다.

전통적인 경제에서 부가 만들어지는 구조가 ‘토지-생산-소작료’였다면 근대경제에서는 ‘자본-상업-시장-이윤’이라는 새로운 경로가 등장한 것이다.

토지 등장인물들은 이런 시대적 변화에 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기존의 토지와 신분을 지키려고 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시장에서 기회를 찾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기존의 경제적 기반을 잃고 고향을 떠난다.

최서희의 삶은

등장인물인 최서희의 삶을 일반적인 문학적 관점에서 보면 집안의 몰락을 경험한 뒤 빼앗긴 재산과 가문의 자리를 되찾아가는 과정으로 읽을 수 있다.

최서희는 재산을 되찾기 위해 새로운 경제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 그 대표적인 공간이 바로 간도이다.

고향을 떠나 국경 밖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는 비극인 동시에 기존 경제질서 밖에서 새로운 생존기반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주민들은 새로운 지역에서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고 노동력을 팔면서 다시 삶의 기반을 만들어야 했다.

최서희의 재산 회복 과정 역시 이런 변화와 맞물려 있다.

이를 현대적인 경제 언어로 압축하면 ‘자산 상실-이주-자본 축적-경제활동-재산 회복’이라는 흐름으로도 읽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최서희는 몰락한 양반가의 후손이라는 과거의 신분에만 머물러 있는 인물이 아니다.

경제적 환경의 변화를 읽고 그것을 이용해 다시 자산을 축적하는 근대적인 경제주체의 모습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