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Hi스토리] 베네통에서 ‘MLB 신화’까지…F&F의 34년 성장사
해외 IP 재해석해 MLB·디스커버리 성공…중국 진출로 글로벌 패션기업 도약 F&F차이나 상반기 매출 15.3% 증가…연결 매출 2조원 문턱 MLB 매출 비중 60%대·중국 의존도는 과제…사업구조 다변화 필요
[파이낸셜리뷰=김희연 기자] 국내 패션업계에서 F&F는 좀처럼 보기 드문 성장 사례로 꼽힌다. 자체 브랜드를 처음부터 키워 정면 승부하기보다 해외에서 확보한 브랜드 지식재산권(IP)을 국내외 소비자 취향에 맞게 재해석하는 ‘라이선스 비즈니스’로 경쟁력을 쌓았다.
특히 미국 프로야구 IP를 활용한 MLB를 패션 브랜드로 전개하고 중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면서 국내 패션기업 가운데 손꼽히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다.
회사 이름 ‘F&F’에도 이 같은 정체성이 담겼다. ‘패션 앤드 포워드(Fashion & Forward)’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패션을 통해 미래로 나아간다는 창업자의 의지를 나타냈다.
‘미다스의 손’의 발상 전환
F&F그룹 패션사업의 역사는 1992년 시작됐다. 창업자인 김창수 회장은 삼성출판사 창업주 김봉규 회장의 차남으로, 아버지가 이끌던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출판가 출신 경영인이다. 그가 패션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때가 1992년, 만 32세 무렵이다.
당시 패션시장에서는 기업이 자체 브랜드를 개발해 경쟁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김 회장은 이탈리아 캐주얼 브랜드 베네통의 국내 사업에 뛰어들며 다른 길을 택했다. 인종 화합과 평등을 앞세운 베네통의 파격적인 브랜드 철학과 강렬한 색감이 국내에서도 통할 것으로 판단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베네통은 한때 국내 주요 백화점에서 높은 매출을 기록하는 인기 브랜드로 성장했다. 이후 김 회장은 시슬리와 엘르스포츠, 레노마스포츠 등 해외 브랜드를 잇달아 전개하며 ‘패션업계 미다스의 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야구 모자를 패션으로 바꾼 1997년
회사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 전환점은 1997년 찾아왔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베이스볼(MLB)의 라이선스를 확보해 국내에 MLB 브랜드를 선보인 것이다.
당시 MLB IP는 스포츠 의류나 야구 팬 상품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F&F는 국내에 MLB를 도입할 때부터 이를 팬 상품이 아닌 패션 브랜드로 전개했다. 뉴욕 양키스와 LA 다저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 구단 로고를 적용한 볼캡과 의류·신발·가방을 선보이며 야구에 관심이 없는 소비자까지 고객층으로 끌어들였다.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NY’와 ‘LA’ 로고 모자는 이러한 전략의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특정 스포츠 종목의 팬 상품에 머물던 MLB IP는 F&F의 손을 거쳐 국내에서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라이프스타일 패션 브랜드로 영역을 넓혔다.
라이선스 사업의 귀재
F&F는 해외 유명 IP를 단순히 수입·유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시장에 맞게 제품과 유통·마케팅을 설계하며 경쟁력을 쌓았다. 회사 측은 이와 함께 상품 기획과 브랜드 운영, 유통망 구축 등 여러 역량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라이선스 사업의 성장을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사업 역량이 두 번째로 힘을 발휘한 것은 2012년이다. F&F는 미국 다큐멘터리 채널 디스커버리의 IP를 활용해 아웃도어 브랜드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을 국내에 론칭했다.
당시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등산과 전문 기능성을 강조한 브랜드가 주도하고 있었다. F&F는 기능성과 일상복의 경계를 허문 ‘라이프스타일 아웃도어’를 앞세워 젊은 소비자를 공략했다.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은 롱패딩 열풍을 이끈 대표 브랜드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고, 출시 5년 만에 국내 주요 아웃도어 브랜드 반열에 올라섰다.
F&F는 2010년 MLB 키즈를 선보인 데 이어 2018년 이탈리아 프리미엄 아웃도어 브랜드 듀베티카를 인수했다. 이후 2020년 미국 스트리트 브랜드 수프라의 상표권을 확보하고, 2022년 이탈리아 테니스 헤리티지 브랜드 세르지오 타키니를 인수하며 소유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넓혔다.
중국에서 꽃핀 ‘MLB 신화’
F&F의 역사를 설명할 때 중국 사업을 빼놓을 수 없다.
국내 패션기업 상당수가 중국 시장 공략에 어려움을 겪은 것과 달리 F&F는 MLB를 앞세워 현지에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2019년 MLB의 중국 판권을 확보하고 현지 법인 F&F차이나를 통해 사업을 본격화한 것이 출발점이었다.
MLB 특유의 볼캡과 스트리트 패션 스타일은 중국 젊은 소비자층의 호응을 얻었다. F&F는 베이징·상하이 등 핵심 도시에서 오프라인 매장을 확대하는 동시에 티몰과 징둥, 더우인 등 온라인 플랫폼을 공략했다.
