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 바람 따라 피고 지는 불꽃의 향연… 안동 하회선유줄불놀이
- 3000명 숨죽인 하회의 밤…'낙화' 외침에 터진 탄성 - 탈놀이·줄불·선유 한자리…오는 10월 5회 추가 개최
[편집자주] 3000명이 모인 백사장이 한순간 고요해진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밤하늘로 향하고, 바람이 불어 줄불이 크게 흩날리면 기다렸다는 듯 환호가 터진다. 사진이나 영상으로는 그 순간의 바람과 숯이 타는 향, 강물 위로 번지는 작은 불빛, 함께 숨죽였다가 동시에 탄성을 내뱉는 사람들의 감정까지 온전히 담기 어렵다. 하회선유줄불놀이는 이제 안동의 밤을 대표하는 관광콘텐츠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화려한 불꽃의 크기가 아니라 불과 바람, 강물과 사람이 함께 만들어내는 40여 분의 시간이 짙은 여운을 남긴다. 화면보다 현장에서 한 번쯤 직접 경험해야 할 이유다.
[파이낸셜리뷰=조용식 기자] 지난 12일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 만송정 일대. 줄불놀이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부터 하회의 밤은 이미 다른 모습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무대에서는 하회별신굿탈놀이가 펼쳐졌다. 익살스러운 몸짓과 대사가 이어질 때마다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졌고, 그 아래 백사장에는 선유줄불놀이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무대와 백사장으로 이어지는 관람 공간에는 선유줄불놀이를 신청한 3000여 명의 관객들이 백사장에 자리를 깔고 앉아 차분히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이 빚어낸 줄불의 궤적
한 시간 전까지 탈과 춤, 해학이 채웠던 공간은 공연이 끝나고 어둠이 깊어지면서 조금씩 고요해졌다. 사람들의 시선도 무대에서 낙동강 건너 부용대로 옮겨갔다. 이어 줄불놀이의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의 멘트와 함께 하늘에 떠 있는 줄에 불이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줄을 따라 붉은 불씨가 하나둘 부용대를 향해 올라갔다. 줄불이 정상에 닿을 때까지 사람들의 눈은 천천히 그 궤적을 좇았다. 불이 줄을 가득 채우고 나자, 이번에는 바람이 줄불의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아래로 잔잔하게 떨어지던 불씨는 바람을 만나면 어느새 위로 솟아올랐고, 다시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한쪽으로 길게 몸을 누이며 흩날렸다. 그러다 바람이 잠잠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아래로 조용히 내려앉았다. 약 40분 동안 이어진 줄불은 같은 모습을 좀처럼 반복하지 않았다.
“지금 바람이 조금 불고 있습니다. 처음에 줄불놀이를 시작했을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이죠. 하늘로 솟구치기도 하고 좌우로 흔들리기도 합니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어둠 속으로 잔잔하게 흘렀다.
“이것이야말로 자연에 순응하면서 아름답게 그리고 고요하게 즐겼던 우리 선조들의 줄불놀이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말 그대로 사람이 불을 붙였지만, 그날 밤 줄불의 모양을 완성한 것은 바람이었다. 바람이 밀면 수많은 불씨가 한쪽으로 기울었고, 바람이 들어 올리면 아래로 떨어지던 불씨가 다시 위로 날아올랐다. 조금 강한 바람이 지나갈 때면 가지런했던 불꽃들이 한꺼번에 흐트러지면서 밤하늘에 커다란 붉은 곡선을 만들었다.
하회선유줄불놀이의 줄불은 뽕나무를 태워 만든 숯가루를 이용한다. 불이 붙은 숯봉지가 천천히 타들어 가면서 작은 불씨를 떨어뜨리고, 여기에 바람이 스며들면 가지런했던 불씨가 위와 아래, 좌우로 흩날리며 매 순간 다른 모습을 만든다.
불이 붙은 숯가루는 한꺼번에 폭발하지 않는다. 천천히 타들어 가면서 작은 불씨를 아래로 떨어뜨린다. 바람이 없을 때는 가지런하게 내려오던 불씨가 바람을 만나면 위와 아래, 좌우로 방향을 바꾸며 흩날린다. 사회자는 이를 “꽃잎이 흩날리듯 떨어지는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했다.
관람객들은 눈에 보이는 불꽃뿐만 아니라 불씨가 타들어 갈 때 전해지는 향을 인상적인 요소로 꼽았다. 멀리서는 밤하늘을 가르는 불빛을 보고, 가까이에서는 숯이 타는 냄새까지 함께 느끼는 시간이었다.
하늘엔 줄불, 수면엔 달걀불, 부용대에선 불기둥
“하나, 둘, 셋. 낙화야!”
