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0월 22일 케네디, 쿠바 해상 봉쇄 선언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62년 10월 22일은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쿠바에 배치된 소련의 핵미사일 기지를 전격 공개하고 해상 봉쇄 방침을 선언한 날이다. 미국과 소련의 군사적 대립이 핵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공포가 전 세계를 뒤덮은 순간이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이날 오후 7시(미국 동부시간) TV 연설을 통해 소련이 쿠바에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쿠바는 미국 플로리다 해안에서 불과 150여㎞ 떨어진 곳이었다.
케네디는 소련에 미사일 철수를 요구하면서 쿠바로 향하는 공격용 군사장비의 반입을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쿠바에서 서반구 국가를 향해 핵미사일이 발사될 경우 이를 소련의 미국 공격으로 간주하고 보복하겠다고 경고했다.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를 앞세워 정면으로 대치하는 이른바 '쿠바 미사일 위기'가 국제사회에 공개된 것이다.
미국 코앞에 핵미사일 배치한 소련
쿠바 미사일 위기의 배경에는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주도한 쿠바 혁명이 있었다. 친미 성향의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린 카스트로 정부가 미국 기업의 자산을 국유화하자 미국은 경제제재와 정권 전복 공작으로 대응했다. 1961년 4월에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받은 쿠바 망명자들이 피그스만 침공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미국의 재침공을 우려한 쿠바는 소련과 군사적 협력을 강화했다.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도 쿠바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당시 미국은 소련보다 우세한 전략핵전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소련과 가까운 터키에도 핵미사일을 배치하고 있었다.
흐루쇼프는 쿠바에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하면 미국 본토를 직접 위협하면서 양국의 군사적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동시에 카스트로 정권에 대한 미국의 군사행동을 억제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소련의 계획은 미국 정찰기에 포착됐다. 10월 14일 쿠바 상공을 비행한 미국의 U-2 정찰기가 미사일 기지 건설 현장을 촬영했고, 이틀 뒤 케네디 대통령에게 관련 사실이 보고됐다.
공습 대신 해상 봉쇄 선택한 케네디
미국 정부 내부에서는 쿠바의 미사일 기지를 즉각 폭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군 수뇌부는 공습뿐 아니라 지상군 침공까지 검토했다. 그러나 케네디는 군사적 충돌이 걷잡을 수 없는 핵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미국이 공습을 단행하더라도 소련의 핵미사일을 모두 파괴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소련이 쿠바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서베를린에서 군사행동을 벌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웠다.
결국 케네디는 직접적인 공격 대신 해상 격리를 통해 소련을 압박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미국은 국제법상 전쟁행위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봉쇄' 대신 '격리'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실제 해상 격리 조치는 발표 이틀 뒤인 10월 24일 오전 10시부터 발효됐다.
이러한 결정에는 소련에 미사일 철수를 요구하면서도 협상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작용했다.
핵전쟁 직전까지 치달은 13일
케네디의 발표 이후 미국과 소련의 대립은 더욱 격화됐다. 미국 해군이 쿠바 주변 해역에 배치됐고 소련 선박의 접근 여부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됐다.
10월 26일 흐루쇼프는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핵미사일을 철수할 수 있다는 제안을 전달했다.
그러나 다음 날에는 미국이 터키에 배치한 주피터 핵미사일도 철수해야 한다는 조건을 추가했다. 같은 날 쿠바 상공에서는 미국의 U-2 정찰기가 격추돼 조종사가 사망했다. 소련 잠수함 B-59에서는 미국 해군의 신호용 폭발물을 실제 공격으로 오인할 위험이 발생하면서 핵어뢰 사용을 둘러싼 긴박한 상황까지 벌어졌다.
핵전쟁의 위험이 극도로 높아진 순간이었다.
미국도 터키 핵미사일 철수
결국 양국은 공개적인 군사적 압박과 별도로 비밀 협상을 진행했다. 10월 27일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은 아나톨리 도브리닌 주미 소련 대사와 만나 타협안을 논의했다.
미국은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터키에 배치한 주피터 핵미사일도 비공개로 철수하기로 했다. 대신 소련은 쿠바의 핵미사일을 철거하기로 했다.
이튿날인 10월 28일 흐루쇼프가 미사일 철수를 발표하면서 핵전쟁 위기는 진정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터키 주피터 미사일은 이듬해 철수했다.
당시 공개된 결과만 보면 소련이 미국의 압박에 굴복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양국 모두 일정한 양보를 통해 타협한 것이었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이후 미국과 소련 사이에 긴급 직통 통신망이 설치되고 1963년 부분적 핵실험금지조약이 체결되는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