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청년 사업가를 만나다…되살아난 ‘아나렉스피’
[인터뷰] 청년 사업가를 만나다…되살아난 ‘아나렉스피’
  • 박영주 기자
  • 승인 2023.07.3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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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과장 “MZ도 MZ 나름, 묵묵하게 일하는 이들 많아”
아버지 대신 일하려 중소기업 입사, 재도약 저력은 ‘열정’

[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MZ가 책임감이 없다 이런 인식들이 있는데, 이제 30대인 저도 후배들을 이해 못하겠는데 왜 본적도 겪어본 적도 없는 사람에 대해 나이만 갖고 책임감이 있네 없네 판단하는건가 하는 생각을 한적이 있어요. MZ도 MZ나름이거든요. 지금도 묵묵하게 열심히 일하는 MZ들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그리고 취준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다면 ‘돈은 절대로 누가 벌어다주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결국 내가 만들어내는 돈의 액수만큼 월급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대기업이라는 배경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돈에 기반해서 월급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진로선택에 있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려나요.” 

27일 오후 까치산역 인근에 위치한 작은 회사 ‘아나렉스피’에서 이우성 영업지원팀 과장을 만났다. 이제 30대에 막 접어든 그는 아버지인 이진수 아나렉스피 대표와 함께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과장 직함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회사 경영 전반에 힘을 쏟고 있었다. 

혹자는 ‘아빠 회사에 들어가서 경영하는거면 돈도 벌고 취업걱정 안해도 돼서 참 좋겠다’고 말하겠지만, 이우성 씨는 이런 편견을 접할 때마다 내심 굉장히 화가 났었다고 고백했다. 

“사실 ‘그런 말하는 너네는 뭐하고 있는데’라는 분노가 있었다. 저는 여기서 A to Z까지 다하고 있다. 바퀴벌레 나오면 제가 잡아다 버리고 프로젝트 구상, 정산, 월급집행, 하다못해 비가 새서 젖은 박스를 다 뜯어서 말리는 것까지 제가 다하고 있다. 대기업에 입사했더라면 이런 일들은 안 해도 됐을 것이다”

“한때는 ‘아 그래도 나 연대생인데 여기서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 저의 최종목표는 ‘안정’이다. 나와 회사를 믿고 같이 일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많은 돈을 줄 수 있는 그런 회사로 키웠으면 좋겠다”

연세대를 다니며 경영학과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그는, 한때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랩을 했던 만큼 엔터테인먼트나 공연기획 관련 회사에 취직해 일을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병을 얻어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병간호를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서 아나렉스피에 합류하게 됐다.

이진수 대표는 그때를 회상하며 “엄마 아파서 아빠가 출근도 못하는데 네가 와서 좀 도와주면 안 되겠느냐고 어렵게 설득했다. 위에 형은 대기업 들어가서 잘하고 있으니까, 처음에는 입이 좀 이만큼 튀어나오는 것 같았는데 뭘 어떻게 했는지 쿠팡에서 1등을 하더라. 최근에는 ‘아버지 저 지금 일을 직업으로 계속해도 될것 같아요’라고 말하더라”고 귀띔했다.    

지금은 회사 한달 매출이 1억이 넘지만 시작은 말 그대로 맨몸으로 부딪히기였다. 무려 400개 가량의 상품들이 있었음에도 매출은 변변찮았고, 쿠팡‧네이버 등에 입점했음에도 한달 매출이 800만원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나렉스피 이우성 과장. /사진=박영주 기자
아나렉스피 이우성 과장. /사진=박영주 기자

중소기업 ‘아나렉스피’ 입사, 바닥부터 재도약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살폈죠”…제품삭제, 재정비 작업

“아나렉스피에 합류할 때 알고 있던 정보는 아버지가 다 쓰러져가던 회사를 인수하면서 보호대 등 제품을 팔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회사를 운영해보라고 하셨을 때 경영학과를 나오긴 했어도 내가 무슨 도움이 될까 생각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새벽알바를 끝내고 퇴근해서 지하철을 타고 오는데 갑자기 ‘회사가 나를 안 뽑아주면 나 이래봬도 연대생인데 내가 벌지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2020년 11월부터 출근하게 됐다.”

