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애 류성룡의 위패를 마주하며, '제향'을 갖추다
- 마와 시금치, 흑임자로 색을 낸 삼색온죽상을 받으면 떠날 시간

[파이낸셜리뷰=이동미 여행작가] 덜컹덜컹…. 흙먼지를 일으키며 안동의 비포장 시골길을 돌아든다. 낙동강과 푸른 절벽을 마주하는 병산서원(屛山書院)이 화산(花山)의 품에 한 송이 꽃처럼 안겨있다. 선홍색 배롱나무 꽃그늘 사이로 사뿐사뿐 복례문(復禮門)에 오르면 과거시험을 준비하던 조선 시대의 유생이 된 듯 4백여 년 전의 시공간으로 빨려 들어간다. 병산서원 스테이가 시작된다.



다듬지 않은 주춧돌 위에 자연스레 휘어진 나무를 세운 만대루(晩對樓)의 아름 기둥을 감상하며 계단을 오르면 입교당(立敎堂)이 기다린다. 병산서원 스테이가 진행되는 1박 2일 동안 안내 데스크 역할을 하는 입교당은 ‘가르침을 바로 세우다’라는 의미의 강학(講學) 공간이다.
김홍도의 풍속화 ‘서당도’ 속 어떤 아이처럼 공손히 앉아 방 배정을 기다린다. 고려 중기부터 안동 풍산 상리에 있던 풍악서당(風岳書堂)에서 병산서원이 비롯하였으니 초반엔 김홍도의 그림과 흡사한 풍경이었을 듯싶다. 배정받은 방은 동재(東齋)인 동직재(動直齋). 조선시대 안동 지역 유림의 자제들이 기숙사 격인 동재와 서재에 머물며 공부했다. 좌고우저(左高右低)의 원리를 좇아 동재에는 상급생, 서재에는 하급생이 기거했다. 상급생의 방에서 오늘 밤을 보내게 될 모양이다.
짐을 풀고 사당인 존덕사(尊德祠)로 향한다. 출입문인 삼문에는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고, 기둥 초석엔 팔괘가 그려져 있으며, 삼문을 들어서면 제를 올리기 위해 손 씻는 관세대(盥洗臺)가 옛 모습 그대로다. 참가자를 위해 계단 참에 세숫대야가 준비되어 있다. 의관을 착용하고 예를 갖추면 존덕사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 선생은 31세 때(1575년) 풍악서당을 이곳으로 옮겨 병산서당이 되었다. 1613년에는 제자와 유림이 힘을 모아 사당인 존덕사(尊德祠)를 짓고 이듬해 류성룡의 위패를 봉안하면서 강학과 제향 기능을 갖춘 서원이 되었다. 예전에는 존덕사에 여자들이 들어갈 수 없었다.
조선 시대라면 꿈도 못 꿀 일이지만, 21세기에 태어나 금녀(禁女)의 공간에 들어가는 기분은 짜릿하고 뿌듯하다. 남자들은 왼손을 위로, 여성은 오른손을 위로 올려 두 손을 모은 뒤 제관들의 도움으로 예를 갖추고 위패를 마주한다. 잠시나마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서원의 중요 기능 중 하나인 ‘제향’을 느껴봄이다.



