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속 경제리뷰] 노래 ‘고향초’, 뽕을 따던 아가씨들은 왜 서울로 갔나

2026-10-15     어기선 기자
기사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남쪽 바다에 물새가 날고 뒷동산에는 동백꽃이 피어 있다. 하지만 뽕을 따던 아가씨들은 서울로 떠났다.

노래 ‘고향초’에 담긴 풍경이다. 노래는 고향을 떠난 아가씨들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뽕을 따던 아가씨들은 왜 고향을 떠나야 했을까?

해방 직후 알려진 노래? 일제강점기 노래?

‘고향초’는 김다인 작사, 박시춘 작곡의 대중가요다. 김다인은 일제강점기부터 활동한 작사가 조명암의 필명이다. 이 노래는 1947년 송민도가 부르면서 알려졌다.

하지만 각종 자료를 살펴보면 고향초는 1944년 4월 서울 제일극장에서 공연된 라미라악극단의 가극 ‘오동나무’에 삽입됐고, 배우 장동휘가 무대에서 불렀다고 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고향초’는 일제강점기 당시 노래가 된다. 노래에 등장하는 뽕나무는 농촌 경제활동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누에를 길러 고치를 생산하는 양잠업은 농가의 현금 창고였다.

뽕을 따던 아가씨들은 농촌에서 노동을 하던 여성을 의미한다. 그런 그녀들이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갔다. 하지만 떠난 목적이 나오지 않는다.

가난 때문에 일자리를 찾아갔을 수도 있고, 가족이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고향을 떠났을 수도 있다.

전시 동원이 확대되던 시기

하지만 1944년은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조선의 인적·물적 자원을 대규모로 동원하던 시기였다.

청년 남성들은 징용과 군사동원이 됐고, 여성들도 군수공장 등으로 동원됐다. 특히 여자근로정신대 동원이 강화되면서 어린 여성과 젊은 여성들이 고향을 떠나야 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역시 취업을 시켜준다는 말에 속거나 강압적인 방식으로 동원된 사례가 있었다.

이런 시대적 이유로 ‘고향초’에 나오는 ‘뽕을 따던 아가씨들’이 왜 서울로 갔는지를 추정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노래 가사에는 강제동원이나 일본군 위안부 동원 등을 직접 가리키는 표현은 없다. 그저 서울로 갔다는 이야기밖에 없다.

그럼에도 1944년 노래가 나왔다고 한다면 뽕을 따던 아가씨들이 서울로 가게 된 이유를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녀들은 과연 해방 이후 고향을 찾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