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0월 28일 금주법 제정, 재즈와 우유는 왜 등장하나

2026-10-28     어기선 기자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19년 10월 28일은 미국 의회가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효화하고 볼스테드법을 제정한 날이다. 술의 제조와 판매 등을 금지한 수정헌법 제18조를 실제로 집행하기 위한 법률이었다. 이른바 ‘금주법’이다.

금주운동을 지지한 이들은 술이 사라지면 가정폭력과 빈곤, 범죄 같은 사회문제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술을 마시려는 수요는 없어지지 않았고, 합법적인 술집과 양조장이 물러난 자리에는 밀주업자와 불법 술집이 들어섰다.

금주법은 미국 사회의 음주를 줄이는 효과를 냈지만, 동시에 불법 주류 시장을 둘러싼 범죄와 부패를 키웠다. 사회를 술의 피해에서 보호하려던 정책이 새로운 문제를 낳은 것이다.

가정폭력과 빈곤에서 출발한 금주운동

미국에서 술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19세기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당시 음주는 개인의 기호를 넘어 가정의 생계와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로 받아들여졌다.

임금을 술값으로 써버리거나 술에 취해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여성들은 금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쉽지 않았던 여성들에게 남편의 음주 문제는 본인과 자녀의 생존이 걸린 일이기도 했다.

종교단체와 사회개혁가들도 금주를 주장했다. 이들은 술이 가정을 무너뜨리고 사회의 도덕을 해친다고 봤다. 기업인 가운데서는 노동자의 결근과 산업재해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이유로 음주 규제를 지지하는 이들도 있었다.

술집은 노동자들이 사람을 만나고 여가를 보내는 공간이었지만, 금주운동 진영에는 임금이 낭비되고 폭력과 도박이 벌어지는 장소로 비쳤다. 술집과 지방 정치가 유착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금주운동은 처음부터 미국 전역을 겨냥하지 않았다. 지역과 주 단위에서 술의 제조와 판매를 제한하는 조치가 먼저 확산했고, 이후 전국적인 금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대통령 거부권 넘어선 볼스테드법

미국 의회는 1917년 금주를 위한 헌법 수정안을 각 주에 보냈다. 1919년 1월 필요한 수의 주가 이를 비준하면서 수정헌법 제18조가 성립됐다.

수정헌법 제18조는 음료용 주류의 제조·판매·운송과 수입·수출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미국의 금주정책이 일반 법률을 넘어 헌법에 명시된 것이다.

같은 해 10월 28일 제정된 볼스테드법은 이 헌법 규정을 집행하기 위한 세부 기준을 마련했다. 윌슨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의회가 이를 다시 통과시켰다. 전국적인 금주 조치는 1920년 1월 17일 시작됐다.

다만 ‘금주법’이라는 이름과 달리 개인이 술을 마시거나 소유하는 행위 자체가 연방 차원에서 일률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었다. 법의 주요 대상은 음료용 주류의 제조와 판매, 운송 등이었다. 의료용과 종교용 주류 등에는 일정한 예외도 뒀다.

초기에는 법의 효과가 나타났다. 술을 쉽게 구하기 어려워지고 가격도 오르면서 음주량이 감소했다. 음주와 관련된 일부 사회문제도 줄어든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술을 원하는 사람까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금지 조치가 이어지는 동안 합법적인 공급을 대신할 불법 유통망이 만들어졌다.

사라진 합법 술집, 늘어난 불법 술집

금주법 시행 후 미국에서는 몰래 만든 술이나 해외에서 밀수한 술이 거래됐다. 술을 불법으로 제조하거나 운반해 판매하는 밀주업자들이 등장했고, 은밀하게 손님을 받는 술집도 확산했다.

이른바 ‘스피크이지’로 불린 불법 술집에서는 단속을 피해 술을 팔았다. 겉으로는 평범한 건물처럼 보이지만 안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음악을 즐기는 곳들이 생겨났다.

술을 구하는 데 위험이 따르자 가격은 높아졌다. 그만큼 불법 공급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도 커졌다. 정부가 합법적인 술의 생산과 판매를 막았지만, 수요가 남아 있는 한 술을 공급해 돈을 벌려는 사람들 역시 나타난 것이다.

불법 술의 안전성은 또 다른 문제였다. 제조 과정과 성분을 제대로 관리하기 어려웠고, 사람이 마시기에 위험한 술이 유통되면서 건강 피해가 발생했다. 음주의 폐해를 줄이려던 정책이 관리되지 않는 술로 인한 위험을 낳은 셈이다.

미국의 넓은 영토와 긴 해안선도 단속을 어렵게 했다. 지역마다 금주법에 대한 지지와 집행 의지가 달랐고, 불법 영업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 부패도 문제가 됐다.

밀주 시장을 장악한 조직범죄

불법 주류 시장은 기존 범죄조직에 새로운 수익원이 됐다. 술을 확보하고 운반해 불법 술집에 공급하는 과정이 거대한 사업으로 성장했다.

시카고에서 활동한 알 카포네는 금주법 시대를 상징하는 범죄조직 지도자다. 그의 조직은 불법 주류 유통을 비롯한 사업을 통해 돈과 세력을 축적했다.

불법 시장에서는 경쟁도 법의 보호 밖에서 이뤄졌다. 조직들은 술을 팔 지역과 거래처를 놓고 다퉜고, 이 과정에서 협박과 폭력이 벌어졌다. 경찰과 공무원을 매수해 단속을 피하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1929년 시카고에서 경쟁 범죄조직과 관련된 인물 7명이 총격으로 숨진 ‘성 밸런타인데이 학살’은 당시 조직 간 폭력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남았다. 카포네 조직과의 연관성이 거론됐지만, 카포네가 이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아니다.

금주법이 미국의 조직범죄를 처음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범죄조직은 이전에도 존재했다. 다만 금주법은 이들에게 불법 술이라는 새로운 사업 기회를 제공했고, 일부 조직이 이를 바탕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카포네는 1931년 연방 소득세 탈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금주법이 끝나기 전인 이듬해부터 복역했다.

1933년 막 내린 금주법

금주 조치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술은 불법 시장을 통해 유통됐다. 단속을 강화해도 밀주와 술집이 사라지지 않자 법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이 커졌다.

1929년 대공황은 금주법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실업자가 늘고 정부 재정이 어려워지면서 술을 다시 합법화해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을 거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술을 합법적인 시장으로 돌려놓으면 불법 유통업자들이 차지한 수익을 줄이고 양조장과 주류 판매업의 영업도 회복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여기에 단속 과정의 부패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반발도 더해졌다.

1933년 미국은 일정 도수 이하의 맥주와 와인 판매를 먼저 허용했다. 이어 같은 해 12월 5일 수정헌법 제21조가 비준되면서 금주를 규정한 수정헌법 제18조가 폐지됐다. 전국적인 금주 조치는 약 13년 만에 막을 내렸다.

금주법의 효과를 한마디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시행 초기 음주량을 줄였다는 성과가 있었지만, 술을 원하는 수요를 없애지는 못했다. 오히려 불법 주류 시장과 이를 둘러싼 폭력·부패가 성장하면서 법의 목적과 다른 결과도 나타났다.

금주법 시대의 불법 술집은 재즈가 연주되고 확산하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또한 알 카포네 일가가 우유 사업과 날짜 표시에 관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