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는 왜 파리바게뜨가 없을까…빵집 규제의 민낯
우리 동네는 왜 파리바게뜨가 없을까…빵집 규제의 민낯
  • 박영주 기자
  • 승인 2023.06.20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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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해요. 우리 동네에는 그 흔한 파리바게뜨도, 뚜레쥬르도 없어요.” 
“파리바게뜨 가려면 몇백미터는 걸어가야 해요. 빵 하나 먹자고 가기는 멀죠” 

[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간혹 드물게 대단지 아파트가 자리한 신도시임에도 불구하고 프랜차이즈 빵집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동네에 카페형 베이커리는 있는데, 우리가 익히 아는 프랜차이즈 빵집을 가려면 최소한 몇 블록 이상 걸어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일은 도대체 왜 생기는걸까. 이유는 빵집이 ‘생계형’ 업종으로 분류돼있어 출점 제한 조치를 받기 때문이다.

만일 동네에 빵집이 있다면 반경 500m 이내에는 SPC의 파리바게뜨, CJ푸드빌의 뚜레쥬르 등 대기업이 운영하는 빵집이 출점할 수 없다. 

이외에도 신규출점이 전년도 점포수의 2% 이내에서만 가능한 규정이 있어서 이들 기업이 연간 낼 수 있는 신규점포수 자체도 제한돼있는 상황이다. 

2013년부터 빵집은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됐고 2019년 해제돼 자율협약으로 돌아서긴 했지만, 여전히 대한제과협회와 상생협약을 거쳐야 한다는 제약을 받고 있다. 커피는 아예 2014년 한국휴게음식업중앙회가 적합업종 신청을 철회하면서 별도 규제를 받지 않고 있어 카페에서 빵을 파는 이른바 ‘베이커리형 카페’가 성행하고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부분은 영세 소상공인들을 보호하고자 만든 법이 오히려 브로커들의 배만 불리는 한편, 상권만 침체시키고 소비자들의 선택권까지 제한하는 부작용도 낳는다는 점이다. 일률적 규제가 만든 신(新) 풍속도인 셈이다. 

한 베이커리 카페 내부 전경/사진=파이낸셜리뷰 DB
한 베이커리 카페 내부 전경. 기사내용과 관련없는 자료사진 /사진=파이낸셜리뷰 DB

슈퍼마켓‧빵집 ‘알박기’…신도시의 브로커들

가장 문제가 되는 것 중에 하나가 ‘알박기’ 문제다. 

신도시가 삽을 채 뜨기 전부터 소위 ‘브로커’로 불리는 업자들은 상가의 명당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통상적으로 빵집의 명당자리는 횡단보도 근처나 사거리 기준으로 코너부분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곳. 상권이 형성되기는 커녕 삽을 뜨기도 전부터 업자가 동네빵집을 열겠다고 업종신고를 해버리면 경쟁사들은 아예 진입이 불가능해진다.

한 부동산 업체 관계자는 “빵집‧슈퍼 등은 실패하지 않는 업종 중 하나고 대기업들이 입점을 위해 용지를 매입하는 일이 많은 만큼, 사전에 정보를 입수한 이들이 작은 빵집이나 슈퍼마켓을 미리 업종신고 하는 경우가 있다. 이후 입점을 원하는 대기업들과 협의해서 웃돈 명목으로 보상금을 받아챙기는 것”이라 귀띔했다. 

비단 신도시가 아니더라도 기존 상권에 자리하고 있던 소상공인연합회와 돈 문제를 놓고 갈등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대기업 점포가 지역상생구역 상권에 출점하려면 지역상생협의체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협의체가 터무니 없는 수준의 막대한 비용을 요구해 아예 출점 자체가 무산되는 일들도 있다는 것이다. 

동반성장위원회 관계자는 “신도시나 신상권은 동네빵집 인근에도 파리바게뜨 등 프랜차이즈 제과점 입점이 허용돼있다”며 “아직 상권이 형성되지 않은 곳에서는 프랜차이즈 업체 사장님들도 영세상인들이다 보니 예외조항을 둔 것”이라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알박기 문제는 특정 상권에서만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소수의 사례를 전체의 문제라고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최소한의 보호조치도 없으면 영세상인들은 영업하기가 너무 힘들어질 것”이라 우려를 표했다.

