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대만관 논란' 안고 개막한 광주비엔날레…'변화'의 시간 담았다
규모 줄이고 밀도에 초점…올해 전시 참여 작가 43명(팀) 대만관 명칭 논란에 중국관 철수까지…외부에선 중국인 단체 시위도 전시장 한 곳에서 만나는 5개의 세계…제주 화산암도 전시 참여자로
[파이낸셜리뷰=김경은 기자]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마리아 릴케의 시 마지막 구절을 주제로 내건 제16회 광주비엔날레가 지난 4일 막을 올렸다.
이번 전시의 핵심 메시지는 내면과 사회의 변화 탐구다. 예술이 개인의 삶을 넘어 사회와 역사 전반에 불러일으킬 수 있는 변화의 가능성을 조명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호추니엔 예술감독의 개인 경험과도 맞닿아 있다. 지난 4일 광주비엔날레전시관 거시기홀에서 열린 개막 기자간담회에서 호추니엔 감독은 “릴케의 시는 관람자와 한 예술 작품 사이 개인적인 만남에서 시작된다"며 “민주주의와 변화의 경험으로 형성된 도시 광주에 이를 옮기면 직관적으로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전시 주제에 발맞춰 기획과 구성도 탈바꿈했다. 호추니엔 예술감독과 박가희, 브라이언 쿠안 우드, 최경화 큐레이터가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는 관람객들이 모든 작품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관 한 곳에서만 진행된다.
이어 올해 전시 참여 작가는 22개국 43명(팀)으로, 15회(72명)와 비교하면 참여 규모도 크게 줄었다. 이는 의도적으로 작가 수를 줄이는 대신, 한 작가의 여러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밀도 높은 전시를 구현하겠다는 구상이다.
호추니엔 감독은 “과거 비엔날레의 주요 추동력은 확장이었고, 이것이 예술에 실질적인 기여도 했다”며 “다만, 관람객들은 모든 작품을 다 볼 수 없다는 불안감을 느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로 작품이 많은 시간과 관심을 필요로 하는 만큼, 이번 전시에서는 모든 것을 한곳에 모아 관람객들이 시간적인 여유를 만끽하고, 모든 작품에 시간을 들일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대만관 명칭 논란·중국관 철수 사태에…"안타깝고 송구…본 전시에만 집중 바란다"
전시관 밖에서는 '대만관 명칭 반대' 중국인 단체 시위도
이날 간담회의 뜨거운 감자는 ‘대만관 명칭’을 둘러싼 논란이었다. 앞서 대만 측은 특별관 파빌리온 프로젝트에 ‘대만관(Taiwan Paavilion)’으로 협의해 왔지만, 광주비엔날레 측이 기관명 ‘NTMoFA’으로 변경했다며 항의했고, 이에 따라 명칭은 다시 대만관으로 변경됐다.
하지만 중국 측은 이를 두고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에 유감과 우려를 표했다. 이어 개막 하루 전날 중국관 참여 작가들은 전시 철수 입장을 밝혀왔다.
개막식 당일이던 이날 전시관 밖에서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라’며 변경된 대만관 명칭에 반대하는 중국인 단체의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아울러 중국 당국은 현재 국내에서 개최되는 여수세계섬박람회 등 행사에 불참을 통보하며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파빌리온 진행이 ‘예술을 사회적 맥락과 역사적 연대의 장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전시 취지와 어긋나는 양상이 되면서, 일각에서는 이와 관련된 지적이 제기됐다.
윤범모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는 명확한 입장 표명 요구에 대해 “본 전시에만 집중하길 바라지만, 오늘 이 사태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해 송구하고 안타깝다”며 “중국관이 함께 하길 바랬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대만은 원래 국가관이 아닌 기관관 자격으로 신청했지만, 나중에 대만관 이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검열인 것으로 주장했다”며 “지역 몇몇 단체가 합세하며 사태가 본 전시에 영향을 줄 것 같아 우려했다”고 밝혔다.
