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변주선 이사장 “우리 아이들, 세계시민으로 크게 키워라”
[인터뷰] 변주선 이사장 “우리 아이들, 세계시민으로 크게 키워라”
  • 박영주 기자
  • 승인 2024.01.05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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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들이 세계에 나가서 보이스를 제대로 낼 수 있도록 우리가 힘을 길러줘야 한다는 거에요.

내 아이를 폭 좁게 기르지 마세요. 더불어 살면서 남들과 부딪히기도 하고 또 남을 위해 봉사활동도 하면서 내가 가진 지식을 타인과 나누는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장을 많이 펼쳐주는게 중요합니다. 

과외를 몇시에 가야 하는데 밥을 먹이고 뭘 입혀서 보낼지 그런 것들을 고민할게 아니라, 부모라면 내 아이가 사회에서 어떻게 적응해갈지 그리고 자기 능력을 세계에서 어떻게 펼쳐가게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변주선 한국걸스카우트 지원재단 이사장. /사진=박영주 기자
변주선 한국걸스카우트 지원재단 이사장. /사진=박영주 기자

[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지난해 말, 대림성모병원에서 변주선 한국걸스카우트 지원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83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힘이 넘치는 목소리와 밝은 미소, 사람을 휘어잡는 언변까지. 문자 그대로 ‘따뜻한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었다. 

한국걸스카우트 총재를 역임하며 전세계 수많은 여성과 청소년들에게 리더십 교육을 진행해온 변주선 이사장은 ‘원조 워킹맘’이다. 결혼 이후에도 단 한번도 일을 쉬지 않은 그는 세 자녀를 손수 가르쳐 모두 서울대에 보냈다. 일과 가정 모두 놓치지 않은 셈이다. 

서울대 사범대학 영어교육학과를 거쳐 서울 선린중학교 영어교사로 일했던 그는 교육에 있어 남다른 열의를 갖고 있었다. 군의관이었던 부군 김광태 대림성모병원 회장과 결혼하면서 병원 운영에 전면적으로 뛰어든 변 이사장은 걸스카우트에서 54년간 활동을 이어가며 ‘대한민국 걸스카우트 역사의 산 증인’이라 할 만한 길을 걸어왔다. 

1971년 한국걸스카우트연맹 대외분과위원으로서 ‘걸스카우트’에 첫 발을 들인 이후 1994년 제18대 한국걸스카우트연맹 총재를 역임하고 세계걸스카우트 아시아태평양 지역 위원회 의장 및 세계이사를 거치며 지금까지도 아태지역 여성과 청소년들의 발전을 위해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 

‘소녀들의 발전’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은 변주선 이사장은 최근 대한민국에 다소 잘못된 페미니즘이 번져가고, 청소년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데다,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풍토가 조성된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세계시민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그러면서도 여성의 본분은 버리지 않은 채 여성만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걸스카우트 정신’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는 것이 변주선 이사장의 설명이다. 


방황하는 청소년들…‘걸스카우트 정신’이 다시 필요한 이유
대한민국 교육현장, 좁은 시각의 인재 아닌 ‘세계시민’ 키워야

    “걸스카우트는 소녀와 젊은 여성이 책임 있는 세계시민으로서 그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개발하도록 하기 위해 존재해요. 소녀들에게는 꿈이 있죠. 그리고 도전과 내일이 있습니다. 우수한 역량을 가진 어린 소녀들이 좁은 가정에서만, 대한민국 안에서만 지지고 볶고 하게끔 둘게 아니라 지식을 나누고 남을 위해 봉사하면서 우수하고 올바른 세계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줘야죠.”