아나렉스피에 입사한 이우성 과장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제품삭제’였다. 당시 대표였던 아버지 입장에서는 답답한 마음이 있었지만 아들이 하는 일이니 생각이 있을 것이라며 묵묵히 바라봤다. 400가지 가량의 제품 중 살아남은 것은 10개 안팎이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아무도 나한테 일을 안 시키더라. 이미 역할분담이 다 돼있는 상황이고 제가 하는거라곤 입고‧출고 때 무거운 것들 들어주는 정도였다. 회사에서 월급은 준다는데 뭘하면 될지도 모르겠고 교육을 받는 것도 아니고. 가장 기초적인 스왓(SWOT)분석부터 시작해 창고에 있는 제품들을 다 끄집어내 와서는 공부를 했다” 

“A제품과 B제품은 모양도 똑같고 색깔만 다른데 가격 차이가 있는 이유는 뭘까 했는데 돌아온 답이 ‘고객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줘야 거기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 제 생각은 ‘A제품도 안팔리고 B제품도 안팔리는데 다양한 선택지가 무슨 의미가 있지? 하나라도 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였다. 그때부터 시작한게 제품 삭제였다.

400가지 종류의 제품이 매출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있는건지, 아니면 진짜 고객들이 인지하기에 차이가 있어서 존재하는 것인지 등을 고민해서 부합하지 않는 상품들은 발주를 다 틀어막고 인터넷에서도 상품을 삭제해버렸다. 외부에서 들여오는 제품 중에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제품이라 판단되는 것들은 거래를 다 끊어버렸다”

제품군을 정리했음에도 사업은 맥을 못 췄다. 그 다음으로 이우성 과장이 한 일은 ‘왜 안팔리나’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었다. 

“인터넷에서 파는 비슷한 제품들을 싹다 샀다. 우리 제품은 잘 늘어나는데 이 제품은 안 늘어나는구나. 안 늘어나서 좋은 점도 있네. 이런 것들을 일일이 적으면서 공부했다. 좋은 제품인데 왜 사람들이 안사지? 사람들이 안사는 곳에 상품을 가져다 놓았을 수도 있고, 안사는 모델일 수도 있고, 이것을 상회하는 엄청난 신제품이 있을 수도 있고, 이런 것들을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대학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는 분을 만나 자문을 구하며 제품을 연구하고 보완했다. 이렇게 만들어낸 신제품을 야심차게 생산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망했다. 이우성 과장이 입사하고 9개월 정도에 벌어진 일이었다. 

“지금은 왜 망했는지 이유를 알지만 그때는 말 그대로 멘붕이었다. 온전히 저 혼자 한 프로젝트였는데 실패했으니까. 하지만 망하고 나서 보니 그제야 길이 보이더라. 제품은 결국 사람들이 사는 것인데, 내가 사람들에게 우리 제품을 예쁘게 안 보여줬더라. 되는대로 같이 공연하면서 알게 된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모델을 구하고 포토그래퍼를 구했다. 도와달라고 해서 예쁘게 사진을 찍어 올려놓았는데 반응이 없더라. 상세 페이지가 문제였다. 삼각섬유복합연골체가 뭐가 어떻고 이런 학술적 내용들을 넣어뒀는데 잘나가는 회사는 굉장히 쉬운 문장으로 직관적으로 기술해놓았더라. 카테고리 매칭도 잘못돼있었다. 조금씩 정비를 해나가다 보니 서서히 매출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나렉스피 이우성 과장. 작은 회사다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나서서 해야 한다면서도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진=박영주 기자
아나렉스피 이우성 과장. 작은 회사다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나서서 해야 한다면서도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진=박영주 기자

아나렉스피의 자부심 ‘압축팩’
비싼 원가 문제 판매처 다변화로 해결해
쿠팡 입점 이후 2000% 성장 기록하기도
친구와 함께 역경 이겨내 “미안하고 고마워”

아나렉스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압축팩’을 런칭한 회사다. 남들이 뭐라 하더라도 회사 직원들은 이러한 역사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이우성 과장이 그 다음으로 돌입한 일은 주력상품인 압축팩을 살리는 것이었다. 

