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인터뷰] 세 번의 재난 견딘 후쿠시마 어촌, 체험관광으로 일상을 굽다
쓰나미가 덮친 식당…폐허에서 시작한 재건 15년 어촌의 옛 먹거리 '하마야키', 지역 관광의 무기로 세 번의 재난 이겨내고 관광객 다시 부르는 사람들
[파이낸셜리뷰=조용식 기자] 검은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작은 하트를 만들었다. 밝은 갈색으로 물들인 짧은 머리, 안경 너머의 선한 눈매, 이야기를 이어갈 때마다 움직이는 두 손. 일본 후쿠시마현 소마시 마쓰카와우라에서 만난 스가노 이사오(菅野功)는 자신이 겪어온 재난의 무게를 좀처럼 표정에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화면에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의 사진이 나타나자 그의 목소리와 표정이 달라졌다. 건물 잔해가 뒤엉킨 거리, 진흙으로 뒤덮인 식당, 복구 작업에 나선 사람들. 그가 설명하는 사진에는 15년 전의 시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의 이야기는 식당 하나를 다시 일으킨 성공담에 머물지 않았다. 쓰나미에 생업을 잃고, 복구 작업자들을 위한 숙박시설을 운영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사람들이 떠나자 다시 생존의 문제에 부딪혔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사라져 가던 어촌의 먹거리 문화를 되살렸고, 그 사업이 자리를 잡을 무렵 또다시 지진이 찾아왔다.
그럼에도 그는 마쓰카와우라를 떠나지 않았다. 지난 10일, 일본 후쿠시마의 재건 현장에서 만난 스가노의 이야기는 재난 이후 지역경제가 어떻게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기록이다.
쓰나미가 밀어 넣은 배 두 척, 식당은 폐허가 됐다
마쓰카와우라는 태평양과 맞닿은 후쿠시마현 소마시의 해안 지역이다. 바다와 석호가 만나는 이곳에는 어업과 관광, 숙박업이 함께 발달했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수로를 따라 형성된 해안 풍경과 수산물은 오랫동안 지역의 관광자원이었다.
스가노가 운영하던 숙박시설도 그 해안 가까이에 있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마쓰카와우라를 덮친 것은 지진의 흔들림만이 아니었다. 거대한 쓰나미가 바닷가의 건물과 자동차, 어선까지 휩쓸고 들어왔다.
"바닷물이 거침없이 밀려들더니 순식간에 배 두 척이 창문을 부수고 들어왔습니다."
그가 보여준 사진에는 당시 식당 내부의 참상이 담겨 있었다. 바닥은 진흙으로 뒤덮였고, 바닷물에 섞여 들어온 각종 잔해와 기름 때문에 정상적인 영업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그는 폐업을 선택하지 않았다.
가족과 친척들이 복구에 나섰고, 진흙을 퍼내고 건물을 정리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영업 재개까지 걸린 시간은 약 3개월이었다.
당시 서둘러 숙박시설을 복구한 이유는 일반 관광객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국에서 후쿠시마로 모여든 복구 작업자와 자원봉사자들에게 머물 곳이 필요했다. 도로와 항만, 각종 기반시설을 복구하는 사람들은 매일 현장에서 일했고, 밤이 되면 숙박시설로 돌아왔다. 스가노의 숙소 역시 이들의 거점 가운데 하나가 됐다.
