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시마 ③] 신나오시마미술관, 아시아 현대미술의 새로운 무대

2025년 개관한 안도 다다오의 열 번째 예술 건축…나오시마의 새로운 변화 무라카미 다카시·서도호·차이궈창의 작품에서 아시아 현대미술의 질문을 만나다 명상과 치유를 넘어,동시대 사회와 역사를 마주하는 예술섬의 진화

2026-10-29     조용식 기자
신나오시마미술관

[파이낸셜리뷰=조용식 기자] 일본 나오시마의 혼무라 마을을 지나 언덕으로 올라가면 단정한 회색 콘크리트 건물이 숲과 마주한다. 건물은 결코 주변의 나무보다 높이 솟아오르지 않는다. 비탈진 지형을 따라 이어지는 긴 진입로와 낮은 벽, 건물 뒤로 안은 숲이 거스름 없이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안도 다다오, 열 번째 건축에 담은 변화

2025년 5월 31일 개관한 신나오시마미술관(Naoshima New Museum of Art)이다. 안도 다다오가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에 설계한 열 번째 예술 건축으로, 지상 1층과 지하 2층에 걸쳐 아시아 현대미술의 굵직한 질문들을 전시한다.

언덕
2025년

지추미술관이 제한된 작품과 극적인 자연광을 통해 개인의 감각을 되돌아보게 했다면, 신나오시마미술관은 현대사회와 역사, 집단과 개인, 기억과 이주라는 묵직한 화두를 전시장 한가운데로 끌어들인다

미술관은 개관 이후 전시 내용을 부분적으로 교체하며, 일본뿐 아니라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 지역 작가들의 시각을 폭넓게 소개하고 있다. 관람객에게는 나오시마를 다시 찾아야 할 또 하나의 강력한 이유가 생긴 셈이다.

미술관 입구로 이어지는 길,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안도 다다오 특유의 노출콘크리트다. 그러나 건축의 표정은 지추미술관과 확연히 다르다.

건물 대부분을 지하에 완전히 숨겼던 과거와 달리, 신나오시마미술관은 주변 마을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았다. 외관에는 나오시마 혼무라 마을 특유의 검은 목조 외벽을 연상시키는 마감재와 정교하게 쌓아 올린 돌담이 사용됐다. 오랜 역사를 지닌 마을의 건축적 특징을 현대미술관의 뼈대에 이식한 것이다.

신나오시마미술관

내부로 들어서면 천창을 통해 쏟아지는 자연광이 관람객을 지하 전시실로 이끈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바깥 풍경은 차단되고,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네 개의 거대한 전시실이 나타난다. 반대로 지상 1층의 카페 공간에서는 세토내해와 데시마 방향의 평온한 바다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건축은 작품을 품는 단단한 그릇인 동시에, 나오시마의 과거(마을)와 현재(아시아 현대미술)를 잇는 정교한 통로로 기능한다.

무라카미 다카시, 옛 교토에 현대의 꽃을 피우다

전시실에서 시선을 압도하는 첫 번째 작품은 무라카미 다카시의 대형 회화다. 벽면을 길게 채운 금빛 화면 위로 옛 교토의 화려한 사찰과 거리, 사람들의 부산한 일상이 빈틈없이 펼쳐진다.

전시실
무라카미

이 작품은 과거 교토의 풍경을 밀도 있게 기록한 일본 전통 회화 《라쿠추라쿠가이즈(洛中洛外図)》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대작이다. 그러나 캔버스 가까이 다가가면 낯선 파격이 등장한다. 옛 건축물 사이로 무라카미 특유의 만화적인 캐릭터들이 활짝 웃고 있다.

고전적인 풍경과 어울리지 않을 법한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전통의 색채 속에 절묘하게 스며든다. 과거의 형식을 빌려 현대 대중문화의 유전자를 각인시킨 이 작품 앞에서, 관람객들은 물러서서 거대한 도시를 조망하다가도 이내 바짝 다가서서 만화적 요소를 찾는 낯선 쾌감을 경험한다.

서도호의 집, 사람이 떠난 공간에는 무엇이 남는가

이어지는 공간에서는 현재 한국에서도 성황리에 전시가 진행 중이어서 우리에게 더욱 반가운 한국 출신 작가 서도호의 설치작업을 마주하게 된다. 연한 청록색, 노란색, 분홍색의 반투명한 천으로 지어진 집과 복도의 구조물이 전시실 안에 연속적으로 서 있다.

