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속 경제리뷰] 윌리엄 호가스 ‘결혼 계약’, 귀족과 상인은 왜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결혼은 두 사람의 사랑으로 이뤄진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20세기초기만 해도 결혼은 집안과 집안의 계약이었다. 그것은 가문의 재산을 지키고 사회적 지위를 높이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영국 화가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는 이러한 현실을 그림으로 풍자했다. 1740년대 제작한 6점의 연작 ‘유행에 따른 결혼(Marriage A-la-Mode)’은 사랑 없는 정략결혼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결국 어떤 파국을 맞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첫 번째 작품인 ‘결혼 계약(The Marriage Settlement)’에는 당시 영국 사회의 계급 구조와 경제적 이해관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귀족 가문과 부유한 상인, 자녀들 결혼 협상
작품 속에서 귀족과 상인은 자녀들의 결혼을 협상하고 있다. 하지만 결혼 당사자인 젊은 남녀는 서로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남자는 거울을 바라보고 있고, 여자는 다른 남성이 건네는 말을 듣고 있다. 이는 결혼을 결정하는 것은 당사자들이 아니라 부모 세대가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귀족은 자신의 가문과 혈통을 과시하고, 상인은 결혼을 통해 귀족사회에 진입할 기회를 얻고자 하는 표정과 자세가 보인다.
18세기 영국은 상업과 금융, 해외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부유했지만 오랜 혈통과 토지 소유를 바탕으로 한 귀족사회의 위계질서에 편입되는 것은 어려웠다.
반대로 일부 귀족 가문은 화려한 생활과 막대한 지출, 부채 등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돈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상인 가문과 귀족 가문이 절충점으로 찾은 것이 바로 ‘결혼’이다. 부유한 상인은 딸을 귀족 가문에 시집 보내게 되면 상인 집안은 귀족에 편입하게 되고, 귀족 가문은 혼인을 통해 유입되는 지참금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혼인 계약서는 과연
호가스는 ‘결혼계약’ 작품에서 혼인의 경제적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귀족은 자신의 혈통을 증명하는 가계도를 내세우고, 상인은 돈과 금융 관련 서류를 꺼낸다.
또한 창밖에는 건축 중인 저택이 보이는데 귀족이 유지하려는 화려한 생활과 그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을 암시한다.
결혼을 결정하는 부모들은 정작 진지한 협상을 하고 있지만 당사자들인 남성과 여성은 서로에 대해 무관심하다. 그저 부모에 의해 마지못해 끌려온 사람들로 묘사된다.
호가스는 이러한 구도를 통해 당시 상류층의 혼인이 개인의 선택보다 가문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현실을 비판했다.
호가스의 작품은 영국 사회에서 경제적 부와 사회적 지위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을 결혼을 통해 해소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