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에야 보이는 것들] 27. 아침 저녁은 웰빙 음식으로 맛내기

2026-11-04     김 식 수필가

[파이낸셜리뷰] 회사를 다니던 시절의 아침은 늘 허겁지겁이었다. 알람 소리에 화들짝 놀라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출근 준비와 시간에 대한 압박이었다. 아침밥은 늘 우유 한 잔, 빵 조각, 혹은 미숫가루 한 잔으로 때우기 일쑤였다. ‘굶는 게 낫다’ 싶을 때는 그냥 커피 한 잔으로 속을 달래고 회사로 향했다. 저녁 역시 다르지 않았다. 업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지인들과 술자리를 자주 가졌고, 기름진 안주가 곁들여지며 몸은 점점 무거워졌다.

​그러나 퇴사 후 삶의 리듬이 바뀌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이 바로 식습관이었다. 더 이상 아침에 쫓길 이유도, 늦은 술자리에 얽매일 필요도 없었다.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해방감은 자연스레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만들었다. 아침과 저녁을 직접 준비하고, 신선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면서 ‘먹는 일’이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삶을 즐기는 중요한 의식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웰빙 음식은 단순히 건강을 챙기는 수단이 아니라 나의 하루를 기분 좋게 여는 시그널이자 저녁의 피로를 다독이는 위로였다. 이제는 아침마다 냉장고 속 신선한 채소와 달걀, 곡물 빵을 꺼내며 어떤 음식을 차릴지 고민하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순간이 되었다.

​아침은 하루의 컨디션을 결정한다. 예전에는 아침을 건너뛰고 카페인으로만 버텼지만 지금은 오히려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오후까지 활력이 이어진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득했다. 주로 오트밀에 제철 과일을 얹거나 현미밥에 나물 몇 가지를 곁들여 간단히 차린다. 기름기를 줄이고 섬유질을 늘린 식단은 위장을 편안하게 하고, 머릿속도 맑아지게 만든다.

​아침에 신선한 과일을 씹을 때마다 느끼는 건 단순한 맛이 아니라 심리적 안정감이다. 달콤한 사과 한 조각, 새콤한 귤 하나가 ‘오늘 하루도 괜찮을 거야’라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에는 이런 작은 호사를 스스로 허락하지 않았다. 늘 성과와 일정에 매달리며 몸은 뒷전이었고, 식사는 에너지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버티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

​지금은 아침 식탁을 차리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명상처럼 다가온다. 불을 켜고, 냄비에 물을 올리고, 야채를 다듬는 과정이 차분한 리듬을 만든다. 그 과정에서 마음도 정돈되고 ‘내가 나를 챙기고 있구나’라는 자기 긍정의 감각이 생긴다. 작은 건강 습관의 누적이 몸을 바꾸고, 마음을 바꾸며, 결국 삶을 바꾸어 놓는 것이다.

​퇴사 전 저녁은 술잔이 빠지지 않았다. 회식, 접대, 혹은 동료들과의 푸념 자리가 일상처럼 이어졌다. ‘먹는 즐거움’보다는 ‘풀어내는 해소’에 가까웠다. 하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속쓰림과 피곤함, 그리고 아침의 무기력이었다.

​이제 저녁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가장 큰 변화는 아내와 함께 식탁을 공유하는 시간이다. 함께 장을 보고, 손질한 재료로 소박한 반찬을 만들고,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가지나 두부로 만든 구이, 들깨로 맛을 낸 버섯탕, 올리브유에 살짝 볶은 채소 요리가 자리를 채운다.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 대신 심플하고 건강한 음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대화도 깊어진다.

​식탁에 앉아 오늘 하루 있었던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 내일의 계획을 이야기하다 보면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가 된다. 과거의 술자리가 스트레스의 배출구였다면 지금의 저녁은 함께 웃고 공감하는 치유의 장이다.

​가끔은 예전의 습관이 떠오를 때도 있다. 기름진 고기나 매운 음식이 당기기도 하지만 몸이 금세 신호를 보낸다. 웰빙 음식에 익숙해진 몸은 무거운 음식의 부담을 곧장 느끼고, 다시 원래의 식단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이는 억지로 지키는 절제가 아니라 몸이 스스로 요구하는 선택이다.

​아침과 저녁을 웰빙 음식으로 차리기 시작하면서 삶의 균형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무엇보다 건강이 회복되었다. 소화가 편안해지고, 체중도 안정되었으며, 피부까지 맑아졌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변화는 마음가짐이었다. 식탁을 중심으로 하루를 여닫는 습관은 내가 나를 소중히 대우한다는 상징이 되었다.

​과거의 나는 회사라는 시스템 속에서 늘 타인의 리듬에 맞추어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선택한 음식과 식탁을 통해 하루의 리듬을 스스로 만들어간다. 이는 퇴사 후 얻은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다. 돈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특별한 재료가 없어도, 정성과 의식이 담긴 웰빙 음식 한 끼는 충분히 삶을 빛나게 한다.

​50대 백수라는 이름이 때로는 불안과 공허를 안기지만 식탁 앞에 앉으면 그 모든 감정이 사라진다. 아침과 저녁의 작은 웰빙 식사가 내 삶에 새로운 의미와 균형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인생의 맛은 거창한 순간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식사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 김 식 수필가 약력

現 칼럼니스트 활동
2011년 산문집 <난향 바라기> 출간
2007~2018년 건설 홍보실 근무
2004년 <시사문단> 수필 등단
1996~2007년 신문사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