교육자 출신인 변주선 이사장은 청소년들을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교 바로세우기’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단은 인구가 감소한 문제도 있지만, 애프터스쿨이라고 하죠? 방과 후나 주말에 아이들을 위해 다른 활동을 하는 것들이 전부 다 금지돼있잖아요. 그러다보니 학교는 자꾸 줄어들고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원에 이른바 뺑뺑이로 보내고, 그런 요인들이 합쳐져 청소년 교육이 붕괴되고 있어요. 학교에서 하는 다양한 활동들을 살려야 아이들이 건전하게 봉사정신도 기르고 사회에 공헌하는 정신도 기르고 또 자기개발을 위한 도전정신도 기르고 하는데 이걸 못하다 보니 굉장한 사회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걸스카우트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변 이사장은 대한민국 교육현장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나 혼자 잘난 줄 아는 좁은 시각의 인재가 아닌, 더불어 성장할 수 있는 세계시민을 키워내는 장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며 지금은 사라진 보이스카우트‧걸스카우트 활동 등을 다시 도입하는 것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미국이나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등 다양한 국가에서는 여전히 보이스카우트‧걸스카우트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고 학부모들이 그룹을 형성해 같이 교육을 받고 액티비티를 실천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학교에서 걸스카우트, 보이스카우트, 아람단 등 다양한 청소년단체 활동이 있었지만 전교조 등의 요구에 따라 더이상 학교에서 그런 활동을 할 수 없게 됐죠.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단체활동을 통해서 봉사정신도 기르고 사회에 공헌하는 정신, 자기개발을 위한 도전정신도 기를 수 있었는데 이것이 모두 사라지면서 결과적으로 굉장한 사회적 문제로 돌아오고 있어요. 

    요즘 우리 청소년들이 마약이니 사행성 게임이나 도박, 폭력 등 다양한 위험에 노출돼있는데 단체활동을 통해 프렌드십을 키우고 커뮤니티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교류하다 보면 그런 사고는 없어질 것이라 봐요. 집단교육이라는게 나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집단을 통해 나를 이해하고 내가 잘하는 것과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우칠 수 있거든요. 서로를 도와서 공동의 목표를 만들어내다 보면 성취감도 느끼고 나혼자 잘해서 되는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죠”

변 이사장은 학생들이 우수한 인재로 크기 위해서는 집단 속의 나, 사회 속의 나, 세계 속의 나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며 선생님들이나 부모들도 그러한 고민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공부 잘했다고 학교에서 우등상 주는 것 밖에는 아이들에게 격려할 수 있는게 없잖아요? 하지만 걸스카우트에서는 프레지덴셜 어워드, 퀸스 어워드, 킹스 어워드 등 우수한 청소년들에게 많은 상을 주고 격려하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지자체와의 협업을 통해 아이들도 성장하고 지역사회도 성장할 수 있는 발판 역할을 하고 있죠.

사범대학을 나온 많은 선생님들이 연수를 받고 여러가지 교육 커리큘럼을 통해 스승으로서 갖춰야 될 덕목을 배웁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하고 많이 소통해야 하는게 맞는 거에요. 지금 시대에는 학생과 교사들 사이에 너무 소통이 없어요. 교육현장이 달라져야 합니다”

/사진=박영주 기자
/사진=박영주 기자

내 아이만 생각하는 요즘 부모들, 아이들 크고 넓게 키워라

한국걸스카우트 총재를 역임하며 전세계 수많은 여성과 청소년들에게 리더십 교육을 진행해온 변주선 이사장은 학부모들을 향한 당부도 아끼지 않았다. ‘아이들을 좁게 키우지 말고 크고 넓게 키우라’는 것이 주요 메시지 였다. 

    “내 아이를 폭 좁게 기르지 마세요. 더불어 살면서 남들과 부딪히기도 하고 또 남을 위해 봉사활동도 하면서 내가 가진 지식을 타인과 나누는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장을 많이 펼쳐주는게 중요합니다. 당장 영어교육만 하더라도 대학 입시가 단답형으로만 나오고 생각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잖아요. 차세대 인재들이 4~5개 중 하나 고르는 것만 잘하면 무슨 소용입니까? 

아이들 영어과외를 시킨다 의과대학 과외를 시킨다, 몇시에 들어와서 과외를 몇시에 가야하는데 밥을 먹이고 뭘 입혀서 보낼지 그런 것을 고민하지 말고 내 아이가 사회에서 어떻게 적응해갈지 그리고 자기능력을 세계에서 어떻게 펼쳐갈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세 자녀들을 의사로 키워낸 변 이사장은 자신이 학부모로 있던 당시, 내 아이의 그룹을 높이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 전체의 그룹을 올리자는 취지로 ‘촌지 민주주의’를 실천한 사례를 말해주기도 했다.