류성룡 어르신을 뵙고 나니 긴장이 풀리며 출출해진다. 고직사에 온휴반상이 준비되어 있다. 류성룡 선생 종가의 불천위 향사 음식을 모티브로 프랑스 요리 전공 김동기 셰프가 재해석하고 남희철 쉐프가 자연을 담아 스타일링한 상차림이다.
전복 비빔밥과 낙지 소고기탕, 문어숙회, 치자 동치미 등 한눈에 곱고 정갈함이 느껴진다. 원래 안동 헛제삿밥은 고추장이 아닌 지렁(안동식 집간장)으로 슴슴하게 비벼 먹는다. 손바닥만 한 전복이 가득 든 비빔밥은 지렁 없이도 간이 딱 맞는다.
이제 병산서원의 백미, 만대루(晩對樓, 보물 2104호)에 오른다. 입교당에서 보던 만대루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병풍 같은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자연의 경치를 빌려 건축의 한 구성요소로 활용하는 차경(借景)의 미학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만대’는 ‘느지막이 마주하다’라는 의미다. 인공 장식과 단청 없이 지어진 만대루는 자연 그대로의 나뭇결과 모양이 살아있다. 기둥 아래를 받치는 주춧돌은 크기도 모양도 높낮이도 제각각이며 누각 마루에 오르는 계단은 굵은 통나무를 도끼질 몇 번으로 툭툭 쳐서 만든 듯하다. 그저 자연에 지붕만을 얹은 듯 자연과 하나가 된다. 풍경에 취해 공부가 될까 싶은 의구심이 들 정도다.
병산서원은 앞쪽에 교육을 위한 강학 건물을, 뒤쪽에 제사를 위한 건물을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다. 입교당이 강학의 공간이고 존덕사가 제향의 공간이라면 만대루는 강학의 공간이면서 교류, 휴식의 공간이기도 하다. 만대루에 앉아 하회마을 어르신과 다담(茶談)을 즐기다 보면 만대루 처마 끝으로 둥근 달이 걸리고 낙동강 백사장은 푸르듯 검은빛으로 밤을 맞는다.



관광객이 모두 빠진 병산서원은 조선 시대 그 어느 쯤으로 데려간다. 그 옛날 유생들처럼 세숫대야에 미온수를 받아 세안한다. 밤이 깊어 문명의 상징인 조명이 사라지면 달빛이 보여주는 병산서원만이 오롯이 남는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는 한지등을 집어 든다. 사극에서 보듯 발밑을 비추기 위한 조족등(照足燈)의 기능이지만 기름먹인 종이를 주름잡아 청사초롱 모양이다. 촛불이나 기름으로 불을 밝히는 것이 아닌 터치식으로 위험성은 낮추고 아날로그 감성은 최대한 높였다.
그렇게 비밀스러운 밤이 지나면 푸른 절벽에 아침 해무가 걸리며 먼동이 튼다. 해 질 녘 금빛이던 모래사장이 아침엔 은빛이다. 수풀 너머 백사장과 낙동강, 푸른 절벽을 마주하는 비경은 아침 산책길의 선물, 느릿느릿 강가를 거닌 뒤 진흙 돌담을 둥글게 말아 만든 달팽이 뒷간도 기웃거려본다.
책을 찍는 목판을 보관하던 장판각(藏板閣)과 사당에 올릴 제수를 준비하던 전사청(典祀廳)도 어제와는 다른 느낌이다. 흙담 위에 핀 배롱나무 붉은 꽃잎에 맺힌 이슬이 아침 새의 지저귐에 놀라서 떨어진다. 어젯밤의 적막과 새초롬하던 어스름 달빛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고 해사한 얼굴의 병산서원을 보인다.



마와 시금치, 흑임자로 색을 낸 삼색온죽상을 받으면 병산서원을 떠날 시간이 가까워진다. 반찬으로 나온 북어 보푸라기를 입 안에 넣고 오물거려본다. 뼈를 발라내고 북어를 강판에 갈아 참기름에 버무려 안동 전통 제사 찬을 준비하던 앳된 며느리가 떠올려진다.
병산서원 스테이는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이 진행하는 세계유산축전 기획 프로그램 중 하나, 문화기획가 하정아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다. 이렇듯 문명을 잠시 제쳐둘 기회가 자주 있기를 고대해 본다. 다음엔 유생복을 입고 툇마루에서 앉아 초승달을 마냥 바라보고 싶다.
평소에는 머물 수 없는 시간과 공간에서 은밀하고도 애틋한 하룻밤의 밀회가 벌써 아련하다. 들어갈 때처럼 비포장 시골길을 달려 병산서원을 빠져나온다. 저만치서 21세기가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