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 고모산성부터 300년 도예 명가까지…문경의 시간을 걷다
진남교반 굽어보는 고모산성…옛 철길은 오미자테마터널로 변신 석탄산업의 기억 품은 가은…광부의 막장에서 사극 촬영장까지 용추계곡 화강암 절경 지나 9대째 이어진 영남요의 흙과 불 백두대간 오미자에 양조기술 더한 오미나라…지역 농산물의 관광자원화
[파이낸셜리뷰=조용식 기자] 문경의 여행길에서는 서로 다른 시대가 자주 겹친다. 삼국시대 산성에 올라 영강을 내려다보다 산을 내려오면 옛 철길을 활용한 오미자테마터널이 나타난다. 한때 산업화를 떠받쳤던 탄광의 갱도 밖에는 영화와 드라마 속 궁궐이 서 있고, 깊은 계곡을 빠져나오면 300년 동안 흙과 불을 다뤄온 사기장 가문의 시간이 기다린다.
문경의 시간은 그렇게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고모산성과 진남교반에서는 길의 역사를, 가은에서는 석탄산업의 흥망을 만난다. 용추계곡에서는 백두대간이 만든 자연을 보고, 영남요와 오미나라에서는 한 분야를 오래 지켜온 사람들을 만난다.
이번 문경 여행은 유명 관광지를 하나씩 확인하는 여정보다는 길과 산업, 자연과 사람을 따라 문경에 쌓인 시간을 걷는 여행에 가까웠다.
걷지 못한 토끼비리, 대신 고모산성에 오르다
진남교반에 도착해 고모산성을 향해 걷는다. 입구의 종합안내도를 지나자 ‘명승 토끼비리 가는 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토끼비리는 영남대로 옛길 가운데 문경을 대표하는 구간이다. 산허리 벼랑을 따라 난 좁은 길로, 오랜 세월 영남과 한양을 오가던 사람들이 지났던 교통로다.
꼭 걸어보고 싶었던 길이었지만 이날 주어진 시간으로는 토끼비리까지 다녀오기 어려웠다. 이정표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 고모산성으로 방향을 잡았다. 여행에서는 가지 못한 길이 오히려 다음 여행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길을 오르면 진남문이 모습을 드러낸다. 문을 통과하면 돌담과 초가 형태 건물이 이어지는 주막거리가 나온다. 예부터 이 일대가 문경새재로 향하는 길목이었다는 사실을 공간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성황당을 지나 다시 오르막을 타면 고모산성 남문지에 닿는다. 주변에는 주먹만 한 돌이 무더기로 쌓여 있다. 산성을 방어할 때 사용했던 투석용 돌이다. 지금은 고요한 산성이지만 돌무더기 하나가 이곳이 한때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말해준다.
성벽을 따라 돌계단을 오른다. 경사가 만만치 않다. 몇 차례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른 뒤 억새가 자라는 능선을 지나 전망이 트이는 곳에 서자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발아래로 영강이 산자락을 감싸며 굽이치고 철길과 도로, 크고 작은 교량이 강을 가로지른다. 산과 물, 길이 한곳에서 만나는 진남교반이다.
올라오는 동안의 피로보다 먼저 ‘조금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끼비리를 걷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그제야 조금 누그러졌다. 다음에 다시 문경을 찾는다면 출발점은 이미 정해졌다. 이번에 지나친 토끼비리다.
철길이 사라진 자리, 오미자가 들어왔다
고모산성을 내려오면 분위기는 빠르게 달라진다. 산성 아래에서 만나는 오미자테마터널 때문이다. 산을 오르내리며 몸에 열이 오른 상태에서 터널 안으로 들어서자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먼저 닿는다. 바깥의 햇볕과는 확연히 다른 온도다.
바닥에는 옛 철길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 위로 문경의 대표 농산물인 오미자를 소재로 한 조형물과 전시물이 이어진다. 붉은 오미자 열매를 크게 형상화한 장식과 조명, 증기기관차 벽화가 폐철도 공간이라는 장소의 기억과 현재의 관광콘텐츠를 연결한다.
천장을 채운 우산과 트릭아트, 도자기 전시도 이어진다. 한쪽에는 오미자청과 음료 등 문경에서 생산한 가공상품을 판매하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고모산성이 옛길과 군사적 요충지의 시간을 보여준다면 오미자테마터널은 쓰임을 다한 교통시설을 지역 특산물과 결합해 관광공간으로 바꾼 사례다. 같은 장소에서 문경 관광이 과거의 자원을 현재의 콘텐츠로 바꾸는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막장으로 향했던 길, 이제 관광객이 걷는다
문경의 시간이 크게 방향을 바꾸는 곳은 가은이다. 문경석탄박물관에 들어서면 관광지에 도착했다는 느낌보다 먼저 ‘탄광도시 문경’이라는 과거와 마주한다. 전시관에는 광부의 작업 모습과 채탄 장비뿐 아니라 광산을 중심으로 살아야 했던 가족들의 이야기가 함께 남아 있다.