    “아들이 여의도의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당시에 여의도는 잘 사는 사람들이 30% 가량, 지역에서 온 평범한 아이들이 70% 정도 됐다. 그 시절에 내가 학부모들에게 제안한 것이 ‘우리는 내 아이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발전을 위해 내 아이 만을 위한 촌지를 선생님께 내지 말고 학교발전을 위한 기금을 내고 모으자’는 것이었어요. 옛날에는 아파트 사는 사람들이 꽤 부자였잖아요. 아파트 사는 사람들의 자식들만 위하지 말고 저기 70%, 영등포 판자촌에 가난한 아이들이 많았는데 그 아이들의 부모 노릇도 하자고 제안했고 엄마들이 수긍했어요. 우리 아들이 전교 1등 할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데 따라가야지 어떡해.”

    “선생님들한테도 내가 사대출신이다 보니 후배인 선생님들이 많았는데 ‘여의도 아파트 엄마들은 굉장히 말이 많다. 당신들 교권이 어머니들에 의해 흔들리면 그때부터는 교권이 바닥을 친다. 절대로 그런 촌지를 받지 말라’고 당부했어요. 30% 잘사는 부모들이 모은 돈으로 학교에 에어컨 다 설치하고 학교 질을 높였죠. 그렇게 여의도 고등학교를 1등 명문학교로 만들었어요. 지금 보면 학부모들이 내 아이만 생각하는데, 그렇게 좁게 세상을 볼 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생각하고 넓게 크게 봐야 해요.”

변주선 이사장의 고희 기념문집 간행위원회에서 펴낸 '아낌없이 주는 사랑의 나무' 책. /사진=박영주 기자
변주선 이사장의 고희 기념문집 간행위원회에서 펴낸 '아낌없이 주는 사랑의 나무' 책. /사진=박영주 기자

결혼을 통해 발전하는 삶 
비혼‧저출산 문제, 해법은 ‘존중’ 

변주선 이사장은 결혼이나 출산이 여성에게는 무조건 손해라는 인식이 계속되는 한 저출산 문제 극복은 어렵다며 남녀간의 만남, 부부가 아름답게 해로(偕老)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존중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결혼하는 것이 여성이나 남성 모두에게 손해가 아니라, 양측이 이득을 보고 발전할 수 있다는 인식만 자리잡힌다면 비혼문제는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와 결혼을 결정하자 그는 나에게 결혼조건을 제시했다. 그 조건은 공부하는 두 학생이 함께 하숙을 한다는 기분으로 살면서 매일 독서시간을 정하는 등의 프로그램을 갖고 함께 발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결혼해서 그냥 안주하지 않을까 걱정했으며 그것이 우리가 서로를 월말마다 평가하고 점검하는 기회를 갖도록 했다.

그는 보통 남자들과는 달리 김치찌개를 잘하는 아내보다 책 읽는 아내를 훨씬 좋아했다. 

그는 오늘날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사회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시간과 물질적인 것을 허용해줬을 뿐만 아니라 내가 걸스카우트 총재 업무를 훌륭히 수행할 수 있도록 좋은 글귀나 연설문 등을 챙겨주고 회의가 있으면 회의일정도 같이 검토하는 등 나의 크고 작은 행사에 깊은 관심과 참여를 아끼지 않으며 훌륭한 외조자로서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변주선 이사장의 생애를 담은 책 ‘아낌없이 주는 사랑의 나무’의 내용 일부분이다. 변 이사장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남편의 역할도 매우 컸다며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사대부중‧사대부고를 나오다보니 남자 선배들도 많고 다양한 활동에서 만난 이성들이 많았지만 여태까지 만난 남자들과는 달랐어요. 자기는 밥하는 변주선보다 책읽는 변주선이 좋대요. 그러면서 ‘나를 위해서 희생하지 말고 당신의 갈 길을 가라. 그러나 어떤 레벨까지 올라가서 자기를 능가해서 자기를 밟는 그런 것은 바라지 않는다. 원하는 대로 커라. 병원은 내가 지키겠다’ 이렇게 말하는데 그런 남자를 본 적이 없었거든요. 지금이야 다를지 몰라도 옛날에는 남자들이 억눌러서 크지 못하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았다고요.”

변주선 이사장은 자신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남편을 만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며 다시 태어나더라도 지금의 남편과 함께 살고 싶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세 자녀를 키우며 건전한 사회 일꾼으로 키우자는 취지를 실천한다는 측면에서 엄청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제 팔순을 넘긴 변주선 이사장은 남은 생을 소녀들의 잠재력을 키워 세계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데 쓰겠다는 입장이다.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그런 메시지를 계속 던짐으로써 앞으로 세상을 살아갈 젊은 인재들이 세계에서 목소리를 내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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