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전도사가 된 회장님…이순국 박사 “인생의 후반전, 노를 저어라”
건강전도사가 된 회장님…이순국 박사 “인생의 후반전, 노를 저어라”
  • 박영주 기자
  • 승인 2023.07.25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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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B’도 길이다…중학교 중퇴부터 신호그룹 회장까지
은퇴 아닌 ‘인생의 후반전’…죽는 순간까지 노 저어가야
두물머리에서 인생 전반전 시작, 후반전은 바다로 가는 것

[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인생을 한강에 비유해보면 강이 태백산에서부터 시작돼서 쭉 타고 오다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이 바로 ‘두물머리’다. 두물머리에서부터 본격적인 인생 전반전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듯 남녀가 결합해서 가정을 이루고 같이 열심히 노를 저어서 가다보면 김포 나루터까지 가게 되는데, 여기서부터는 새로운 배로 갈아타고 바다로 가는 것이 인생의 후반전이다. 

바다로 간다는 것은 결국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다. 죽는 날까지 건강하게 나룻배를 저으려면 필요한게 무엇이겠나. ‘건강’이다. 요양병원에 누워서 떠내려가는 인생을 살면 안 되지 않겠나. 죽는 순간까지 열심히 노를 저어갈 수 있는 인생, 노년의 인생을 강조하고 싶어서 세번째 책 「다시, 시작하는 인생 수업」을 썼다. 표지에 있는 나룻배는 바다를 향해 노를 저어가는 인생의 후반전이라 할 수 있다”

신호그룹 회장을 지냈다가 지금은 운동생리학, 의학박사로서 운동의 효과를 알리고 있는 이순국 박사. /사진=박영주 기자
신호그룹 회장을 지냈다가 지금은 운동생리학, 의학박사로서 운동의 효과를 알리고 있는 이순국 박사. /사진=박영주 기자

24일 오전 강남의 한 북카페에서 만난 이순국 박사는 80세가 넘은 나이라는 생각이 안들 정도로 건강한 모습이었다. 걸음걸이와 자세, 목소리에도 힘이 넘쳤다. 모두가 꿈꾸는 ‘건강한 노년’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흔에 운동을 시작했다」 , 「몸짱 할아버지의 청춘 운동법」 등의 책을 써내며 ‘건강 전도사’로서 활동하고 있는 이순국 박사는 원래 대기업을 운영하던 회장님이었다. 젊은 시절 신호제지를 비롯해 철강‧전자‧정보통신‧화학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던 ‘신호그룹’을 이끌었던 그였지만 IMF 직격타를 맞으며 그룹사를 전부 청산하고 새 인생을 살게 됐다. 

갑자기 찾아온 협심증으로 인해 시작한 운동이었지만, 지금의 이순국 박사에게 ‘운동’은 인생의 후반전을 뛸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됐다. 
 
‘플랜B’도 길이다…중학교 중퇴부터 신호그룹 회장까지

“경북중학교를 다니다가 돈이 없어서 자퇴를 했다. 그때 담임선생님이 검정고시라는 제도가 있다고 해서 악착같이 공부했다. 결과적으로는 또래보다 1년 빨리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1964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66년에 한국제지에 입사했다. 종이에 대해 배울만큼 배웠고 업계 흐름도 파악한 이후 퇴사하고 72년도에 공인회계사로 개업했다. 하지만 8개월인가 10개월 만에 자격정지를 먹었다. 의뢰인 사정을 고려해서 싼 값에 일을 해줬는데 그게 문제가 돼서 2년간 공인회계사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때 삼성특수제지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이 왔다. 그때 당시에 삼성특수제지는 작은 기업이었고 20%의 자본금을 내고 주주로서 주식자본참여를 해서 전무로 입사했다. 그러다가 77년인가에 충남 온양에 있는 동방펄프를 인수하면서 이름을 온양펄프로 바꿨다. 온양펄프는 100% 내 소유의 회사였다. 어렵게 온양펄프를 정상화시키고 나니까 이번에는 삼성특수제지가 법정관리 대상이 됐다. 82년도에 법정관리인으로서 삼성특수제지를 맡게 되면서 ‘신호(新湖)제지’가 시작됐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쭉 읊으면서 이순국 박사는 “인생에는 언제나 플랜B가 있다. 플랜A만 길이 아니고 플랜B도 길이다”라고 강조했다. 집이 찢어지게 가난한데다가 손위형님 두명이 억울하게 보도연맹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학창시절 1~2등을 놓치지 않았음에도 법대로 진학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순국 박사는 비관하지 않고 플랜B를 향해 전력투구했다. 