파빌리온 제도 개선 의지도 내비쳤다. 윤 이사는 “기관관과 국가관을 나누는 것이 큰 의미가 없고, 재단에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청 주체가 많아 현재 광주 시내에 수용할 전시 공간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과 같은 방식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에 차후 파빌리온 제도를 합리적인 방식으로 연구해 대폭 개선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시 기획을 총괄한 호추니엔 감독 역시 본 전시가 파빌리온과 별개로 운영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안타깝게도 인간의 관심은 늘 논란처럼 폭력적이고 과격한 변화에만 끌리는 것 같다”며 “비엔날레의 취지 중 하나가 예술의 본질에 집중하는 것인 만큼, 메인 전시에 집중하고 이러한 논란들이 방해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변화의 시간 담은 5개의 공간…광주 역사 재조명
이번 전시의 관전 요소는 전시장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제주 화산암이다. 호추니엔 감독은 그간 전시 오브제에 그쳤던 화산암을 가장 오래된 ‘참여자’로 정의했다. 화산암은 수천 년에 걸친 분출과 냉각으로 가장 느린 변화와 가장 빠른 변화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추니엔 감독은 제주 화산암에 대해 “변화는 폭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고, 반대로 느리고 지속적으로 일어나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며 “매일 만나는 사람의 얼굴도 계속 변하고 있지만, 평소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처럼 변화의 속도는 하나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다섯 개의 공간을 따라 이동하는 여정으로 구성됐다. 관람객들이 하나의 주제를 따라가기보단 서로 다른 세계를 건너는 과정에서 풍경과 공기, 감각의 변화를 마주하도록 했다.
호추니엔 감독은 ‘분자와 나’ 1전시실을 분자적인 흐름이 넘치는 공간으로 봤다. 그는 “이곳은 분자에서 몸으로, 개인에서 집단으로, 지질학에서 역사처럼 서로 다른 차원의 관계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골딘-세네비의 ‘송진연못’이 가장 먼저 이목을 끈다. 약 2톤의 호박색 송진을 전시장 바닥에 표현해, 소나무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분비한 송진이 산업적 자원이 되는 모순적 상황을 나타냈다.
키리 달레나의 ‘지워진 슬로건’은 마르크스 독재 정권 당시 필리핀 민주화 시위 사진 속 피켓 문구를 하얗게 지운 아카이브 연작으로, 독재하에서 억압된 민중의 목소리와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저항’을 시각화했다.
‘신체와 관계’ 2전시실은 자기 자신과 타인의 몸에서 출발한다. 이곳에서는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담은 작품도 시선을 끈다. ‘오월어머니집’은 5·18 민주화운동으로 가족을 잃은 여성들이 연대를 주제로 그린 작품 322점이다.
최경화 큐레이터는 “오월어머니집은 민주화운동으로 삶이 완전히 바뀌게 된 여성들의 공간으로, 이들이 2022년부터 워크샵을 열고 그림 수업에 참여하며 자신이 좋아하고 희망하는 작품을 선보였다”고 덧붙였다.
2전시실과 3전시실을 잇는 외부 통로에서는 작가이자 안무가인 안젤라 고(Angela Goh)의 ‘크래프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하루 네 차례 라이브로 공연되는 이 작품은 살아 있는 신체를 하나의 움직이는 이미지처럼 변화시켜, 이를 외부 통로 및 주변 풍경과 어우러지게 한다.
안젤라 고의 작품에서 시작된 시선은 그대로 ‘풍경과 배움’ 3전시실로 이어진다. 이곳에서는 매일 밤 전 세계 정치인들의 사과 영상이 상영된다. 제임스 T.홍의 ‘사과’는 권력의 위치에 있는 인물들이 발표한 공식 사과를 약 11시간 분량으로 모아 권력과 책임, 사과의 언어를 공공 공간으로 확장한다.
남종화의 대가 허백련의 삶도 엿볼 수 있다. 그는 1947년 광주농업기술학교를 공동 설립하고, 무등산에서 차밭을 가꾸며 생산해 왔다. 전시 현장에서는 실제로 그가 즐겨 마셨던 춘설차도 시음할 수 있었다.
‘우주와 변화’ 4전시실은 내부가 어두워 마치 우주에 온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앞쪽에 위치한 남하연 작가의 작품 ‘순이’가 맞이한다. 19세기 조선에 살았던 카톨릭 여성 순이에 초점을 맞춰, 천주교 박해라는 억압 속에서 신앙을 통해 주체적인 삶을 만든 여성들을 그려낸 작품이다.
마지막 ‘공기와 발화’ 5전시관은 입장권 없이도 관람이 가능하다. 재클린 키요미 고크(Jacqueline Kiyomi Gork)의 ‘어긋난 BPM(R로즈 변주곡)’이 흘러 나오는 이곳 내부는 투명한 공기주머니와 송풍기, 피드백 등으로 구성돼 마치 클럽 공간이 해체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한편, 이날 저녁 개막식에 참석한 민형배 전남광주통합시장은 환영사를 통해 “광주비엔날레는 지난 30년 동안 시대가 던진 질문에 예술로 답을 찾아왔고 그 출발에는 5·18의 기억과 민주주의, 인권, 평화의 정신이 있다"고 말했다.
광주비엔날레는 오는 11월 15일까지 전시를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