모두의 외침이 끝나자 부용대 절벽에서 굵은 불기둥이 떨어졌다. 줄을 따라 작은 불씨가 계속 흩날리는 줄불과 달리, 낙화는 절벽에서 불이 떨어지는 순간 강렬한 장면을 연출한다. 잠시 숨죽이고 있던 백사장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다시 사회자가 “줄불”을 외치면 사람들의 눈은 부용대 절벽에서 만송정과 부용대를 잇는 밤하늘로 돌아왔다. 어느새 줄을 가득 채운 불씨들이 바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바람 한 줄기가 지나가며 가지런했던 불씨가 한쪽으로 기울더니, 조금 더 강한 바람을 만나자 수많은 불꽃이 한꺼번에 흩날렸다. 3000여 관람객의 시선이 다시 그 움직임을 따라갔다.
사람들이 하늘의 줄불을 바라보는 동안 낙동강 위에도 작은 불빛이 나타났다. 달걀 껍데기나 작은 바가지 안에 목화솜 또는 한지로 만든 심지를 세우고 기름을 부어 불을 밝힌 ‘달걀불’이다.
이날은 유속이 빠르지 않아 작은 불빛들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강을 따라 내려왔다. 물 위에 비친 불빛도 달걀불을 따라 길게 흔들렸다. 하늘에서는 불이 바람을 탔고, 강에서는 불이 물길을 따라 움직였다.
위에서는 수많은 불씨가 흩어지고 아래에서는 작은 불빛이 하나씩 지나갔다. 사회자는 관람객들에게 잠시 강물을 바라보라고 권한 뒤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영상이나 사진으로 남기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분 눈에, 마음에 가장 아름답게 담아두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천천히 이 밤을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실제로 백사장 곳곳에는 휴대전화를 든 손이 줄지어 있었지만, 바람이 크게 불어 줄불이 한꺼번에 흐트러지는 순간이면 작은 화면을 바라보던 사람들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카메라 안에 한 장면을 담는 사이, 바람은 이미 다음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물길 따라 흐르는 선비의 풍류를 만나다
강 위에서는 선유놀이가 이어졌다. ‘선유(船遊)’는 말 그대로 배를 타고 자연을 즐기는 뱃놀이다. 하회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배를 몰았고 배 위에서는 시조가 이어졌다.
“만수받이를 청하시게.”
강 위에서 들려온 선창이 물길을 건너 백사장까지 닿았다. 하늘에는 줄불이 내리고, 강에는 달걀불이 흘렀다. 그 사이로 배가 잔잔한 물살을 가르며 움직였다.
세 풍경의 속도는 서로 달랐다. 줄불은 바람을 만나 빠르게 흔들렸고, 달걀불은 물살을 따라 천천히 내려왔다. 배는 그 사이를 느긋하게 흘렀다. 불과 물, 사람이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면서 하나의 장면 안에 들어왔다. 그러다가 다시 바람이 불면 사람들의 시선은 어김없이 하늘로 향했다.
줄불은 바람을 거스르지 않았다. 바람이 데려가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밤이 깊어져도 사람들은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줄불”이라는 외침이 다시 들릴 때마다 고개를 들었고, 남아 있던 불씨가 바람을 만나 크게 흔들리면 기다렸다는 듯 탄성이 이어졌다. 아이와 부모, 연인과 친구, 여행객과 현장을 기록하러 온 기자까지 모두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두었다.
사회자는 관람객들에게 번뇌와 괴로움, 슬픔이 있다면 줄불 꽃잎에 실어 멀리 날려 보내고 “아름다운 기억들, 멋진 장면들만 여러분 마음속에 남겨두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한다. 마지막 줄불이 바람을 타고 흩어지는 순간, 그 말은 그곳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벅찬 소회와 맞닿아 있었다.
서울에서 안동을 찾은 장유리·전성빈 씨도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다. 두 사람은 “하회선유줄불놀이를 보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것 같다”며 “너무 멋지고 아름다웠다.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너무 많아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오는 10월 3, 10, 17, 24, 31일 등 다섯 차례 진행
올해 하회선유줄불놀이는 오는 10월 다섯 차례 더 불을 밝힌다.
공식 안내에 따르면 오는 10월 3일과 10일, 17일, 24일, 31일 하회마을 낙동강변 일원에서 열린다. 일몰 시간을 고려해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진행된다. 관람은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경상북도 통합 관광예약 플랫폼 '경북봐야지'를 통해 예약할 수 있으며, 관람료는 1인 1만 원(24개월 이하 소아 무료)이다. 행사 당일에는 하회마을 매표소에서 오후 1시부터 입장 팔찌를 받을 수 있으며, 준비 수량이 소진되면 조기 마감될 수 있다.
특히 오는 10월 10일과 17일, 24일은 ‘2026 세계유산축전 안동’(10월 9일~25일) 기간과 겹친다. 하회마을과 봉정사, 도산서원, 병산서원을 중심으로 열리는 축전과 연계해 여행 동선을 넓히기 좋은 시기다. 야외 행사 특성상 기상 상황에 따라 일정이 변경될 수 있으며, 주차 역시 사전 예약자를 우선하므로 방문 전 당일 운영 공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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