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0월 23일 헝가리 혁명 발발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56년 10월 23일은 헝가리 혁명이 발발한 날이다. 이날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소련의 정치적 간섭과 공산당 독재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대학생들의 평화적인 집회로 시작된 시위는 시민과 노동자들이 합류하면서 전국적인 반소련 혁명으로 확대됐다.
당시 헝가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영향권에 편입돼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가 수립된 상태였다. 마차시 라코시 정권은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하고 소련식 경제정책을 추진하면서 국민들의 불만을 키웠다.
특히 무리한 중공업 육성과 농업 집단화 정책은 생활수준 악화로 이어졌다. 정치적 자유의 제한과 경제적 어려움이 겹치면서 사회 전반에 변화 요구가 확산됐다.
스탈린 사망 이후 확산된 개혁 요구
1953년 소련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사망하면서 동유럽 공산권에도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1956년 2월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제1서기가 스탈린의 개인숭배와 정치적 숙청을 비판하면서 헝가리에서도 민주화와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같은 해 폴란드에서 발생한 반정부 시위와 정치적 변화 역시 헝가리 시민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날 부다페스트 대학생들은 소련군 철수와 언론 자유, 자유선거 실시, 개혁파 정치인 너지 임레의 총리 복귀 등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시위 규모가 급격히 확대되는 가운데 시민들은 소련 지배의 상징이었던 스탈린 동상을 철거했다. 이후 국영 라디오 방송국 앞에서 시위대와 보안당국 사이에 총격이 발생하면서 평화적인 시위는 무장봉기로 전환됐다.
헝가리 공산당 지도부는 사태를 통제하기 위해 소련에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다. 10월 24일 소련군 탱크가 부다페스트에 진입했지만 시민들의 저항은 오히려 거세졌다. 일부 헝가리 군인들이 봉기에 가담하면서 수도 곳곳에서 소련군과 혁명세력 간 시가전이 벌어졌다.
사태가 악화되자 총리로 복귀한 너지 임레는 휴전과 정치개혁을 추진했다. 정치경찰 해체와 다당제 복원 방침을 밝히고 소련군 철수를 요구하면서 혁명은 성공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11월 1일 헝가리가 바르샤바조약기구 탈퇴와 중립국화를 선언하자 소련 지도부는 군사적 개입을 결정했다.
11월 4일 소련군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헝가리 전역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압도적인 군사력 앞에 혁명세력의 저항은 결국 진압됐다.
혁명 과정에서 헝가리인 약 25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약 20만 명이 국외로 탈출했다. 너지 임레는 체포된 뒤 1958년 처형됐다.
33년 뒤 같은 날 공화국 선포
헝가리 혁명은 군사적으로 실패했지만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남았다. 특히 소련이 동유럽 국가들의 정치적 자율성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소련의 군사개입을 비판했지만 냉전 체제에서 미소 간 직접적인 군사충돌로 확대될 가능성을 우려해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이후 헝가리는 소련의 영향권에 남았으나 1980년대 후반 동유럽 민주화와 함께 정치체제 전환을 추진했다. 1989년 10월 23일 헝가리는 1956년 혁명 발생 33주년을 맞아 공화국을 선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