/사진=박영주 기자
/사진=박영주 기자

이순국 박사가 맨손으로 일궈낸 신호그룹은 제지 뿐만 아니라 철강‧전자‧정보통신‧화학 등 다양한 사업을 이어갔다. 1997년 기준으로 당시 매출은 1조원을 넘었고 계열사는 35개에 달했을 뿐만 아니라 재계 순위는 25위 정도였다. 

당시 이순국 박사는 회사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커지면 주식을 사원들 개개인에게 나눠주는 형태의 ‘신호그룹 사원 집단지주제’를 구상하기도 했다. 회사는 회장 개인의 소유가 아닌데다가, 주인은 바뀌더라도 기업은 영원해야 한다는 믿음에서 나온 구상이었다. 그대로 성장했다면 별 무리 없이 20대 그룹에 진입하고 새로운 형태의 경영모델이 나왔을테지만, 1998년 터진 IMF가 순항하던 신호그룹을 좌초시키고 말았다. 

“YS정권 당시 OECD 가입을 위해 원화가치를 인위적으로 올려 가입 조건인 국민소득 2만불을 맞췄다. 원화가치가 올라가고 우리나라에 달러가 막 들어오게 되니까 종금사(종합금융회사)들이 3개월, 6개월, 1년 이렇게 단기채권으로 돈을 빌려주고 중간에서 마진 장사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종금사들이 부도가 나고 많은 기업들이 같이 무너졌다. 그때 한보‧삼미 이런 곳들이 먼저 터졌다”
 
“태국에 신문지 공장을 크게 지으면서 2~3억불 정도 부채가 있었는데 그때 당시 국제금융공사(IFC)에서 돈을 빌렸었다. 바트가 23원 하던 것이 40원으로 오르면서 달러 빚은 두배로 늘어나고 IFC에서 부채 연장을 안해주고 디폴트 선언을 해버렸다. 당장 디폴트 선언이 나니까 이 사람들이 출자전환을 해버렸고 내 지분 40%가 하루아침에 15%로 반토막 나버렸다. 하루 아침에 경영권이 날아가고 주인이 바뀐거다. 결국 채권단이 들어와서 기업을 다 쪼개다가 팔아버렸다.”

재계순위 20위 안팎이었던 신호그룹은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후 이순국 박사는 마음을 추스르고자 2010년 무렵 일본 여행을 갔다가 협심증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극적으로 깨어나고 나서 그는 ‘인생의 후반전’을 열었다. 

/사진=박영주 기자
/사진=박영주 기자

은퇴 아닌 ‘인생의 후반전’…죽는 순간까지 노 저어가야
두물머리에서 인생 전반전 시작, 후반전은 바다로 가는 것
“인생의 후반전, 최소한의 ‘재정적 여유’와 ‘건강’ 필요해” 

“우리가 ‘Retire’라는 단어를 ‘은퇴’라고 번역해서 쓰고 있지 않나. 그런데 은퇴는 한자로 숨을 은(隱)자에 물러날 퇴(退)자를 쓴다. 사실 이게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직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이해하더라도 숨는다는 것이 말이 되나. 제대로 번역하려면 ‘인생 후반전’이라고 번역해야 한다. 65세부터는 인생의 후반전이 시작된다”

협심증으로 쓰러졌다가 눈을 뜬 이순국 박사는 ‘운동이 이제 내가 인생 후반전에 갈 길이구나’라고 깨달았다. 제대로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단순히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스포츠과학과에 입학을 해서 본격적인 공부에 돌입했다. 운동을 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하기 위함이었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운동생리학 석사 학위를 받고, 상명대학교 대학원으로 가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이후에는 순천향대학교 대학원 의과학과에서 ‘신체활동과 건강 관련 삶의 질과의 연관성에 관한 연구’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운동에 대해 연구를 하면서 그는 이론편에 해당하는 첫번째 저서 「나는 일흔에 운동을 시작했다」를 써냈고, 이후 실천편에 해당하는 「몸짱 할아버지의 청춘 운동법」을 써냈다. 지금도 이순국 박사는 운동에 대한 공부를 지속하며 인생의 후반전을 활기차게 보내고 있다. 

이순국 박사는 “인생은 후반전을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라며 “축구를 생각해보면 전반전에서 빌드업을 잘해서 후반전에 골을 넣어야 승리하는 것처럼 인생 역시도 후반전이 핵심이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는 인생수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인생의 흐름을 한강에 빗대 설명했다. 

“한강이 태백산에서부터 시작돼서 쭉 타고 오다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이 바로 ‘두물머리’다. 사회생활인 두물머리에서부터 본격적인 인생 전반전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듯 남녀가 결합해서 가정을 이루고 같이 열심히 노를 저어서 가다보면 김포 나루터까지 가게 되는데, 여기서부터는 새로운 배로 갈아타고 바다로 가는 것이 인생의 후반전이다. 