그는 약 3년 동안 쉬지 않고 숙박시설을 운영하며 하루하루 복구 작업을 지원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찾아왔다. 복구 작업이 진행될수록 숙소에 머무는 사람들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지역이 정상화되는 과정이었지만, 복구가 끝나 작업자들이 떠난 자리에 관광객들이 곧바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재난 이후 지역경제가 마주하는 또 다른 위기가 시작된 셈이었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서 찾은 마을의 기억
스가노는 주변에서 숙박업을 운영하던 동료들과 머리를 맞댔다. 모두 같은 문제를 겪고 있었다. 건물을 복구하는 일은 어느 정도 가능했지만, 사람들의 발길까지 되돌리는 일은 훨씬 어려웠다. 그들은 외부에서 유명한 상품을 들여오는 대신, 마을에 원래 있었던 것을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때 떠올린 것이 '하마야키(浜焼き)'였다. 하마야키는 생선과 조개, 오징어 등 해산물을 숯불에 구워 먹는 일본 해안 지역의 음식문화다. 마쓰카와우라에서는 특히 생선을 통째로 꼬치에 꿰어 구워 판매하는 방식이 익숙했다.
"어릴 적에는 해안도로를 따라 20곳 안팎의 노점과 가게에서 하마야키를 팔았습니다. 바닷가를 찾은 여행객들은 숯불에서 구워지는 생선 냄새를 맡으면 꼭 발걸음을 멈추곤 했죠. 생선 한 마리를 사서 먹는 것이 이 마을을 여행하는 즐거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쓰나미가 숙박시설과 음식점을 파괴하면서 이 풍경도 사라졌다. 스가노를 비롯한 지역 숙박업 종사자 4명은 이 음식문화를 되살리기로 했다. 마쓰카와우라 가이드 모임을 중심으로 지역의 오래된 맛을 복원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당시의 조리법을 기억하는 부모 세대에게 생선에 꼬치를 꽂는 방법과 숯불을 다루는 기술, 양념장 제조법 등을 물었다. 소마시 관광협회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시작된 '하마야키 부활 프로젝트'는 단순한 상품 개발이 아니라 지진 이후 10년 동안 사라졌던 지역의 먹거리 풍경 자체를 되살리는 데 목적을 뒀다.
"마을 주민분들의 지지와 언론의 협조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기 힘들었을 겁니다."
처음에는 행사 형태로 시작했지만, 마쓰카와우라의 하마야키가 알려지면서 지역을 찾는 방문객들도 생겨났다. 숯불 위에 놓인 생선 한 마리가 무너진 지역 관광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매개체가 된 것이다.
2021년과 2022년, 다시 무너진 숙박시설
어렵게 관광객의 발길을 되돌리기 시작했지만 재난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2021년 2월 후쿠시마현 앞바다에서 강한 지진이 발생했고, 이듬해인 2022년 3월 16일에도 규모 7.4의 지진이 발생했다. 소마시에서는 최대 진도 6강이 관측됐다.
스가노의 숙박시설도 큰 피해를 입었다. 특히 2022년 지진으로 건물이 대규모 반파되면서 영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이미 2011년 쓰나미 피해를 복구한 뒤 다시 관광객을 맞기 위해 노력하던 시점이었다.
전년도에 이어 또다시 강진이 발생하자 업계 전체가 침체에 빠졌다. 실제로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22년 지진 이후 2년이 지난 시점에도 마쓰카와우라 일대 숙박시설의 약 4분의 1이 영업을 재개하지 못한 상태였다. 스가노 역시 폐업을 고민했지만 결국 건물을 새로 짓기로 결정했다.
그의 고민은 개인 사업의 존폐에만 머물지 않았다. 숙박시설이 사라지면 지역에 머무는 관광객이 줄어들고, 이는 음식점과 상점,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주민들에게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숙박업의 붕괴는 지역 관광산업 전체의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었다.
그는 지역 동료들과 다시 하마야키 행사를 준비했다. 2022년 4월 29일부터 5월 8일까지 열흘 동안 이어진 행사였다. 지진으로 영업을 중단한 숙박시설들이 많았지만, 오히려 그런 위기 상황에서 관광객을 맞는 행사를 개최한 것이다. 소마시 공식 기록에 따르면 행사는 숙박업 종사자들로 구성된 마쓰카와우라 가이드 모임이 주최했으며, 지역의 해산물을 숯불에 구워 판매했다.
