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0월 15일 소양강댐 준공, 일본 설계 뒤집은 정주영

2026-10-15     어기선 기자
기사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73년 10월 15일은 소양강댐이 준공된 날이다. 1967년 4월 착공한 지 6년만에 만들어졌으며, 높이 123m, 길이 530m, 총저수용량 약 29억 톤에 달한다.

서울과 수도권의 홍수 피해를 줄이고, 산업화에 필요한 용수와 전력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일본의 콘크리트댐 설계에 도전한 정주영

소양강댐은 1960년대 초부터 건설계획을 세웠다. 그러면서 일본의 엔지니어링 회사 일본공영에 설계를 맡겼고, 일본공영은 콘크리트 중력댐을 구상했다.

하지만 현대건설 당시 정주영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콘크리트 중력댐으로 공사를 할 경우 시멘트와 철근 등 건설자재 공급 능력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막대한 건설자재를 일본으로부터 수입해야 하고, 막대한 자재를 산악지역까지 운반하게 된다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현대건설 입장에서는 적자가 불 보듯 뻔했다.

반면 소양강 주변에 댐 건설에 필요한 암석과 토사가 풍부했다. 이에 정주영 사장은 모래와 자갈로 사력댐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본 기술진은 한국 기업의 대규모 댐 건설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핀잔을 줬으며, 당시 정부 관료들 역시 일본 편을 들었다.

하지만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콘크리트 중력댐으로 할 경우 북한의 공격에 파괴가 된다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물에 잠기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사력댐으로 할 경우 북한의 미사일 포격에도 움푹 패일 뿐이지 댐 자체가 무너지지 않게 되기 때문이라며 사력댐 건설에 힘을 실어줬다.

한강 홍수 조절

소양강댐의 핵심 기능은 홍수 조절이다. 한강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해 서울을 관통한다. 문제는 여름철 집중호우가 발생하면 상류에서 유입되는 물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하류 지역의 침수 위험은 커진다.

1960년대 서울은 인구 증가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홍수 피해를 줄여야 할 상황이었다. 이에 북한강 상류인 소양강에 대규모 댐을 건설해 홍수기에 유입되는 물을 저장하고 방류량을 조절하도록 했다. 실제로 소양강댐으로 인해 북한강에서 유입되는 물의 양을 조절할 수 있게 됐다.

훗날 남한강에 충주댐을 건설하면서 한강의 홍수 조절 기능은 완성됐다.

수도권 용수 공급과 산업화의 기반

소양강댐은 홍수 조절뿐 아니라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건설됐다. 1960~1970년대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서울과 수도권의 인구가 증가했고 공장 가동에 필요한 물 수요도 급증했다.

소양강댐은 여름철에 집중되는 강물을 저장했다가 필요한 시기에 방류함으로써 한강 수계의 용수 공급을 뒷받침했다. 아울러 20만kW 규모의 수력발전설비를 갖춰 전력 생산에도 기여했다.

거대한 호수 아래 사라진 마을들

소양강댐 건설이 경제적 성과만 남긴 것은 아니었다. 댐이 완공되면서 상류 지역에 거대한 소양호가 형성됐고 기존 마을과 농경지가 물에 잠겼다.수몰지역 주민들은 대대로 살아온 집과 농토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야 했다.

국가 경제개발이라는 목표 아래 추진된 사업이었지만 고향과 생계 기반을 잃는 부담은 해당 지역 주민들이 감당해야 했다.

또한 대규모 저수지 조성은 하천의 흐름과 주변 생태환경에도 변화를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