F&F의 연도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F&F차이나 매출은 2019년 119억원에서 2021년 3054억원으로 증가했다. 이어 2022년 5810억원, 2023년 8132억원, 2024년 8578억원을 거쳐 2025년에는 9603억원까지 늘었다. 진출 초기와 비교하면 6년 만에 매출 규모가 80배 이상 확대된 셈이다.
2026년 들어서도 중국 사업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F&F의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F&F차이나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4949억원으로, 전년 동기 4292억원보다 15.3% 증가했다. 중국의 기존 점포당 매출 개선과 온라인 채널 확대가 실적을 뒷받침한 것으로 분석된다.
MLB는 중국을 넘어 홍콩과 동남아시아·중동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F&F 관계자는 “현재 홍콩과 마카오, 베트남 등에도 진출해 있으며 이들 해외시장에서도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구체적인 해외시장 공략 방식은 각 지역의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F&F는 국내에서 기획한 라이선스 브랜드를 해외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독특한 사업모델을 구축하며 ‘한국 패션기업의 글로벌화’ 사례를 만들었다.
자산경량형 사업구조와 디지털 전환
F&F는 생산시설을 직접 대규모로 소유하기보다 제품 기획과 디자인, 브랜드 관리, 마케팅 및 유통에 역량을 집중해왔다. 결과적으로 생산시설에 투입되는 고정비를 줄이고 브랜드와 유통망에 자원을 집중하는 자산경량형 사업구조를 갖춘 셈이다. 다만 회사 측은 ‘자산경량화’를 공식적인 경영전략으로 내세운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상품 기획부터 생산·물류·판매·마케팅까지 연결하는 디지털 시스템에도 지속적으로 투자했다. 판매 데이터와 재고 정보를 상품 기획에 빠르게 반영해 수요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고 재고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다.
이 같은 사업구조는 중국을 비롯한 해외시장에서 매장과 유통망을 빠르게 확장하고 높은 수익성을 유지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2021년 인적분할로 지주사 체제 전환
F&F는 2021년 5월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회사 F&F홀딩스와 패션사업회사 F&F로 재편됐다. 존속법인 F&F홀딩스는 자회사 관리와 투자사업을, 신설법인 F&F는 패션사업을 각각 담당하는 구조다. 기존 주주들은 분할 비율에 따라 두 회사의 주식을 모두 배정받았다.
이후 F&F홀딩스는 공개매수 방식의 현물출자 유상증자를 통해 사업회사 F&F 지분을 확보하며 지주회사 체제를 구축했다. 사업회사 F&F 주주들로부터 F&F 주식을 현물출자받고 그 대가로 F&F홀딩스 신주를 교부하는 방식이었다.
이 같은 재편은 사업회사와 투자회사의 역할을 나눠 패션사업의 전문성을 높이고 신사업 투자와 인수합병의 효율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연 매출 2조원 문턱까지 성장
인적분할 이후 사업회사 F&F의 외형은 빠르게 커졌다. 중국에서 MLB가 급성장하면서 매출은 2조원에 근접했다.
F&F의 2024년 연결 매출은 1조 8960억원, 영업이익은 4507억원이었다. 2025년에는 매출 1조 9339억원, 영업이익 4685억원을 기록해 각각 전년 대비 약 2%, 4% 증가했다.
최근 실적 흐름도 견조하다. 2026년 1분기 연결 매출은 5608억원, 영업이익은 1534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각각 10.9%, 24.2% 늘었다. 2분기에는 매출 3996억원, 영업이익 864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5%, 2.9% 증가했다. 이에 따라 상반기 누적 매출은 9605억원, 영업이익은 2399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각각 8.6%, 15.6% 늘었다.
패션업계 전반이 내수 침체와 소비 양극화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MLB의 국내외 판매 회복과 중국 사업 성장이 실적을 뒷받침했다.
고속 성장 속 남은 과제…MLB·중국 의존도
화려한 성장의 이면에는 과제도 뚜렷하다. F&F의 실적은 여전히 MLB와 중국 시장에 크게 기대고 있다.
증권업계 추정치에 따르면 2025년 연결 매출 1조 9339억원 가운데 한국과 중국을 합친 MLB 매출은 약 1조 2910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66.8%에 해당한다.
디스커버리 국내 매출은 약 3538억원으로 전체의 약 18%를 차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2024년 4325억원보다 약 18.2% 감소한 것으로, 3년 연속 감소세다.
지역적으로도 2025년 F&F차이나 매출은 그룹 연결 매출의 절반에 육박한다. 이에 따라 MLB의 중국 성장세가 둔화하거나 현지 소비환경이 악화할 경우 F&F 전체 실적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 사업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다해도 중국 패션시장의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소비환경이 바뀌면서 회사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F&F가 중국에서 외형 확대와 함께 기존 점포의 효율 및 점당 매출을 높이는 데 집중하는 것도 시장 변화에 대응해 사업의 안정성을 높이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F&F가 베네통에서 시작해 MLB를 글로벌 패션 브랜드로 키우며 성장해온 만큼, 앞으로의 과제는 특정 브랜드와 시장에 집중된 사업구조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다변화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