“중국산이나 다른 압축팩들과 달리, 저희 압축팩은 밸브 자체도 튼튼하고 5중 구조 가운데에 접착체 공정 처리가 돼있어서 날카로운 도구로 찢는게 아니면 웬만해서는 찢어질 일이 없는 제품이다. 그러다보니 원가 자체가 다른 압축팩들에 비해 10배 가량 높은 수준이다. 문제는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압축팩에 큰 비용을 들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다시 시중에 판매되는 압축팩을 모조리 사다가 분석하는 과정이 이뤄졌다. 압축팩은 비싸다고 예상을 안할 것 같은 제품이지만, 아나렉스피의 압축팩은 너무 고가였다. 그게 문제였다. 

“다이아몬드는 누구나 비싸다고 예상을 하기 때문에 100만원이면 싸다고 생각하지만, 짜장면이 100만원이면 안사먹지 않겠나. 제가 볼 때 압축팩은 짜장면 포지션이었다. 쉽게 말해서 비싸면 사람들이 싼 제품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 그런 제품이었다.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원가 자체가 높아서 가격경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매출을 높이면서 중간 유통마진을 관리할 필요가 생겼는데, 압축백은 지속적으로 현장에서 찍어낼 수 있는 기동성이 있었기 때문에 제조와 동시에 판매를 하겠다고 생각했다” 

이우성 과장이 본격적으로 압축백 사업에 힘을 쏟기 시작하면서 연세대에서 함께 했던 친구가 합류했다. 

“친구가 ‘일이 너무 하고 싶다. 그런데 일자리가 없다고 그냥 나한테 직업이라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을때 너무 마음이 아팠다. 얼마나 뛰어난 친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안하면서도 괜히 미안했다. ‘진짜 괜찮겠냐. 우리 회사 힘들다. 막노동도 많고 잡일도 많이 해야 되고 시스템을 갖추지도 못했다. 엄청나게 멀티테스킹을 해야 되는데 괜찮냐’고 했더니 괜찮다고 해서 같이 일하게 됐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불도저 같은 성격의 저와 다른 강점을 가진 친구가 들어오면서 변화가 생겼다. 저의 행동력에 친구의 디테일이 들어가니까 정말 좋은 결과물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판매량이 진짜 수직상승했다. 네이버 기준으로 한달 매출이 3~30만원 밖에 안됐는데 처음으로 2~3000만원을 찍었다. 원가는 줄이지 못했지만, 제품을 예쁘게 포장해서 사람들이 잘 볼수 있는 곳에 갖다놓는 작업이 성공하면서 판매량이 폭증했다” 

때마침 기존의 직원들의 이동이 있었다. 회사에 친구와 둘만 남게된 이우성 과장은 그때서야 통장을 열어보며 운영자금에 대해 알게 됐다. 100만원을 써서 700만원의 매출을 낸다면 분명히 이익이 남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회사 사정은 어려웠다. 고정비가 1000만원이면 700만원의 매출을 올린다고 해도 마이너스일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된 이우성 과장은 회사의 존속을 위해 ‘절대금액’을 맞추기로 했다. 판매라인을 넓히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원래는 네이버라는 판매처 하나를 중심으로 화초 키우듯 열심히 키웠는데 다변화를 시도했다. 사실 네이버는 노출경쟁이 심해서 가만히 두면 돈이 진짜 수도꼭지 틀어놓은 것처럼 빠져나간다. 상품을 클릭할 때마다 광고비가 빠져나가는 식이다보니 경쟁업체가 아예 공격 목적으로 계속 클릭만 하는 일도 있더라. 네이버만 하다가 11번가, 위메프, 쿠팡 등으로 판매처를 늘렸다.”

