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Hi스토리] 세진컴퓨터랜드
[기업Hi스토리] 세진컴퓨터랜드
  • 이석원 기자
  • 승인 2022.05.16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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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이석원 기자] 세진컴퓨터랜드는 1990년대의 시대를 주름잡았던 컴퓨터 전문매장이다. 한창 잘 나갈 때는 삼성전자, 삼보컴퓨터를 위협할 정도였다.

공격적인 마케팅에 모든 컴퓨터 제품을 정찰제로 취급하면서 소비자들의 인기를 한몸에 독차지 하게 됐고, 이에 창업 4년만에 국내 컴퓨터 시장을 주름잡게 됐다.

지금도 컴퓨터 매니아들 사이에서 ‘세진컴퓨터랜드’라고 하면 추억의 향수에 젖을 정도이다. 한편, 세진전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90년대 컴퓨터 덕후들에게는 로망의 장소

세진컴퓨터랜드의 등장은 그야말로 엄청난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컴퓨터는 정찰제가 아니었다. 부르는 것이 가격이 됐고, 엄청나게 비싼 물건이 바로 컴퓨터였다.

그런데 세진컴퓨터랜드는 저렴한 가격을 앞세웠고, 정찰제를 고수했다. 그리고 1년내내 세일기간이었다.

1991년 한상수 창업주가 부산 서면 지하상가에서 조그만 컴퓨터 매장을 차렸고, 1992년 주식회사로 법인화를 한 후 서울로 진출했다.

당시 선경 COMPLAZA(선경유통), 삼성테크, 마니유통 등 기존 경쟁 체인들과 경쟁을 하면서 전국적인 컴퓨터 전문매장이 됐다.

그러다보니 컴퓨터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세진컴퓨터랜드를 방문하는 것이 로망이 될 정도였다.

공격적인 마케팅

세진컴퓨터랜드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유명했다. 매일 퇴근 후에는 전단지를 트럭에 가득 싣고 아파트나 전봇대 등에 전단지를 붙이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다른 회사의 컴퓨터 및 주변기기, 소프트웨어만 판매했지만 나중에는 ‘세종대왕’ ‘진돗개’ 등 자체 브랜드PC를 판매했다.

특히 진돗개 시리즈는 평생 A/S를 강조하기 위해 한명의 주인만 평생 섬기는 진돗개 관련된 광고를 방영해서 반향을 일으켰다. 진돗개 백구가 주인 찻아 700리길(300km)을 달려갔다는 내용의 광고이다.

게다가 지점 하나가 엄청나게 컸고, 오로지 PC와 관련제품만 팔았다.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하이마트나 전자랜드 급의 매장에서 컴퓨터만 판매를 했다고 보면 됐다.

컴퓨터 구입하려면

당시 컴퓨터를 구입하려면 컴퓨터 회사 매장을 방문하거나 용산 컴퓨터 상가 등에 가서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컴퓨터 회사 매장의 물건은 정가제이기 때문에 상당히 비쌀 수밖에 없었고, 용산 컴퓨터 상가의 경우 지방에서는 직접 방문해서 구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세진컴퓨터랜드는 용산에 직접 가지 않아도 자신의 주변 지역에서 용산급의 컴퓨터를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지방에서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게다가 용산의 경우에는 호객행위 등으로 인해 논란이 일었는데 세진컴퓨터랜드는 호객행위가 없었다.

친절 교육을 받은 직원들이 단정한 복잡을 입고 접객을 했으며, 용산처럼 호객행위가 없었다. 깔끔한 매장에서 컴퓨터를 직접 접할 수 있으니 세진컴퓨터랜드에 대한 인기가 날로 높아져갔다.

특히 대형 화면으로 게임도 할 수 있고, 프린트, 복사, 스캐너, 팩스 등을 무료로 쓸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동네에 세진컴퓨터랜드가 들어선다는 것은 컴퓨터 매니아들에게는 로망이나 다름 없었다.

무리한 사업 확장

다만 무리한 사업 확장이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 이유는 ‘차입경영’ 때문이다. 외상으로 물건을 들여 싸게 팔고, 그 매출액을 기반으로 다시 물건을 외상으로 들여오는 시스템인데 물건이 팔리지 않으면 부도가 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무리한 광고비 집행이 부담이 됐다.

더욱이 컴퓨터를 팔아 남는 이익금을 제조사에게 지급하지 않고 매장수 확대와 광고비 집행으로 하다보니 컴퓨터 제조업체로서는 악성 기업의 명단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이에 1995년 1차 부도를 맞게 됐는데 이때 한상수 창업주는 지분 51%를 대우그룹 자회사인 대우통신에게 넘겼다. 그리고 통신판매업체 ‘세진홈마트’, 광고기획사 ‘세진애드컴’을 세웠지만 사업이 되지 않앗다.

이에 1997년 2월 대우통신에게 완전 매각되면서 한상수 창업주는 생산법인 세진컴퓨터만 맡게 됐다.

하지만 1999년 대우그룹 해체가 이뤄졌고, 대우통신 역시 자금조달과 경영지원이 불가능하게 됐다. 결국 2000년 7월 2차 부도 후 법원으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았고 2009년 법인까지 소멸됐다.

경영방식도 무리수

게다가 한상수 창업주의 경영방식이 무리수였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다혈질로 직원들을 폭행한 사례가 발생한 것이다. 1995년 8월 19일 PC통신 천리안 ‘나도 한마디’(현재로는 이야기하면 직장인 익명커뮤니티 ‘블라인드’ 정도) 게시판에 ‘세진컴퓨터 공화국의 직원탄압 현장 고발’이란 게시글이 실리면서 파문이 일어났다.

연차를 파괴한다면서 교육 2주차 신입을 대리로 승진 시켜주는가 하면 부산지점 과장은 전화 받는 목소리가 작다면서 그 자리에서 일반 사원으로 강등시키는 등의 행보를 보였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교육 과정을 밟은 직원 중 절반 이상이 세진컴퓨터랜드를 떠나기도 했다.

1997년 2월 한상수 창업주는 전년도 경영 부진 이유로 주임 이상 직급을 강등 시킨 후 본사 및 관리직원 700여명을 외판 영업 사원으로 돌리려고 하자 노동조합이 결성됐고, 한상수 창업주를 고소했다.

파산 후 한상수 창업주는 상표권 개인 명의 등록으로 인한 업무상 배임혐의 등으로 검찰에 입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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