특히 눈길을 붙잡은 것은 여성 광부들의 기록이다. 남편을 사고로 잃은 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선탄 작업에 나서야 했던 여성들의 삶이 사진과 기록으로 전해진다. 겨울이면 물에 젖은 석탄과 작업시설이 얼어붙는 환경에서 석탄과 돌을 가려내야 했던 노동의 시간이다.
전시관을 지나 은성갱도로 향한다. 야외에는 ‘출근하는 광부’를 형상화한 철제 조형물이 줄지어 서 있다. 지금은 관광객이 카메라를 들고 걷는 길이지만 과거에는 광부들이 작업장으로 향하던 공간이었다. 은성갱도는 1963년 석탄 채굴을 위해 굴착됐으며 은성광업소가 문을 닫은 1994년까지 사용됐다. 갱도 내부에서는 인차를 타고 막장으로 이동하는 광부와 굴착 작업, 채탄 장비 등을 재현해 놓았다.
빛이 줄어드는 갱도 안으로 몇 걸음 들어가면 박물관 전시실에서 보던 광부들의 사진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좁은 공간과 암벽, 기계 사이에서 하루를 보냈던 사람들의 노동을 공간의 크기로 체감하게 된다.
그러나 갱도를 나오면 풍경은 다시 바뀐다. 문경 에코월드를 이동하는 관람용 열차를 타고 산기슭으로 올라가면 가은오픈세트장이 나타난다. 궁궐과 성곽, 기와지붕이 이어지는 공간이다. ‘근초고왕’, ‘장영실’, ‘육룡이 나르샤’ 등 여러 사극과 영상콘텐츠가 이곳을 촬영지로 활용했다. 탄광에서 영상산업의 공간으로 바뀐 가은의 변화는 문경 관광에서 눈여겨볼 대목이다.
한때 석탄을 실어 나르던 지역에서 이제 관광객이 광산의 기억을 보고, 조금 뒤에는 드라마 속 공간을 걷는다. 산업의 쇠퇴로 사라질 수 있었던 공간이 산업유산과 콘텐츠 관광이라는 다른 쓰임을 얻은 셈이다.
아름다운 계곡일수록 한 걸음 물러서야 한다
가은을 떠나 용추계곡으로 향한다. 선유동천 나들길 입구에서 숲길로 들어서면 나무 데크와 계곡이 번갈아 나타난다. 조금 더 들어가면 용이 승천하며 발톱 자국을 남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용소바위를 지나 용추에 닿는다.
길을 걸으며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정겹게 느껴진다. 사람이 오르내리는 길과 계곡이 가깝다. 경계가 있지만, 없는 듯 가까이 다가와 있다. 이런 용추계곡의 풍경을 만드는 것은 화강암과 물이다.
오랜 세월 흐르는 물이 암반을 깎으면서 매끄러운 바위와 깊은 소(沼)를 만들었다. 바위를 타고 흘러내린 물은 움푹 팬 암반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계곡 아래로 흘러간다.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현장에서 만나는 물의 속도가 훨씬 빠르다. 그만큼 안전거리도 필요하다. 용추 주변에는 물놀이 사고를 경고하는 현수막과 접근을 막는 안전시설이 설치돼 있다. 물에 젖은 화강암은 미끄럽고 계곡의 수심과 흐름도 육안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절경을 조금 더 가까이서 찍기 위해 통제선을 넘어설 이유는 없다.
용추계곡의 풍경은 몇 걸음 뒤에서도 충분하다. 오히려 통제선 밖에 서면 물이 수천, 수만 번 같은 자리를 지나며 바위를 깎아낸 흔적이 더 잘 보인다. 문경의 여러 관광지가 인간이 남긴 시간을 보여준다면 이곳의 시간은 물이 만들었다.
9대를 이어온 흙과 불의 시간, 영남요
용추계곡에서 만난 자연의 시간 뒤에는 사람의 시간이 기다린다. 푸른 기와를 얹은 전시관 앞에 ‘중요무형문화재 105호 사기장’이라고 새긴 비석이 서 있다. 영남요다.
안으로 들어서자 한쪽 벽을 따라 가문의 계보가 이어진다. 1700년대 조선 영조 때 활동한 1대 김취정을 시작으로 흙과 불을 다루는 일이 대를 이어 전승됐다. 그 중심에 국가무형유산 사기장 보유자 백산 김정옥이 있다.
