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차세계로의 산티아고 순례길 07] 순례길 중 이색 체험, 스페인 경찰차를 타 보다
[차차세계로의 산티아고 순례길 07] 순례길 중 이색 체험, 스페인 경찰차를 타 보다
  • 양시영 인플루언서
  • 승인 2023.09.27 11: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경찰관에 순례자 여권 내밀었더니...
- 순례길에서 놓친 스페인 투우 축제, 아쉬움 남어
- 만시아의 숙소 대란, 13유로에서 30유로로 인상
스페인 경찰차에서 순례자 도장을 받으며, 기념촬영.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스페인 경찰차에서 순례자 도장을 받으며, 기념촬영.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파이낸셜리뷰=양시영 인플루언서] 17일 차 순례를 시작하는 마음은 꽤 비장했다. 단 27km밖에 되지 않는 여정이었지만, 출발 후 약 17km 동안 마을이 없어 순례자들 모두 물과 빵, 에너지 바 등 비상식량을 든든히 챙기고 길을 나섰다.

10km쯤 걸었을까? 저 멀리 길 위에 한 차량이 서 있는 게 보였고, 가까이 가 보니 바로 스페인 경찰차였다. 누가 쓰러지기라도 했나 싶어서 차 주변을 기웃거리던 중, 며칠 전 다른 순례자가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걷다가 경찰차 혹은 경찰관을 보면 꼭 순례자 여권을 내밀어 보라고, 그러면 그들이 도장을 찍어줄 거라고 했다. 다가가 보니, 정말 한 순례자가 차 안에서 방명록을 쓰고 있었고, 도장까지 받는 걸 볼 수 있었다.

테라디요스 마을에서 묵은 알베르게.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테라디요스 마을에서 묵은 알베르게.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테라디요스 알베르게를 지키는 귀여운 고양이.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테라디요스 알베르게를 지키는 귀여운 고양이.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한국인 순례자들과 함께 즐긴 저녁식사.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한국인 순례자들과 함께 즐긴 저녁식사.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경찰차를 타 보는 것도 흔치 않은 경험인데, 심지어 해외 경찰차라니… 너무 신기한 마음에 나는 바로 차에 올라탔다. 모두가 무탈하게 완주하길 바란다는 방명록까지 작성한 뒤, 기념사진도 한 장 찍고 다시 순례를 이어 나갔다.

그렇게 한참을 더 걸어 테라디요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Terradillos de los Templarios)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은 알베르게가 단 두 곳뿐인데, 나는 그중에서도 저녁 식사가 꽤 맛있다는 곳으로 찾아갔다. 가보니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원에는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고, 귀여운 고양이가 버선발로 달려 나와 나를 맞아주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빨래하러 내려갔는데, 정원 한편에 우물이 있는 걸 발견했다. 다행히 물을 길어 사용하는 건 아니었고, 호스를 연결해 물을 받아서 빨래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색다른 빨래 체험을 마치고, 오후 내내 쉬다 저녁을 먹으러 1층으로 내려갔다.

식사 공간에는 순례길 초반부터 자주 뵀던 한국인 모녀 분들이 계셨고, 네이버 여행 블로거로 활동 중이신 부부도 만나 뵐 수 있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한국어로 유쾌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맛있고 즐겁게 저녁 식사를 마쳤다. 

일출을 앞둔 순례길의 새벽녘.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일출을 앞둔 순례길의 새벽녘.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사하군 투우 경기가 열렸던 스타디움.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사하군 투우 경기가 열렸던 스타디움.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다음날은 해가 뜨기도 전에 순례를 시작했다. 테라디요스에서 10km 정도를 걸으면 사하군(Sahagun)이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며칠 전부터 이곳에서 투우 축제가 열린다는 얘기를 줄곧 들어왔다. 

하지만 막상 사하군에 도착하니 오전 9시였고, 너무 이른 시간이라 딱히 갈 곳도, 체크인할 만한 알베르게도 없어 바로 다음 마을로 향했다. 나중에 만난 순례자들에게 듣기론 이 투우 축제가 정말 환상적이었고, 그 열기 또한 대단했다고 하니… 괜스레 사하군을 지나온 데에 대한 후회가 들었다. 

그 이후론 크고 작은 마을 축제를 미련 없이 즐기기 시작했고, 그 기억들이 지금까지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다. 그러니 만일 순례를 앞둔 예비 순례자라면, 산티아고 길 위 다양한 지역 축제를 후회 없이 꼭 즐겨 보길 바란다.

만시아(Masilla de Las Mulas)로 향하는 19일 차 여정에선 순례 초반부터 걱정이 한가득이다. 만시아의 공립 알베르게가 한시적으로 문을 닫아, 다른 사립 알베르게만으로는 순례객을 감당하기 어려울 거란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니 평균 13유로 내외인 사립 알베르게의 가격이 30유로까지 터무니없이 올랐고, 그마저도 자리가 없어 예약도 안 받는다는 얘기가 허다했다.

만시아로 가는 길에 마주한 아름다운 풍경.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만시아로 가는 길에 마주한 아름다운 풍경.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색다른 경험을 선사해준 만시아 시골숙소.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색다른 경험을 선사해준 만시아 시골숙소.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뒤늦게 나는 순례길에서 약 5km 정도 떨어진 숙소를 예약했고, 그곳에서 택시 서비스를 제공해 줘, 약 20일 만에 두 다리가 아닌 차를 타고 숙소까지 이동했다. 처음엔 순례길과 너무 벗어난 곳인가 싶어 걱정이 앞섰지만, 요 며칠 함께 걸으며 친해진 다른 순례자들도 이곳에 묵는다는 걸 알게 된 후론, 오히려 이 상황을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서 빠에야와 파스타도 해 먹고 밤엔 로즈(스코틀랜드 출신 순례자)가 사 온 레드 와인도 함께 마시며, 스페인 시골 마을에서의 색다른 하룻밤을 보냈다. 그렇게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카미노 천사 덕분에, 나의 순례길은 건강한 웃음과 따뜻한 온기로 채워져 가고 있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