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1월 3일 파나마 독립 선언

2026-11-03     어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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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03년 11월 3일은 파나마 독립 선언한 날이다. 물론 그 배후에는 미국의 운하 건설 계획이 있었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운하를 확보하려는 미국의 이해관계가 파나마 독립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남아메리카를 돌아가야 했던 선박들

19세기까지 대서양과 태평양을 오가기 위해서는 남아메리카 남단 ‘케이프혼’을 우회해야 했다. 미국 동부와 서부로 향하는 선박들도 마찬가지였기에 막대한 시간과 운송비용이 발생했다.

무엇보다 미국은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대서양과 태평양으로 빠르게 물류를 이동시켜야 하는 수단이 필요하게 됐다.

이에 주목한 것이 바로 파나마였다. 파나마 운하는 프랑스가 추진을 하고 있었다. 수에즈운하 건설을 이끌었던 페르디낭 드 레셉스는 1881년 파나마에서도 운하 건설에 착수했다.

하지만 파나마의 험준한 지형과 열대성 질병, 막대한 공사비가 발목을 잡았다. 말라리아와 황열병 등으로 수많은 노동자가 사망했고, 사업은 결국 재정적 파탄을 맞았다.

프랑스의 운하 건설 시도가 실패한 이후 미국이 사업을 이어받으려 했다. 문제는 파나마가 콜롬비아 영토였다는 점이다. 이에 미국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콜롬비아로부터 파나마 운하 권리를 확보하려고 했지만 콜롬비아 상원은 자국의 주권과 경제적 이익 등을 이유로 조약의 비준을 거부했다.

파나마 분리독립 움직임 주목

이에 미국은 파나마 분리독립 움직임에 주목했다. 파나마 지역은 콜롬비아 중앙정부에 대한 불만이 상당히 쌓여갔고, 미국은 파나마 분리독립을 지원했다. 그리고 마침내 1903년 11월 3일 파나마는 독립 선언했다.

미국은 해군력을 동원해 콜롬비아 정부군의 대응을 제약했고, 독립 선언 사흘 뒤인 11월 6일 파나마를 승인했다.

독립 이후 미국은 파나마와 새로운 운하 협정을 체결했는데 이것이 11월 18일 체결한 헤이·뷔노바리야 조약이다. 이 조약에 따라 미국은 운하 건설과 운영에 필요한 광범위한 권리를 확보했다.

파나마는 독립국가가 됐지만, 운하가 들어설 지역에 대해서는 미국이 사실상 지배권을 행사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듬해 미국은 1904년 파나마운하 건설을 착수했고, 미국은 위생사업과 방역을 강화하면서 질병으로부터 점차 벗어나게 됐고, 지형 문제는 수위 차이를 이용하는 갑문식 운하로 건설했다.

이에 1914년 8월 15일 파나마운하가 공식 개통됐다. 운하 개통으로 대서양과 태평양을 오가는 선박들은 남아메리카 남단을 우회하지 않아도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