한국

서도호는 집과 이주, 기억과 정체성을 오랫동안 탐구해 온 작가다. 신나오시마미술관에 설치된 8점의 'Hub(허브)' 연작은 작가가 서울, 뉴욕, 런던, 베를린 등 세계 각지에서 머물렀던 공간들과 나오시마의 어느 주택 복도를 하나로 연결해 낸 얇고 정교한 천 구조물이다.

관람객은 이 반투명한 천의 공간 안으로 직접 걸어 들어갈 수 있다. 여러 겹의 문을 차례로 통과하다 보면, 끊임없이 장소를 이동하면서도 과거의 공간적 기억을 고스란히 입고 살아가는 인간의 이주 본능을 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박영신 도슨트는 "이곳의 벽은 공간을 나누지만 시선을 완전히 차단하지는 않습니다. 과거에 머물렀던 공간과 현재의 공간이 투명하게 겹쳐 보이는 경험이죠. 외부에서 조형물로만 바라보지 말고, 겹겹의 문을 직접 통과하며 스스로가 가진 이주와 기억의 감각을 일깨워 보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차이궈창, 99마리 늑대는 왜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가

중국 출신 작가 차이궈창의 《Head On》(2006)은 신나오시마미술관에서 가장 압도적이면서도 관람객의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서늘하고 무거운 감정을 남기는 작품이다.

넓은 전시실에 99마리의 늑대 무리가 맹렬한 기세로 허공을 가르며 질주한다. 바닥에서 몸을 웅크리며 도약한 늑대들은 점차 고도를 높이며 거대한 포물선을 그리지만, 그 폭발적인 에너지가 향하는 끝에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유리벽이 버티고 있다. 늑대들은 주저 없이 벽에 부딪혀 곤두박질치면서도, 뒤따르는 무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용돌이치듯 질주와 충돌을 끝없이 반복한다.

현장에 비치된 도록에 따르면, 늑대들이 부딪히는 이 투명한 벽은 사람과 공동체 사이에 존재하는 무형의 이데올로기적·문화적 장벽을 상징한다.

강한 연대감을 본능으로 삼는 늑대 무리의 맹목적인 돌진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향한 인류의 위험한 맹종과 역사 속에서 끔찍한 실패를 되풀이하는 우리의 씁쓸한 자화상을 직설적으로 찌른다. 관람객은 늑대의 궤적을 따라 걸으며 생동감 넘치는 역동성에 감탄하다가, 이내 그 궤적이 박살 나는 파국의 끝에서 형언할 수 없는 묵직한 질문과 경고를 짊어지게 된다.

아시아 현대미술이 던지는 또 다른 질문들

동남아시아 작가들의 시선도 날카롭다. 인도네시아 작가 헤리 도노는 전통 인형극을 차용해 기괴한 천사 형상의 조형물을 공중에 매달아 놓았다. 해학적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던 시절의 복잡한 정치적 굴절이 담겨 있다.

전시실

태국 작가 판나판 요드마니의 작품은 파괴된 콘크리트 잔해와 불교적 조형물이 뒤엉킨 형태다. 앙상한 철근과 화려한 전통 문양이 결합한 폐허의 풍경은 개발과 파괴, 세속과 종교가 충돌하며 순환하는 아시아의 카르마를 묵시록처럼 묘사한다.

김대동 황등아트앤컬처 총감독은 "나오시마가 문화예술 관광도시 재생의 교과서로 불리는 진짜 이유는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외딴 자연 속에 고립되지 않고 주민들의 삶터인 혼무라 마을 언덕에 새 미술관을 지어 일상과의 접점을 넓혔죠. 게다가 서구권 중심의 현대미술을 넘어 동시대 아시아의 치열한 사회적 담론까지 끌어안았습니다. 문화가 어떻게 인간의 삶과 지역을 끊임없이 진화시키는지, 이 미술관이 다시 한번 훌륭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지하 전시실의 치열한 담론들을 뒤로하고 지상 1층 카페로 올라오면 다시금 고요한 세토내해의 바다 풍경이 펼쳐진다. 무라카미 다카시가 비틀어 낸 전통, 서도호가 투영한 이주의 기억, 차이궈창이 경고한 집단의 맹목성까지. 이 작품들은 결코 정답을 쥐여주지 않는다. 대신 여행자 스스로가 자신과 사회를 향해 날 선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아름다운 자연을 걷다 불현듯 동시대의 묵직한 화두를 마주하게 되는 곳. 신나오시마미술관은 예술섬 나오시마가 멈춰 있지 않고 또 다른 차원으로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음을 알리는 가장 찬란하고 도발적인 선언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