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모, 여행에서 건져 올린 ‘쉼’…북촌서 신작 25점

제주·통영·속초·보은 등 1년간 머문 여행지 풍경 화폭에 담아 9월30일부터 갤러리단정 초대전 ‘떠나고 돌아오다’…여행 드로잉북도 출간

2026-09-28     조용식 기자

[파이낸셜리뷰=조용식 기자] 여행에서 돌아오면 사진은 남지만, 여행자가 그곳에서 느꼈던 감정은 쉽게 사라진다. 정일모 작가는 지난 1년여 동안 제주와 통영, 속초, 보은, 남양주, 양평 등을 오가며 그 순간의 마음을 그림으로 붙잡았다. 유명 관광지의 모습을 재현하기보다 걷다가 멈추고, 나무를 바라보고, 벤치에 앉아 쉬었던 시간을 화폭으로 옮겼다.

정일모 작가의 초대전 ‘떠나고 돌아오다’가 오는 30일부터 10월24일까지 서울 종로구 북촌 갤러리단정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2023년 ‘Almost There-우린 거기 있었네’ 이후 갤러리단정에서 3년 만에 열리는 두 번째 초대전으로, 지난 1년간 국내 여행에서 만난 풍경을 바탕으로 제작한 신작 25점을 선보인다.

작품의 출발점은 ‘어디를 다녀왔는가’보다 ‘그곳에서 어떻게 머물렀는가’에 가깝다. 여행지에서 만난 나무와 꽃, 길, 바다와 골목, 작은 집 등이 등장하지만 풍경을 사실적으로 기록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벤치에 앉아 나무를 바라보거나 낮잠을 자는 사람처럼 여행 중 무심코 지나칠 법한 순간을 화면 안으로 끌어들인다.

출품작에서도 이러한 시선은 이어진다. 충북 보은의 들판과 나무를 담은 ‘보은의 아침’, 제주 돌담과 풍력발전기가 등장하는 ‘제주134_바람, 사랑의 문’을 비롯해 ‘연주암_흐름 가운데 앉다’, ‘자가치유_The Healing Painting’, ‘함께 보는 저녁 풍경’, ‘제주136_여름 휴가’, ‘오랜만에 평화’ 등이 전시장에 걸린다. 작품마다 여행지의 구체적인 풍경과 작가가 그곳에서 경험한 감정이 겹쳐진다.

정일모가 여행을 바라보는 방식은 ‘이동’보다 ‘회복’에 가깝다. 작가는 상담심리학을 전공하고 미술 심리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작품 속에서 걷는 사람 못지않게 쉬는 사람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 같은 작업의 배경과 맞닿아 있다.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여행 대신 걷고 바라보고 쉬면서 자신의 속도를 되찾는 과정에 시선을 둔다.

작가는 “여행은 새로운 장소를 향해 떠나기도 하면서 잊고 지내던 자신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며 “낯선 여행지를 걷다 보면 익숙한 일상 속 나를 잠시 내려놓게 된다. 그때 우리는 얼마나 멀리 왔는가보다, 지금 어떤 방향으로 걷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작은 그림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림 속 풍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자신의 이야기도 떠올려 보면 좋겠다”며 “여유와 쉼을 품고 우리 여행이 가을바람처럼 조금 더 가벼워지고 풍성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여행지의 장소성을 소비하는 대신 머무르고 쉬는 시간을 작품의 중심으로 끌어왔다는 점은 이번 전시를 관통한다. 관광에서도 방문지의 수나 이동 거리보다 한 장소에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가 여행 경험을 좌우한다. 정일모의 그림은 관광지를 소개하는 여행화라기보다 여행 이후 개인에게 남은 감정과 기억을 다시 꺼내 놓는 작업에 가깝다.

전시와 함께 여행 드로잉북 ‘떠나고 돌아오다’도 출간된다. ‘오늘도 여행 중입니다’, ‘우리들의 여행’, ‘여행의 잔상들’ 등 세 개 섹션과 그림엽서로 구성했으며 정일모의 신작 드로잉도 담았다.

정일모는 상담심리학을 전공했으며 미술 심리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지금까지 27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100여 회의 아트페어와 그룹전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