행사장을 찾은 방문객 가운데에는 재난을 겪은 주민들을 응원하기 위해 먼 길을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때 하마야키를 사기 위해 무려 1시간 40분이나 기다려 주신 손님이 계셨습니다. 그때 다시 확신했죠. 우리가 무너지지 않고 재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입니다.“
생선을 파는 곳에서 추억을 만드는 곳으로
2024년 8월, 스가노는 새로 지은 숙박시설 '유가쿠노야도 이사미야(遊学の宿いさみや)'에서 다시 손님을 맞기 시작했다. 4대 대표인 그는 대규모 반파 피해를 입었던 기존 건물을 재건축하고, 전용 목욕시설과 하마야키를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단순히 무너진 건물을 원상복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광객들이 머무르며 지역을 경험할 수 있도록 숙박시설의 기능을 바꾼 것이다.
그가 최근 주목하는 것은 체험관광이다.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파는 것만으로는 관광객의 발길을 오래 붙잡을 수 없습니다. 맛집은 일본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마쓰카와우라에서만 할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경험'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가 동료들과 개발한 프로그램은 지역의 자연환경과 생활문화를 활용한다. 방문객이 직접 낚싯대를 만들어 낚시를 하거나,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해를 감상하고, 지역 농산물로 피자를 만드는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다. 하마야키 역시 완성된 음식을 구매하는 데서 벗어나 직접 생선에 꼬치를 꽂고 숯불에 굽는 체험으로 확장됐다.
현재 후쿠시마 관광 캠페인 공식 홈페이지에도 하마야키 체험이 90~180분 코스의 연중 운영 프로그램으로 소개돼 있다. 지역의 오래된 음식문화가 관광상품이 되고, 그 상품을 경험하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숙박과 음식 소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관광객을 기다리는 대신 찾아올 이유를 만든다
이날 현장에서 맛본 음식에는 생선구이와 오징어구이, 회, 해산물밥 등이 차려졌다. 숯불에 구운 생선은 마쓰카와우라의 전통적인 식문화를 보여줬고, 해산물밥과 회는 이 지역이 가진 수산물 관광자원의 성격을 여실히 드러냈다.
스가노는 후쿠시마산 수산물의 안전성에 관한 질문에도 답했다. 일본의 식품 방사성물질 기준과 후쿠시마 지역의 검사체계를 설명하면서, 소비자들이 검사와 유통 과정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수산물 안전에 대한 신뢰는 사업자의 설명만으로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 공개된 검사 결과와 당국의 지속적인 관리에 달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날 인터뷰에서 스가노가 거듭 강조한 것은 지역을 알리는 일이었다.
"제가 방송에 나가거나 언론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하는 것은 제 숙소를 홍보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마쓰카와우라라는 지역이 아직 살아있고, 언제든 다시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지역이 알려지고 사람들이 찾아오면 그 효과는 한 사람에게만 돌아가지 않는다. 숙박업과 음식점, 체험관광을 운영하는 이웃들이 함께 관광객을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가 말하는 재건은 건물을 다시 세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찾아오고, 음식을 먹고, 하루를 머무르며 지역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이 돌아와야 비로소 관광지로서의 온전한 회복이 가능하다.
스가노가 보여준 마지막 사진에는 하마야키 행사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있었다. 앞치마를 두른 네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한 사람이 홀로 이룬 성공이 아니라 같은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이 함께 연대해 만들어낸 결과라는 점을 시사했다.
2011년 쓰나미가 식당 안으로 배 두 척을 밀어 넣었던 자리에서 시작된 재건의 시간은 2026년 가을에도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마쓰카와우라의 해안에는 다시 숯불이 피어오르고 있다. 생선을 굽는 연기 너머로 손님을 맞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15년 전 바닷물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 스가노가 되찾으려 했던 것은 단순히 식당의 매출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다시 만나고, 머무르고, 살아갈 수 있는 마을의 일상이었다. 그가 다시 피운 숯불은 지금도 꺼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