요즘에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겠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처럼 노를 혼자 젓는 것보다는 둘이 젓는게 낫다는 측면에서 결혼하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한 배에 탔는데 서로 반대 방향으로 노를 저으려고 하는 경우도 있더라. 그럴 때 나는 빨리 배에서 내리라고 조언한다. 이왕 노를 저어갈거면 같은 방향으로 가야지 배에 타서 싸우기만 하면 배가 뒤집힐수도 있고 목적지로 갈 수 없게 되지 않겠나. 너무 안 맞으면 빨리 서로 갈길을 가는 것이 좋다.

이순국 박사가 쓴 저서 '다시, 시작하는 인생 수업' /사진=박영주 기자
이순국 박사가 쓴 저서 '다시, 시작하는 인생 수업' /사진=박영주 기자

내가 쓴 책 「다시, 시작하는 인생수업」 표지에 보면 나룻배가 향하는 밝은 쪽이 서해바다다. 바다로 간다는 것은 결국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늙어가고 죽어간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내릴 것은 내리고 노를 저어서 죽음을 향해 조용히 나아간다는 그런 인식이 필요하다. 서해바다로 가는데 맨몸으로 헤엄쳐서 가면 얼마나 힘들겠나. 적어도 작은 나룻배 살 정도의 돈은 필요하다. 그래서 인생 후반전을 살려면 첫번째로 필요한 것이 ‘최소한의 재정적인 여유’다. 이것은 인생 전반전에 빌드업으로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나룻배에 그냥 누워있으면 떠내려 갈테니까 이때 필요한 것이 ‘건강’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요양병원에 누워서 그냥 떠내려가는 인생을 사는데 그러면 안 된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나룻배를 자신의 힘으로 저어가는 것이다. 배에 요양사 태우고 의사 태우고 가지 말고, 죽는 날까지 건강하게 노를 저어야 한다”

 

/사진=박영주 기자
/사진=박영주 기자

신체건강을 넘어선 정신건강…‘행복’의 정의
“행복을 상대화 하지 말라, 삶 자체가 행복”

이순국 박사가 펴낸 세번째 저서 「다시, 시작하는 인생수업」은 행복론에 대한 책이다. 건강이 삶의 질과 연결이 되고 결국 행복과도 이어진다는 점에서 책을 쓴 것이다. 이번에 책을 쓰면서 이순국 박사는 스스로를 많이 반추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간혹 나이든 사람들 중에 ‘이 나이 들어서 뭐하겠나’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축구를 90분간 뛰는데 10분 남았다고 ‘아이고 지금 와서 뭐하냐 슬슬 뛰어라’ 이러는 선수는 없다. 그러다 스코어 다 잃으면 패배하는 것 아니냐. 나이 들었다고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아주 잘못된 것이다. 마지막 1초까지 뛰어야지 ‘이 나이에’ 운운할거면 도대체 왜 사느냐고 묻고 싶다. 그런 사람들이 결국 자기 건강을 챙기지도 못하고 요양병원으로 간다. 남은 아들딸들이 다 뒷바라지 하게끔 하는게 얼마나 무책임한 일이냐. 사실 그래서 내가 세번째 책을 썼다. 죽는 순간까지 열심히 노를 저어가야 하니까”

이순국 박사는 우리의 인생을 ‘행복’과 ‘불행’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며 ‘실패는 있어도 좌절은 없다’라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 행복은 내가 느끼지 못하는 순간을 그냥 살아가는 것인 만큼 행복하다 불행하다 규정하는 그 순간 의미가 없어진다. 행복을 결코 ‘상대화’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가 말하는 행복론의 골자였다. 

 “사람은 살아가는 것 자체가 행복하기 때문에 산다. 불행하면 사람이 왜 살겠나. 죽어버리지. 살아가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물론 남들이 봤을 때도 행복스러운 삶이 필요하겠지. 요양병원에 누워가지고 자식이 면회도 안온다고 성질내는 인생이 행복해보이지는 않잖나. 그래서 우리가 운동을 하고 건강을 챙기는 것이다” 

“세상에 실패 없는 삶이 어디 있겠나. 수많은 실패가 있더라도 좌절해서 무너지지 말고 플랜B로 휘어서 앞으로 가면 된다. 내 삶은 불행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도 뗏목이 무너지고 있는데 바꿔 타지 않고 불행하다고만 외칠게 아니라 빨리 내려서 다른 배를 타라고 말해주고 싶다. 행복한 삶이라는 것은 계속해서 뗏목을 갈아타며 열심히 앞으로 노를 저어가는 인생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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