김정옥에서 8대 김경식 전승교육사, 9대 김지훈 이수자로 이어지는 가문은 300년 가까이 사기 제작의 맥을 잇고 있다. 전시 공간에는 그 세월을 보여주는 도구와 기록, 작품이 함께 놓여 있다. 18세기 중반 제작돼 영남요 집안에서 250여 년간 사용해온 발물레는 이 가문이 이어온 시간을 압축해 보여주는 유물이다. 도자기 한 점보다 그것을 만들어온 시간이 먼저 보이는 공간이다.
이날 김정옥 사기장을 직접 만났다. 하얀 옷을 입고 자리한 그는 자신이 빚은 그릇을 손에 들고 흙과 가마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수십 년 동안 같은 일을 반복한 사람에게서는 동작보다 손이 먼저 말을 한다. 그릇을 들어 보이고 손끝으로 표면을 짚는 모습에서 오랜 세월 몸에 밴 작업의 습관이 묻어났다.
전시장에는 백자 달항아리와 찻그릇, 물고기 문양을 그려 넣은 다기 등이 놓여 있다. 화려한 장식보다 형태와 쓰임을 먼저 생각한 그릇들이다. 영남요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작품만이 아니다. 한 지역에서 기술이 세대를 넘어 어떻게 살아남았는가라는 질문이다.
관광객에게 300년이라는 숫자는 처음에는 먼 역사처럼 들린다. 그러나 1대에서 9대로 이어지는 이름을 보고, 그 후손이 지금도 같은 공간에서 흙을 만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그 숫자는 현재가 된다.
문경 오미자, 술이 되어 여행의 마지막 잔에 채워지다
문경 여행의 마지막에는 다시 오미자가 등장한다. 이번에는 터널의 조형물이 아니라 술이다. 오미나라에 들어서면 야외의 대형 구리 증류설비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건물 외벽에는 병을 형상화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내부로 들어가면 와인병과 증류주, 숙성시설이 이어진다. 이곳에서는 이종기 대표가 직접 양조 과정을 설명했다.
그의 이력은 한국 주류산업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1982년 국산 위스키 개발을 시작으로 주류업계에서 경력을 쌓아온 그가 문경에 자리 잡고 선택한 원료가 오미자였다. 문경에서 생산되는 오미자를 발효시켜 와인을 만들고 다시 증류와 숙성을 거치면서 지역 농산물이 전혀 다른 상품으로 바뀐다. 2011년 ‘오미로제’, 2016년 ‘고운달’로 이어진 제품 개발의 과정도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양조장 한편에서는 병을 비스듬히 거꾸로 세운 채 숙성시키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병내 2차 발효 과정에서 생긴 침전물을 병 입구 쪽으로 모으기 위해 병을 조금씩 돌려주는 작업이다. 기계보다 시간이 중요한 공정이다. 시음 공간의 이름은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다. 술을 오랫동안 숙성할 때 증발해 사라지는 양을 가리키는 양조 용어를 공간 이름으로 가져왔다.
잔에 오미로제가 채워진다. 옅은 붉은빛이 투명한 잔 안에서 올라온다. 한쪽 벽에는 오미나라의 술이 국내외 공식 행사와 만찬 등에 사용된 기록과 사진이 전시돼 있다. 그 앞에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술의 평가보다 지역 농산물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라는 점이다.
농장에서 수확한 오미자는 생과와 오미자청에 머물지 않고 음료가 되고 와인이 되고 증류주가 됐다. 생산과 가공, 양조, 체험이 한 공간에서 연결되면서 오미자는 문경의 농산물이면서 동시에 여행의 콘텐츠가 됐다.
고모산성에서 내려다본 영강, 옛 철길에 들어선 오미자테마터널, 석탄을 캐던 은성갱도와 그 위에 자리한 촬영장, 물이 바위를 깎아 만든 용추계곡, 9대에 걸쳐 이어진 영남요의 가마. 서로 관련 없어 보이던 장소들은 여행이 끝날 무렵 하나의 공통점을 드러낸다.
문경은 오래된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도시라기보다, 오래된 것에 새로운 쓰임을 더해온 도시였다. 폐철길에는 오미자가 들어왔고 폐광은 박물관과 촬영장이 됐다. 300년 된 사기장의 기술은 지금도 다음 세대로 넘어가고 있으며 산에서 재배한 오미자는 술이 되어 여행자의 잔에 담긴다.
그래서 문경 여행에서 오래 남는 것은 어느 한 곳의 절경만은 아니다. 고모산성에서 미처 걷지 못한 토끼비리가 그렇고, 갱도에서 마주한 광부들의 얼굴이 그렇다. 김정옥 사기장이 손에 들었던 그릇과 오미나라에서 마지막으로 받아든 붉은 잔도 그렇다.
문경에서는 걷고, 보고, 마시는 일 사이로 시간이 따라온다. 그리고 그 시간이 다음 여행을 다시 문경으로 불러들이는 이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