뚜레쥬르와 파리바게뜨 외부 전경/사진=연합뉴스
뚜레쥬르와 파리바게뜨 외부 전경/사진=연합뉴스

규제 밖 외국계 베이커리…국내 기업들 “오히려 역차별”  

외국 프랜차이즈 빵집이 규제대상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도 국내 기업들의 ‘역차별’ 논란에 불을 붙이기 충분한 상황이다. 

최근 국내 제과점 업계에는 일본‧프랑스‧미국 브랜드들이 진출 몇년만에 매장을 수십개 확대하며 빠르게 세를 불리고 있다.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등이 규제 대상에 들어가있는 것과 달리 외국계 프랜차이즈 빵집은 상대적으로 규제 사각지대에 있다보니 무주공산이 돼버렸다는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외국계 베이커리는 규제도 받지 않고 한국시장에 마음대로 진출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로 가장 수혜를 보는 쪽은 사실 동네빵집이 아닌 외국계 베이커리다. 국내 프랜차이즈는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는 셈”이라 불만을 토로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소비자 선택권 외면…차라리 ‘공장빵’ 택하는 이들

일각에서는 ‘소비자 선택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한 신도시에 사는 30대 주부 A씨는 “인근에 파리바게뜨는 없고 베이커리형 카페가 하나 있는데 유기농 재료를 사용했다면서 엄청 비싼 가격에 빵을 팔고 있다”며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4000원 정도 하는 식빵이 여기서는 6500원이다. 빵 몇개 사면 3만원은 금방이다. 비용 부담이 너무 커서 그냥 로켓프레시로 사먹기로 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대형마트 혹은 대기업 브랜드가 입점하면 인근 골목상권이 다 망할 것이라 말하지만, 막상 내부사정을 뜯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대기업 브랜드라 하더라도 가맹점 형태로 운영 되다보니, 직영점을 제외한 대부분의 점주들은 영세 소상공인이기 때문이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편의점만 놓고 봐도 GS‧CU 같은 대기업 브랜드를 달고 있지만 운영하는 사람들은 다 소상공인 사장님들”이라며 “빵집‧카페도 마찬가지 아니겠나. 대기업 가맹점이라도 다 영세소상공인인데 무조건적인 규제는 오히려 사장님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라 지적했다. 

실제로 동네빵집을 찾기보다 아예 ‘공장빵’이라 불리는 편의점 빵을 찾는 소비자들도 적지 않다. 동네빵집 수준이 별로라면 차라리 공장에서 찍어내는 빵이 싸고 믿을만하다는 인식인 것이다. 

일례로 최근 편의점 CU는 연세대‧고려대와의 협업을 통해 대학빵 시리즈를 선보여 인기를 끌었고, SPC삼립의 포켓몬빵을 사려고 편의점‧마트‧슈퍼 등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포착도기도 했다. 

소비자들 역시도 “동네빵집이 성공하려면 결국 맛으로 승부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곳도 많다”, “같은 수준이라면 할인‧쿠폰 적용 가능한 프랜차이즈를 가지 왜 동네빵집을 가나”, “빵 퀄리티만 좋으면 멀리서도 빵지순례 갈건데 공장빵한테 밀릴 정도면서 프랜차이즈 탓을 하면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한 업계 관계자는 “동네빵집의 경쟁상대는 더이상 파리바게뜨‧뚜레쥬르가 아니다”라며 좁게는 외국계 베이커리와 빵을 파는 카페들부터 크게는 편의점, 쿠팡‧마켓컬리까지도 경쟁상대라고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동반성장위원회에 따르면, 출점제한 등 빵집을 대상으로 한 규제는 내년 8월까지. 내년 초 회의를 거쳐 이를 연장할지 아니면 일몰 시킬지를 결정하겠지만 부작용을 모두 솎아내지 못하는 지금의 규제는 어느 정도 수정돼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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