“개인적으로 쿠팡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압도적인 노출량이었다. 네이버는 검색한 사람들 위주로만 상품을 보여주는데 쿠팡은 자체 AI서비스를 통해 계속해서 상품을 추천하면서 노출을 높이더라. 같은 돈을 써서 네이버가 100명이 봤다면 쿠팡은 10만명이 보더라. ‘우리 상품을 보여주기만 한다면 사게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둘이서 쿠팡 로켓배송과 판매규정을 싹 공부하고 거기에 맞게끔 상품 페이지를 재편했다. 상품가격도 낮췄다. 사장님은 이 가격에 팔면 안 남는 것 아니냐고 하셨지만 그냥 밀어붙였다. 원래도 쿠팡에서 매출이 없었는데 망해도 본전이라는 생각에서 추진했고 작년 여름쯤 쿠팡관리자 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번 분기 급상승한 셀러로 2000% 성장하셨다고 말해주더라”

이우성 과장은 판매처 다변화에 그치지 않고 ‘관리’ 역시도 게을리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낮에는 회사에서 일을 처리하고 밤에는 일일이 리뷰글에 댓글을 달며 소비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소통을 통해 많은 소비자들이 다시 피드백을 주고, 이것이 실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나렉스피 이우성 과장 /사진=박영주 기자
아나렉스피 이우성 과장 /사진=박영주 기자

“MZ도 MZ 나름, 묵묵하게 일하는 이들 많아”
‘돈은 누가 벌어다주지 않는다’…내가 만든 만큼 버는 것
“최종목표는 안정, 직원에 돈 많이 주는 회사 만들고파”

아나렉스피에 들어가 숨 가쁘게 달려온 이우성 과장은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품이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을 수는 있지만 대기업의 한 일원으로 들어가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이라는 환경에서 마음껏 뛸 수 있다는 점이 또다른 장점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요즘 MZ세대는 책임감이 없고, 어려운 일은 안하려고 하고, 무조건 대기업만 찾아가려고 한다는 말을 한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이우성 과장은 이러한 시각은 잘못됐다고 잘라말했다. 
 
“MZ가 책임감이 없다 이런 인식들이 있는데, 이제 30대인 저도 후배들을 이해 못하겠는데 왜 본적도 겪어본 적도 없는 사람에 대해 나이만 갖고 책임감이 있네 없네 판단하는건가 하는 생각을 한적이 있다. MZ도 MZ나름이다. 지금도 묵묵하게 열심히 일하는 MZ들이 세상에는 많다. 저만 해도 여기서 A to Z까지 다하고 있다. 바퀴벌레 나오면 제가 잡아다 버리고 프로젝트 구상, 정산, 월급집행, 하다못해 비가 새서 젖은 박스를 다 뜯어서 말리는 것까지 제가 다하고 있다.”

그러면서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취준생들에게 돈만 보고 대기업을 좇지는 말라고 조언했다.

“‘돈은 절대로 누가 벌어다주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결국 내가 만들어내는 돈의 액수만큼 월급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대기업에서 월급을 많이 주는데는 이유가 있어요. 누구나 내가 만들어낸 돈만큼 월급을 받는 거니까, 대기업에 가려면 그만큼 고통 받을 것을 각오해야겠죠. 대기업이라는 배경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돈에 기반해서 월급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진로선택에 있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려나요.” 

개인적인 욕심은 없지만, 회사를 잘 키워서 직원들에게 많이 베풀어주고 싶다는 것이 지금 이우성 과장의 소망이다. 

“사실 저는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한 사람은 아니에요. 사치를 좋아하지도 않고 몇달에 한번씩 닌텐도 게임팩 사는 정도가 제 소비의 전부거든요. 하지만 저를 믿고 여기에서 같이 일하는 친구를 위해서라도, 다른 직원들을 위해서라도 제 최종목표는 ‘안정’이에요. 저는 많은 돈을 못 받아도 되지만 직원들에게 많은 돈을 줄 수 있는 회사였으면 좋겠어요. 만일 친구가 이직을 하더라도 이직한 회사가 친구에게 많은 돈을 줄 수 있도록 말이죠. 아나렉스피는 이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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